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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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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21>

하동

거의 까무라쳤다.

밤이고 낮이고 간에 며칠을 내리 잤다.

그집 주인장에게 정보부에서 전한 말은 "고맙다"였고 "오래만 있어 달라"였다고 한다.

며칠 동안 먹고자고 했다.

며칠이 지나 식구대로 지금은 공원이 돼 있는 섬진강변의 너른 백사장으로 놀러 나갔다. 이곳! 이 백사장은 동학당의 갑오혁명(甲午革命)때 혁명의 흡혈귀라고 불렸던 과격무쌍한 김개남포(金開南包)가 들어와 양반 족속이나 아전배들을 2,000여명이나 학살했던 곳이다. 붉은 피가 백사장과 강물을 온통 물들였다고 한다. 그 붉은 피가 흐르던 물, 지금은 가없이 푸르기만 한 섬진강물에서 시조차 느끼지 못할 만큼 나는 긴장되어 있었고 지쳐 있었고 예민한 폭력적 감각에 휘둘리고 있었다. 영민한 바깥 주인장은 이미 우리가 오던 그 이튿날 부산으로 떠나 버리고 집에는 여자들만 있었다.

그래. 동학은, 동학의 역사는 나와 무슨 관계, 현재의 우리와 무슨 인연이 있는 것일까. 내가 그때 생각한 것, 본 것은 하나밖에 없었다. 아직 흑백이었던 텔레비전에서 꿈꾸는 듯한, 약에 취한 듯한 눈초리의 가수 김추자의 고혹적인 노래와 몸짓 그것 뿐, 다른 아무 생각도 없었다.

그런 중에 김상현 씨가 들이닥쳤다.

사연은 단 하나였다.

민주회복국민회의가 다가오는 새로운 선거, 김상현 씨의 말로는 미국의 압력 때문에라도 새로운 선거가 불가피하다는 것이었는데, 그 선거에 진짜 야당으로 출전할 것이 확실시되자 김영삼 씨와 양일동(梁一東) 씨를 비롯한 여러 야당 지도자들이 너도나도 뛰어들어 지방의 국민회의 지부를 제멋대로 조직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며칠 사이에 진전된 상황이라고. 이것을 막지 않으면 안 되는데 김대중 씨는 지금으로서는 소수(少數)요, 약세(弱勢)인지라 아무래도 김지하가 올라와 회의의 대변인을 맡으면서 실질적으로 조직을 장악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일단 대답을 피하고 잠깐 틈을 내어 한밤의 강변으로 나아갔다. 생각해 보기도 전에 이미 대답은 나와 있었다. 김대중 씨가 회의에서 강세를 장악하게 되는 것은 자기 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장선생 그룹과 지주교, 가톨릭 사제단과 윤배 형에 의한 리영희 그룹 그리고 장차 이종찬 선배 등에 의해 포진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윤배 형님의 소망이자 장선생님 자신의 희망사항 아닌가!

내가 다시 감옥에 들어가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그러나 국민회의 대변인 자격으로 구속되어야만 한다. '슬라이딩 태클'이 아니라 이제는 명분의 싸움이요, 도전이며 동시에 기세(氣勢)의 전투다.

아아, 나는 꼭 그렇게 실천하였다.

그러나 호치민(胡志明) 세력에 의한 베트남의 함락을 그 누가 예감이라도 했겠는가. 세계 정세와 미국의 태도는 돌변하였고 국민회의가 자진해산해 버렸으니 드디어 나의 7년에 걸친 길고 긴 외길의 고난이 시작된 것이다.

<'월간중앙'과 동시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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