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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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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55>

애린

네 얼굴이
애린
네 목소리가 생각 안 난다
어디 있느냐 지금 어디
기인 그림자 끌며 노을진 낯선 도시
거리 거리 찾아 헤맨다
어디 있느냐 지금 어디
캄캄한 지하실 시멘트벽에 피로 그린
네 미소가
애린
네 속삭임 소리가 기억 안 난다
지쳐 엎드린 포장마차 좌판 위에
타오르는 카바이트 불꽃 홀로
가녀리게 애잔하게
가투 나선 젊은이들 노랫소리에 흔들린다.

애린이 누구냐고 묻는 사람이 더러 있었다. 그것은 물어 뭘하자는 것이었을까? 그무렵 들리는 소문으로는 이리역(裡里驛) 앞에 '애린'이라는 카페가 있다고도 했다. 나와 가까웠던 어느 유명한 쌀롱의 여자주인은 애린은 카페제목이 제격이라고까지 말했다.

그럴까?

애린은 본디 고인이 된 하길종 감독의 미망인인 전채린(田彩麟) 여사의 막내동생 전애린(田愛麟) 씨의 이름이다. 출옥후 나는 채린 여사에게 애린이란 이름을 써도 좋으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왜 그래요?"

눈이 똥그래서 물었다.
"애린이란 이름이 꼭 '엘자'와 같은 이미지를 갖고 있어요."
"아라공의 아내 말이죠!"

맞다.

나는 여성적이고 식물적인 아픔과 사랑과 아름다움의 이미지로 파시즘을 포위하는 일련의 레지스탕스 시들을 쓰고 싶어했다.

내게 있어서 감옥은 그 자체로서 이미 파시즘이었다. 애린의 그 신성스럽게 고양된 이미지가 아닌, 그저 애린을 찾는 즉물적인 까닭과 애린을 찾는 과정과 그 결과에 관한 시를 오늘 옛 시집에서 두 편 발견한다. 〈둥글기 때문〉과 〈매화〉다.

〈둥글기 때문〉은 출옥후의 내 마음의 동그라미다.

거리에서
아이들 공놀이에 갑자기 뛰어들어
손으로 마구 공 주무르는 건
철부지여서가 아니야
둥글기 때문

거리에서
골동상 유리창 느닷없이 깨뜨리고
옛 항아리 미친 듯 쓰다듬는 건
훔치려는 게 아니야
이것 봐, 자넨 몰라서 그래
둥글기 때문

거리에서
노점상 좌판 위에 수북수북이 쌓아놓은
사과 알 자꾸만 만지작거리는건
아니야
먹고 싶어서가 아니야
돈이 없어서가 아니야
모난 것, 모난 것에만 싸여 살아
둥근 데 허천이 난 내 눈에 그저
둥글기 때문

거리에서
좁은 바지차림 아가씨
뒷모습에 불현 듯 걸음 바빠지는건
맵시 좋아서가 아니야
반해서도 아니야
천만의 말씀
색골이어서는 더욱 절대 아니야
둥글기 때문

불룩한 젖가슴 도톰한 입술
새빨간 젖꼭지나 새빨간 연지
그 때문도 아니야
뚫어져라 끝내 마주 쳐다보는건
모두 다 그건
딱딱한 데, 뾰족한 데 얻어맞고 찔려 산 내겐
환장하게 보드랍고 미치고 초치게
둥글기 때문

개같은 이 세상에 아직 살아남아
내 이렇게 허덕이는 건 허덕이고 있는 건
다른 뜻 있어 아니야
굳이 대라면 허허허
지구가 워낙 둥글기 때문

그리고 또 하나
요사이 부쩍 절을 자주 찾는 건
믿어서도 깨쳐서도 아니고 오직 한가지
부처님 미소가 사뭇사뭇 너그럽고
둥글기 때문.

그리고 마지막 〈매화〉는 해남 시절 내 마음을 통해서 나온 애린의 대답이다.

내 오른쪽 손을 이젠
잘못하지 마세요
오른쪽 손은
당신 아들에게 중요하니까

내 오른쪽 손을 더는
잘못하지 마세요
오른쪽 손끝에
이월 추운 시절 늘 그때마다
매화가 자라는 것을.

애린을 찾다 찾다가 제대로 된 애린의 번지를 못 찾아 중간에서 애린의 얼굴마저 잃어버렸으니 애린의 말씀을 모두 잊어버린 것이다.

포장마차의 좌판 위에서 애린을 그려보았으나 떠오르질 않았다. 감옥에서는 핏자욱처럼 선연하던 애린이, 출옥후에도 미친 갈증 같던 애린이 문득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나는 절망 속에서 낙향했다. 해남에서의 정신의 어둠 속에서 어느 새벽녘 문득 매운 한 가지 매화로 돌아왔으니 바로 내 아내의 얼굴이었다. 그러나 바람찬 이월 매화를 보기까지 나는 나의 오른쪽 손을 내내 잘못했으니, 왼쪽 손이 행동이요 사상이라면 오른쪽 손은 곧 시요 사랑이었다. 그 시와 사랑을 내내 잘못한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월 매화는 늘 피고 있었던 것이다.

