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인간의 내면이란 도대체 그 얼마나 복잡한 것인가!
참선하기 이전에는 나는 인간에 대해 거의 아무 것도 몰랐다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한 사흘 동안 앞이 컴컴한 어둠이 계속되다 한 나흘은 새하얗게 눈부신 햇살 아래 갈대밭이 나타나고 한 닷새 시커먼 시궁창 속에 있다가는 한 엿새 샛푸른 하늘가에서 흰 종이학을 날리곤 했다. 빛과 어둠이, 육욕과 증오가, 그리움과 혐오감이, 이승과 저승이, 그렇게 서로서로 반대되고 모순되는 것들이 차례로 뒤집히거나 아니면 한꺼번에 뒤섞여 대립하거나 혼재하는 거였다. 거뭇거뭇하면서도 새하얀, 아득한 우주의 먼 길이 다시 보였다.
아! 그리고 바로 내 뒤에 있는 문짝 밖에서 나를 감시하는 교도관의 온몸에 구멍이 숭숭 뚫려 그 구멍들에서 누런 고름이 질질 새거나 아니면 그 구멍으로 새된 소리를 내며 건조한 바람이 마구 꿰뚫고 지나가거나 이상하고 기괴한 형상들이 어떤 의미를 짓거나 그랬다가 육각의 눈 결정체로 바뀌었다가 다시 무지개로 해소되거나 했다.
그러다 문득 아무 것도 없는 허공이 며칠 계속되며 삶의 어떤 비밀 같은 것이 나타나기도 하고 웬 숫자 같고 부호 같은 것들이 보이기도 한다. 한번은 문학 하는 한 친지의 얼굴이 똑 고아 같은 쓸쓸한 표정을 하고 ‘죽음’이라는 형상으로 나타났다가 1주일 만에 스러지기도 하고, 한 날은 취침 나팔소리가 꽥 하고 크게 울리며 갑자기 머리 위쪽을 날카로운 독수리 발톱이 콱 움켜쥐고 펄쩍 날아 올라 내 몸이 벌떡 따라 일어섰다 쿵 하며 나가떨어진 일도 있었다.
그렇게 100일이 갔다.
그 사이 가족들과 변호사들이 번갈아 와서 밥을 먹으라고, 긴 과정이니 몸이 충실해야 한다고 그렇게들 걱정했으나 내게는 통하지 않았다.
나는 어느날 가족 접견 직전 흰 벽 위에서 어느 측근 부하 하나가 박정희에게 총질하는 형상을 보았다. 그 직후 접견하는데 어머니가 가톨릭의 전주교구 시위때 생긴 일을 몹시 흥분하며 말씀했다. 경찰들이 수녀의 두건을 마구 벗기고 목을 잡아 끌고 갔다는 거였다. 수녀에게 두건은 정조와 같은 것이다.
이 얘기에 순간적으로 화가 치민 나는 가족들에게 박정희가 총에 맞아 죽더라고 말해 버렸다. 그때 교도관 복장으로 입회했던 정보부원이 서둘러 나를 떼밀고 사방 안으로 들어와 접견이 중단된 일이 있었다.
또 하루는 이제는 고인이 된 황인철 변호사가 접견할 때 무엇인가 심각한 표정으로 무슨 말을 할 듯 할 듯하다 결국 못 하고 못내 아쉽고 서글퍼하는 얼굴로 돌아갔다. 그 접견에서 돌아올 때 복도에서 마주친 유명한 ‘꼴통’(구치소에서 말 안 듣고 사고내기로 유명한 반항자) 하나가 나더러 “부산·마산 왕창 와장창창창! 돌멩이 화염병이 쓩쓩쓩, 총알이 빠방빵빵
빵!”
<사진>
알았다.
그만하면 알아들었다.
폭동이다! 민중 반란이다!
방에 돌아오니 밖에서 웬 도둑님들끼리 통방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더러 들으라고 하는 거였다.
“부산·마산에서 경찰서를 때려부수고 불을 싸질렀대!”
아항! 알았다.
그러면 그러면 황변호사의 얼굴은…?
그렇다. 무엇인가 각오해야 한다.
내게는 참선밖에 없다. 죽더라도, 죽음을 당하더라도 웃으며 죽을 수 있는 길은 참선밖에 없다.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그 무렵 대통령 경호실장이던 차지철이는 반정부 인사 1,000여 명의 총살 리스트를 만들고 있었다고 한다. 경찰청(치안본부)에서 그 리스트 작성에 참가한 경무관이던 한 중학 동창생으로부터 ‘김지하는 포기하게’라는 말을 듣고 원주의 장선생님은 매일 산에 올라 사흘 동안 울면서 울면서 ‘아침이슬’을 부르셨다고 한다.
그렇게 100일이 갔다.
다른 것은 다 잊었어도 날짜 가는 것만은 속으로 꼬박꼬박 세고 있었다. 꼭 100일째 되는 날이었다. 맑고 밝은 가을날이었다.
<‘월간중앙’과 동시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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