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본디 조금 웃기는 사람이다. 더욱이 내가 태어나고 자라난 전라도라는 데는 청승이 심한 만큼 해학도 일상화된 곳이다. 답답하고 우울할 때는 우스꽝스러운 일들은 기억해내고 혼자 벙글거리며 웃고는 한다. 낄낄대며 몇 년, 킬킬거리며 몇 년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한계에 이르렀던가.
어느날 대낮에 갑자기 네 벽이 좁혀 들어오고 천장이 자꾸 내려오며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해서 꿱 소리지르고 싶은 심한 충동에 사로잡혔다. 아무리 고개를 흔들어 보거나 허벅지를 꼬집어 봐도 마찬가지였다. 몸부림, 몸부림치고 싶은 것이었다.
큰일이었다.
내 등 뒤 위쪽에는 텔레비전 모니터가 붙어 있어 중앙정보부와 보안과에서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24시간 내내 다 지켜보고 있으니, 조금만 이상한 행동이나 못 견디겠다는 흉내라도 냈다 하면 곧바로 소위 ‘구월산’과 ‘면도날’이 득달같이 달려와 한다는 소리가,
“김선생! 이제 그만 하고 나가시지! 각서 하나만 쓰면 되는 걸, 뭘 그리 고집일까.”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느 쪽으로 나든 무슨 결말이 나야만 나의 태도에 전환이 있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이것 큰일 아닌가!
참으로 이런 경우를 두고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라고 부르는 것이겠다. 그나마 천만다행인 것은 그 증세가 너댓새 간격을 두고 주기적으로 온다는 점이었다. 그 고비만 잘 넘기면 너댓새는 또 괜찮았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무슨 방도를 내야지, 이것 참 큰일났다고 매일 궁리해 봤으나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런데….
마침 봄이었다.
아침나절 쇠창살 사이로 투명한 햇살이 비쳐들 때 밖으로부터 날아들어온 새하얀 민들레 꽃씨들이 그 햇살에 눈부시게 반짝이며 하늘하늘 춤추었다.
그것.
그리고 또 쇠창살과 시멘트 받침 사이 빗발에 홈이 패어 그 홈에 흙먼지가 날아와 쌓이고 거기에 멀리서 꽃씨가 날아와 앉은 뒤 또 비가 오면 그 빗방울을 빨아들여 무럭무럭 자라나니 그것을 일러 ‘개가죽나무’라고 한다.
그것. 그 개가죽나무가 그날따라 유난히 푸르고 키가 크고 신비스럽기까지 했다.
그날.
운동나갔다가 붉은 벽돌담 위에서 무엇인가를 발견했다. 담 위에 점점점점점…, 무슨 점들이 찍혀 있어 눈살을 모으고 자세히 보니 풀들이었는데, 하이고! 그 꼴에 풀마다 쬐끄맣고 노오란 꽃망울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달고 있는 것 아닌가!
눈이 아프고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감방으로 돌아와 앉자마자 울기 시작해서 두세 시간은 족히 울었을 것이다. 우는 동안 내내 허공에서 ‘생명! 생명! 생명!’ 하는 에코가 들려왔다.
생명!
그렇다.
저런 미물들도 생명이매 ‘무소부재’(無所不在)라! 못 가는 곳 없고, 없는 데 없으며 봄이 되어서는 자라고 꽃까지 피우는데 하물며 고등생명인 인간이 벽돌담과 시멘트 벽 하나의 안팎을 초월 못해 ‘쪼잔하게’ 발만 동동 구른다고 해서야 말이 되는가. 생명의 이치를 깨닫고 몸에 익힌다면 감옥 속이 곧 감옥 밖이요, 여기가 바로 친구들과 가족이 있는 저기가 아니던가!
눈물 속에 아롱대는 시뻘건 철창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는 드디어 결단을 내렸다.
참선이 가장 좋은 ‘생명연습’이다.
참선책을 들여다보라!
이렇게 해서 참선하는 방법을 들여온 책들을 통해 익히기 시작했고, 그 무렵 몇 방 건너 같은 사동에 옛날 청담(靑潭) 큰스님의 수좌(首座)를 하던 한 사람이 들어와 있어 그이와 어거지 통방을 하여 몇 가지 꼭 알아야 할 참선 방법을 얻어 듣고난 뒤 마침내 어느날 방바닥에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하루 사등식(四等食) 한 덩이와 물 두 컵만 들면서 종일 정좌하고 잘 때도 가부좌를 튼 채 잠들었다.
<‘월간중앙’과 동시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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