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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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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27>

안팎

그러나 그런 지나치게 인간 냄새가 나는 따위들보다 훨씬 훨씬 재미나고 우주생태학적인 일과는 우선 나의 양심선언 운반자들인 참새·개미·까치들과 함께 쥐·파리·모기·빈대며 풀·돌·물·연기·구름·흙과 도둑님들 그리고 반골(反骨)들과 통방하고 통방하고 또 통방하며 슬카장 노는 것이었으니 한번은 이 일과를 시로 지어 입속으로 중얼중얼 외워대다 출옥 이후 술김에 기억해내서 글을 쓴 바 있는데 그 제목이 왈 '안팎'이었다.

그러나 말처럼, 그렇게 즐거운 것만도 아니었으니 갇힌 사람으로서 석방의 가능성과 그 시기가 그야말로 '기약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유수(幽囚)의 시절이어서 슬픈 감성이고 울적한 사유일 수밖에 어쩔 도리가 없었던 것 같다.

그래, 어쩔 도리가!


1
새 속에서 묶인 내가
날으는 새 본다
노을로 타는 새 나 본다
핏발로 타는 내 눈속에서 노을로 타는
날으는 묶인 새 본다
내가 끝끝내
나팔소리 울리면 스러져 갈
새.

2
참새라면 쥐라면 파리 모기 빈대라면
풀 돌 물 연기 구름이라면
한줌 흙이라면
차라리 아예 태어나지 말았더라면
태어나도 노을진 어느 보리밭 가녁
귀 떨어진 돌부처로 모로 누웠더라면
일그러진 오지 그릇속
텅빈 기다림으로나 기다림으로나
거기서 항시 멈췄더라면
차라리
먼저 간 벗
가느다란 그 한 올
머리카락이었더라면.

3
입안에 신침 괴는 날은 틀림없이
귤 넣어주셨고
발 시라다 싶은 날은 어김없이
털양말 넣어주셨다
면회는 한달에 단 한번
편지는 써본 일도 받은 일도 없는 긴 세월
내몸과 당신 몸 바꾸어
어머니는 부처 이루셨나.

4
얘야
괜찮다
교도소 벽돌담 위에 풀꽃님도 피시니 괜찮다
건너편 병식님 계시던 방 창살사이
가죽나무님도 자라신다 아주 괜찮다
아침엔 참새님 와서 악쓰시고
저녁엔 쥐님 와서 춤추시고
이 빈대 모기 파리 구더기님도 계신다
옆방에 그 옆방에 도둑님들 잔뜩 계시고
황공하옵게도 내앞엔 간수님도 한분 계신다
괜찮다
얘야
이만하면 견딜만 하니
염려하지 마라
네 하느님께도
그렇게 말씀 올려라

5
벽속에 누군가 누워 있는데
거기 내가 누워있는데
창살너머 민들레씨 가득히 날고
마룻장에 깊이 새긴 빈 장기판
밖에서 소리없이
온종일을 누군가가 걷고 있는데
내속에 걷고 있는데
내가 그속에 걷고 있는데.


이 '안팎' 속에서 '모로 누운 돌부처'가 나왔다. 모로 누운 돌부처! 모로 누운 돌부처! 부처로되 돌부처요, 누웠으되 모로 누웠으니 열반에 든 부처같으나 그렇지 않다.'모'란 '잘못'을 뜻하는 우리말이고 '모나 개'라는 안 좋은 뜻이 '모'속에는 들어 있으며 또 '개'도 '도'도 못 되는'모'라는 말이다.

나는 결국 그 고생을 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모로 누운 돌부처'에 불과했다는 뜻이다.

<'월간중앙'과 동시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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