나는 그 사이 산문집 몇 권과 애린 연작의 짧은 시 몇 편을 발표하고 몇 꼭지의 잡문을 잡지에다 썼을 뿐 그리 활발한 활동을 못했다. 그러던 차에 자유실천문인협의회에서 내게 '민중문학의 형식문제'에 관해 명동성당에서 강연해 달라는 청을 해왔다. 나는 즉석에서 수락했다. 그러나 나는 그때 오른손과 오른팔을 못쓰는 상태에 있었다.
그 얼마 전 탑골에서 소설가인 송기숙 형님과 대취하여 여관에 들어가 여관방에서 사소한 일로 말싸움을 하다가 화가 난 채로 아무렇게나 옆으로 누워 잤는데 그때 오른팔 밑에 큰 재떨이를 깔고 잔 것이다. 이튿날 아침에 깨어보니 오른팔이 떨어져버렸다. 소위 의사들이 '주말병(週末病)'이라고 부르는 근육마비였다. 그러니까 기(氣)가 막힌 것이겠다.
나는 아내의 손을 빌려 구술로 원고를 만들고 당일엔 손과 팔을 붕대로 처매고 명동성당으로 갔다.
웬 사람이 그리도 많았을까? 수도 없이 많고 많은 청년학생들이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그렇게 모인 것일까? 선동일까?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그것만은 할 수 없었다. 지금 당장 쉽게 이해되지 않고 정치적 매력을 못 느낀다 하더라도 곰곰이 생각할 때 비로소 참답게 느껴질 수 있는 민중적이고 민족적인 문학의 미학에 관해 말해야 하는 것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별 재미가 없는 강연이었다. 아직 그늘론이나 흰 그늘의 미학에는 못미쳤으나 '신명'과 '활동하는 무'에 관해 강조했던 것을 기억한다. 길거리에 화염병이 날고 곤봉과 물대포와 군화발이 난무하는 파시스트적 일상 속에 있는 그들에게 '활동하는 무'는 너무 뿌윰하고 너무 안이한 얘기였을까?
지금 가만히 생각해본다.
정말로 너무 뿌윰하고 안이한 얘기였을까?
투쟁의 무기로서의 문학, 총알로서의 언어에 관해 말했어야 옳지 않았을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결론은 역시 '아니다'로 나타난다.
'활동하는 무'는 곧 창조적 자유다.
그것은 파시즘을 근본에서부터 부정하는 담론의 힘이요 감성의 태도다. '활동하는 무'가 삶의 주체일 때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파시즘에 투항하거나 굴복하지 않는, 그럼에도 평정하고 창조적인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그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
이른바 민중문학에 있어서의 그 나름의 내면성의 생성인 것이다. 그 어떤 것도 패배시킬 수 없는 자유와 자기조직화의 생성적 주체, 그것이 바로 '무'이다.
'무'야말로 활동의 주체인 것이다.
신자유주의인가?
어림없는 소리다.
신자유주의의 자유 개념은 '무가 아닌 욕망'이다. 절제되지 않는 욕망의 기제(機制)로서의 자유자본주의, 금융자본주의가 '활동하는 무'에 입각한 호혜적 인간관계와 같을 리가 없다.
학생들은 강당 밖 마당에도 가득차 있었다. 확성기를 통해 바로 그 '활동하는 무' '창조적 자유'에 관한 담론을 듣고 있었다. 그리고 강연이 끝나고 퇴장할 때도 줄을 서서 〈타는 목마름으로〉의 노래를 부르고 또 불러대었다.
지쳤을까?
군중의 열기에 지쳐버렸을까?
나는 그날 밤 운당여관에 돌아오는 길로 아랫목에 누워버렸다. 윗목에다 나에게 인사차 들른 10여 명의 젊은이들을 그대로 둔채 코를 골기 시작한 것이다.
미안하다, 젊은이들!
나는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다.
용서하라, 아우들아!
그러나 나는 이제 스스로 '활동하는 무'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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