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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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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35>

독재자의 죽음

<사진>

그날.

시월 이십 몇일이던가.

그게 바로 10·26 직후였다.

점심 무렵 구치소내 방송에서 웬 낯선 목소리가 웬 낯선 소리를 되풀이하고 있었다. 나는 역시 좌선중이었다.

"고 대통령께서… 고 박대통령께서… 고인께서…."

도대체 저것이 무슨 소리일까.

'고'라니?'고'라니?'고'라니?

'고'가 무슨 뜻일까.

나는 서서히 일어나 문으로 가서 문짝에 바짝 몸을 붙인 채(위에 있는 텔레비전 모니터의 시계(視界)에서 벗어나기 위해 문짝에 몸을 바짝 붙이는 것이 나의 버릇이 되었다) 교도관에게 물었다.

"저게 무슨 소리오?"

교도관이 사방을 둘러보더니 오른손으로 자기 목을 탁 끊는 시늉을 하며,

"탁―!"

또 다시 끊는 시늉을 하며

"탁―!"

"에엥? 누가?"

교도관은 오른손 엄지를 높이 세웠다.

"엇! 박정희가."

교도관은 오른손을 얼른 입에 갖다 댔다.

"쉬잇―!"

나는 아주 낮은 소리로 또 물었다.

"누가? 응, 누가 그랬어?"

교도관은 입을 꽉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모르는 것 같았다.

박정희가 죽은 것만은 분명하다. 그것도 누구에겐가 살해당한 것이다.

그때였다.

내 속에서, 내 속 저 밑바닥에서 꼭 허공으로 애드벌룬 떠오르듯 그렇게 말 세 마디가 줄지어 떠오르는 것이었다.

'인생무상.'

첫번째 마디였다.

"안녕히 가십시오."

두번째 마디였다.

"나도 곧 뒤따라 가리다."

세번째 마디였다.

훗날 참선 잘 하는 스님에게 물어봤더니 참선하면 그렇게 된다는 거였으니 꼭 무슨 물체처럼 말이 밑에서부터 올라온다는 것이다.

이래서 감옥 밖의 여러 입들이 왈,

"김지하가 박정희 죽으라고 백일기도 했구먼!"

아니다.

내가 그렇게 독한 사람은 못 된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용서'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고 나고 간에 언젠가는 모두 다 떠나야 할 그 '무상함'을 깨달은 것뿐이었다.

'무상'을 깨우쳤으니 '해탈'한 것 아닌가!

원, 저런 쯧쯧쯧! 급히 먹다 체하겄다.

그날 저녁 박세경 변호사님이 접견왔다.

"내일은 나갈 거요. 준비해 둬요."

나는 믿을 수 없었다. 역시!

그 이튿날 다른 변호사님이 오셨다.

"한 사나흘 안에는 나갈 거요."

나는 안 믿었다. 역시!

잘 아는 교도관이 들렀다.

"한 1주일 안에는 나갈 거요."

생각하지 않았다. 역시!

그러나 참선은 그것으로 파장이었다.

그리고 또 얼마 안 있어 있기에 편하다는 병사로 나를 옮겨 주었다.

아아! 나는 당분간 못 나가는구나!

포기했다. 포기하고 밥 잘 먹고 똥 잘 싸고 운동 열심히 하기로 했다.

겨울이 오고 있었다.

12월이었다.

<'월간중앙'과 동시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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