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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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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22>

민주회복국민회의

장모님만 하동에 그대로 머무르고 김상현 씨와 아내, 그리고 아기와 함께 부산을 거쳐 서울로 돌아왔다. 부산의 한 호텔에서의 일이다. 김상현 씨가 하도 이끌어 나, 아내, 아기가 다 함께 호텔의 한 싸이키델릭 클럽에 들어갔다.

귀가 찢어지는 듯한 전기음악에 어른도 정신이 산란한데 아기는 계속 잠을 자고 있었다. 아무리 건드려도 마치 죽은 듯 반응이 없었다.

아기를 뚫어지게 바라다보며 나는 길고 긴 한숨을 쉬었다. 아내에게 한마디 했던 게 기억난다.
"이 아기는 제 애비의 불행에 대비하고 있는 것일까."
"무슨 소리예요? 무슨 일이 있어요?"
"아니오. 너무 평온하게 잠든 것이 도리어 슬퍼!"

이튿날 저녁 청진동의 한 과자점에서 만난 함신부님은 내게 정식으로 국민회의 대변인을 맡아 달라고 부탁하며 대변인이 조직적 문제들까지 떠안을 수밖에 없는 사정을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그 다음날부터 내 이름으로 회의의 공식 결정들이 발표될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날 밤 광화문 동아일보 2층 편집국에서 농성중이던 동아투위 친구들을 방문해 격려하고 또 잇따라 조선일보 투위가 농성중인 국제극장 뒷골목의 한 여관에서 투위의 리더인 임재경任在慶) 선배와 신홍범(愼洪範) 형을 만나 격려하였다.

그 자리에 방일영 회장과 조폭(組暴)의 거인 '아라이' 씨가 방문했다. 나는 인사하고 일어서면서 '아라이' 씨의 귀에 대고 잠깐 속삭였다.
"몸을 건드리면 안됩니다. 몸만 안 건드리면 우리가 감사히 생각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그 이튿날 아침 하루 일정으로 원주에 가 지주교님과 장선생께 국민회의 일을 보고하고 상의하고자 고속버스 터미널로 가다 마침 정릉으로 들어오던 경찰차에 연행돼 성북서를 거쳐 그날 저녁으로 중앙정보부 제7국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면서 차 속에서 짐작했다.

첫째가 회의 대변인 결정 소식.

둘째가 김상현 씨의 하동 방문.

셋째가 장준하 씨의 제보대로의 사정.

넷째가 동아일보 등에 발표한 인혁당 관계 발언들.

이 네 가지는 생각했으나 그밖의, 결정적으로 7국이 원주 집을 덮쳐 몇 권 안 되는 사회과학책들과 그보다 한 교도관을 통해 원영이가 빼돌린 두 권의 옥중수첩에 나의 새로운 사상에 관한 전체 구상 중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언급 부분이 있어 반공법에 저촉되어 있는 줄은 새카맣게 모르고 있었다.

<'월간중앙'과 동시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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