애린은 그 매화 한 가지 속에 있었다. 서양쪽의 페미니즘이나 제3세계쪽의 에코페미니즘 이전에 감옥에서 읽은 동학계 사상들로부터 먼저 내게 다가온 이월 매화, 그 애린이 바로 나의 페미니즘이었다.

최수운의 최고의 혁명가사인 〈안심가(安心歌)〉는 혁명당시 대중의 입에 늘 붙어 있던 변혁의 내용인데 이것은 득도 직후 수운 자신이 맨먼저 자기 아내에게 바친 헌사이다. 자연스럽게 동학은 후천개벽의 풍류선도를 지향함으로써 페미니즘의 채마밭에 피어난 예쁜 장다리꽃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수운은 또한 여자노비 두 사람을 해방하여 한 사람은 딸을 삼고 또 한 사람은 며느리를 삼았으니 동학페미니즘 실천의 아리따운 시작이었다.

수운의 페미니즘을 계승한 최해월은 수운의 차원을 훨씬 넘어섰으니 부인도용(婦人道甬), 즉 아녀자들의 득도에 동학의 사활을 걸었고 최고의 가르침을 '내측(內則)'과 '내수도문(內修道文)'으로 삼았다. 그것은 모두 여자들의 수행내용이었으며 여성을 심지어는 후천개벽시대의 타고난 도인이라고까지 불렀다. 왜냐하면 동학의 핵심 중의 핵심은 주문의 첫글자인 '모심(侍)'에 있는데 여성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스스로 천지인 '아기를 제 몸안에 모실 수 있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매 해월 동학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태교(胎敎)로서 포태(胞胎)는 사람이 제 몸안에 '천지부모(天地父母)'를 모시는 것이요, 동시에 도리어 천지부모가 사람을 제 안에 모시는 것이 되는 이치다.

나는 내 시로써 행동과 사상에서 바로 이같은 '애린'을 실천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그 20년 후에 나타난 또 하나의 동학인 김일부의 '정역(正易)'은 우주의 주체를 율려(律呂)에 두었으나 율려가 선천시대, 즉 지나간 왕권시대, 가부장제와 봉건시대의 남성적이고 제왕적인 하늘의 음률, 즉 '황종(黃鍾)'을 중심음으로 택했음에 비해 여성적이고 평면적인 땅의 음률, 즉 '협종(夾鍾)'을 '황종'자리에 대체했으니 율려는 이미 율려가 아닌 '여율(呂律)'이 된 것이다. 우주음양이 비로소 '음'과 '여'를 앞세운 음양이요 여율로 변한 것이니, 이것이 '우주적 페미니즘'이요 '음악적 페미니즘' 아니겠는가?

그 뒤 또한 20년이 지나 전주 모악산 밑 구릿골과 정읍 대흥리에서 강증산(姜甑山)은 자기의 두번째 부인인 '고판례'를 부인 중의 으뜸인 '수부(首婦)'라 하고 천지인의 삼계 또는 색계, 욕계, 무색계의 삼계대권(三界大權)과 도(道)의 법통을 그녀에게 넘겼다.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고판례로 하여금 식칼을 들고 누운 자기 배를 올라타고 앉아
"삼계대권을 내놓으라!"

명령하게 하고는 자기는 싹싹 빌며 왈,
"네, 지금 당장 다 드리겠습니다."

그리고는 불경, 유교경전, 술수책, 공명첩, 어음과 계산서와 기독교의 성경 따위를 모두 찢어 마당에 벌려놓고 고판례로 하여금 그것들을 짓밟으며 춤추게 하였으니 이것을 천지대권이 남자에게서 여자에게로 넘어가는 '천지굿'이라 일렀다.

'애린'이 무엇이냐고?
'애린'은 바로 이것. 이 한국의 기이한 페미니즘이다. 그러나 나는 운만 떼었지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다. 아마도 이같은 삼단계, 삼대(三代)를 계승발전한 동학사(同學史)의 페미니즘 '애린'에 토대를 두고 전세계의 페미니즘을 종합하고 실천할 때 참다운 여성법통과 여성도통 즉 '애린'이 완성되지 않을까?

그러나 여기서 주목할 것은 다음이다.

애린은 창녀다.

창녀는 천민이다.

인간과 신이 합일하는 순간의 기적이라 할 수 있는 사랑, 바로 그 사랑을 직업으로 하기 때문에 도리어 가장 참혹하게 저주받은 인간이다. 그러매 바로 그러한 창녀, '애린'에 대한 풋사랑은 고통에 찬 기적이다. 모순어법이다.

이 창녀가 그 고통에 찬 기적에 의해 천지법통을 이어받는 것이 다름아닌 후천개벽이니 이것이 곧 '애린'이다. 그리고 왈 '모심(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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