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교님은 나보다 며칠 뒤에 출옥하셨다. 그날, 지주교님이 원주에 도착하던 날은 원주 시민 거의 반이상이 거리로 뛰쳐나와 환영하는 인파로 북적댔다.
주교님은 차에서 내려 여러 신부님들, 여러 평신도 지도자들 그리고 나와 함께 원동성당으로 행진하였다.
<사진>
지금도 기억한다.
중도에 한 청년이 주교님 앞에 와 외투를 벗어 길에 깔았다.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이었다. 호산나!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미받으소서!
'호산나'는 '우리를 즉각 구원하소서'의 뜻이다.
'즉각!' 아아 '즉각'말이다!
내 눈이 무엇인가, 누구인가를 찾아 헤매다 문득 머무른 그곳에 청강(靑江) 장일순(張壹淳) 선생님이 손으로 눈물을 닦으며 서 계셨다. 그것이 원주였다. 민중의 영원한 고향, 호산나의 원주! 원주는 결국 최수운(崔水雲)과 최해월(崔海月)의 땅이기도 했으니 최수운 선생의 시에,
푸른 강물의 넓고 넓음이여(靑江之浩浩兮)
소동파가 나그네와 함께 풍류를 놀도다(蘇子與客風流)
이 한 구절로 하여 원주는 또한 청강의 땅이요, 풍류의 땅이니 주인공 동학(東學)과 나그네인 서학(西學)이 서로 함께 명상과 변혁의 통전인 풍류선도에 귀의하는 혁명의 땅이었던 것이다.
<'월간중앙'과 동시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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