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공 무렵 서울의 내 단골술집 '탑골'은 파고다공원 뒤에 있는 한 시커먼 골짜기다. 그 골짜기 저 안쪽에 흰 탑이 두 개 서 있다.
낮이나 밤이나 그곳에서 취했고 몇 해를 그곳에 드나들었으니 외상값이나 떼먹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그 탑 위에는 각기 하나의 비문(碑文)들을 새겨놓았으니 그중 하나는 왈,
산은 바다로 간다.
바다 밑에는 산이 있다
거기에 사람의 주둥이 같은
역려(逆旅)가 하나 있으니
그 역려 이름은 '에잇 미친 놈!'이다
또다른 하나는 왈,
'뭘 봐, 임마!'다.
술에 취해야 비로소 이 비문들이 보인다.
취해도 안 보일 때는 금석학(金石學)을 동원해야 한다. 금석학은 위스키 속에 들어있는 흰 손수건에 그 요령이 자세히 적혀 있다. 그 수건을 꺼내려고 위스키를 비우다가 갑자기 죽은 사람들의 이름이 밤12시 정각이면 오디오를 통해 주욱 흘러나온다.
그것 자체가 또 하나의 눈에 안 보이는 기념비이니 탑골은 바로 이 기념비에서부터 비롯된 이름이다. 그러매 이 골짜기는 늘 눈물과 한숨으로 젖어있다. 비극이 탄생하는 니체의 자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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