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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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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28>

소리들

할 말이 있을 것이다.

어떻게 미치지 않고 견뎌 냈느냐? 어떻게 죽지 않고 살아 나왔느냐? 그렇게 긴 시간 인간 접촉이 끊어지면 어떻게 사람이 살 수 있다는 말이냐? 에잇! 무슨 얘기가 또 있겠지! 물론 있다.

이제부터 얘기하겠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사람은 '문화상품권'으로 유명한 김준묵 아우다. 김준묵 아우는 성공할 것이다. 왜냐하면 김준묵 아우는 그때 내가 있는 사방의 아래층에 있었는데 그렇게 사방팔방이 차단당한(허허허, 내 방 창문만 아니라 내가 있는 한 사동 전체의 모든 방의 창문에 철판을 때려붙여 막아버렸다. 일본 적군파가 주일한국대사관에 서대문감옥을 습격해 나를 해방하겠다는 삐라를 뿌린 것에 대한 대응이라 한다. 허허허허!) 내 귀에 들리라고 일부러 저녁만 되면 매일 일과삼아서(아아! 그 성의가 놀랍고 놀랍다!) 건너편 사동의 친구를 불러내어 그 무렵 밖에서 일어난 일들과 여러 소문들, 각오들, 생각들을 주욱하니 큰소리로 연설하듯 늘어놓는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세상 돌아가는 속내를 다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이것도 들통났는지 저녁에 준묵 아우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

또 있다.

여호와의 증인의 '똥퍼 장씨'다. 병역거부로 들어와 똥푸는 징역을 살고 있던 장씨가 그쪽으로만 오면 큰소리로 주어 목적어 등을 모호하게 하고 호칭 없이 내용만 상징적으로 떠들어댄다. 나는 그 방면에는 이미 도사가 되어 앉은 자리에서 다 해석하고 만다. 어찌 세상에 대해 접촉 단절이라고 하랴? 참새와 쥐와 개미까지 협조하는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어찌 나를 그대로 내팽개쳐 두겠는가.

또 있다.

이름 모를 도둑님들이 악을 악을 쓰면서 나를 욕하는 소리다.

"야! 김지하, 이 개새끼야! 요 며칠 전에 미국 국회에서 한국문제 심각하다고 떠들어댄 것도 모르냐, 이 새끼야! 그것도 모르는 게 무슨 빠삐용이야, 이 얼간이 같은 새끼야!"

"야! 이 씨팔놈의 김지하야! 어저께 연대 앞에서 화염병이 400개 터진 걸 아냐, 모르냐? 이 더러운 먹물 새끼야!"

이런 식이다.

또 있다.

전라도 조폭의 앞 뒤 세 우두머리가 '오기준'과 '조양은'과 '김태촌'인데 김태촌은 난 만난 일이 없고, 오기준과 조양은은 평소 삼천리독보권(三千里獨步權, 교도관의 감시 없이 구치소 내를 혼자 돌아다닐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처지에서겠지만 바나나나 카스텔라 같은 맛있는 먹을 것을 잔뜩 들고 와 내 방의 담당 교도관에게 다 준다.

그러면 교도관은 혼자 먹기에 너무 양이 많아 나에게 나눠 주거나 눈치를 채고는 그냥 내게 넘기곤 한다. 그 중간 중간에 내게 하는 것 같지 않게 잡답하듯 세상 소식을 떠들어댄다. 그래도 전라도랍시고 의리 지키는 거겠지? 그게 아니다. 그 무렵에는 양심선언 때문에 내가 조폭세계에서 '빠삐용'으로 통하고 있어서였다.

또 있다.

내가 뽕짝 좋아하는 걸 다 알고 도둑님들이 저녁통방 시간에 나와 가요 경연대회를 여는 것이다. 눈물이 날 때도 있었다. 왜냐하면 노래 직전 '헌정'하는 친구가 있어서다.

"'빠삐용' 형님께 '돌아와요 부산항'을 한 곡조 바칩니다."

구치소 뒤 안산이 다 떠나가게 갈가마귀 소리 소리 큰소리로,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는데
형제 떠난 부산항에
갈매기만 슬피 운다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마다
소리쳐 불러봐도
대답 없는 내 형제여
돌아와요 부산항에
그리운 내 형제여!


하도 많이 들어 입으로 줄줄 외울 정도로 많은 '헌정'을 받았으니 울기도 여러 번이다.

출옥 직후 나를 환영하는 자리에서 내가 그 노래를 불렀더니 그걸 어찌 알았느냐고 모두들 놀랐는데 내가 물어 왈,

"그게 누구 노래지?"

"조용필이야."

"조용필…? 조용필…?"

<사진>

그 무렵 KBS에 있던 한국 최고의 다큐멘털리스트라는 정수웅 형에게 조용필을 만나보고 싶다고 했더니 만나게 해 주었다. 여의도의 한 맥주집에서였다.

조용필 아우가 처음 만난 내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왈,

"저는 대중가수예요."

자기를 낮추어 겸손해 하는 말이었다.

내가 바로 대답하여 왈,

"나는 대중시인일세."

그러나 내 말은 나를 낮추는 게 아니라 도리어 나를 한없이 높이는 말이었다.

왜 그랬을까.

나는 이른바 대중에게 빚이 너무 많아서다.

그러나 지금도 이가 갈리고 치가 떨리는 음악이 하나 있으니, 감옥 내의 그 끝없는 확성기 소리로 떠들어대는 박정희의 소리 '나의 조국'이다.

인용하지 않겠다.

조건반사라 하던가.

하도 많이 들어 놓으니 걸레질하면서도, 걸으면서도 흥얼흥얼 '나의 조국'이었다.

그러매 나는 그 긴 세월 박정희에게 한 마리의 흰 쥐였다. 단지 내가 쥐를 도리어 유신시대에 저항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심지어 변소에 앉아 '씨팔' 소리 한 번도 없이 조용히 산 사람들보다 양심선언의 글자 한 자를 운반하던 그 쥐를 도리어 더 낫다고 생각하는 차이뿐이었다.

아아, 그 어떤 우스꽝스러운 일도 서글픈 일도 이렇게 세월이 지나면 모두 다 빛 바랜 한낱 이야깃거리로밖에는 안 남는 이 시간이라는 이름의 지속이여!

<‘월간중앙’과 동시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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