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재판 도중 이 철·유인태 부분에서 재일교포 조직휘와 일본인 다찌가와·하야카와 두 사람의 진술 녹음을 들었다. 민청학련의 두 사람에게 결정적으로 불리한 발언을 늘어놓고 있었다. 그때 나는 세 사람의 일본 관계자들에게 몹시 분개해 있었다. 그 분노가 일본 언론과의 회견에서 터져나왔다. 쓸데없이 끼어들어 한국 내부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들었다고 강하게 비난한 것이다. 아마 일본인들은 상처를 받았던 것 같고 준비중에 있던 다찌가와·하야카와 두 사람을 환영하는 하네다공항에서 긴자까지의 국민행진은 취소되었다. 일본인 친구들의 나에 대한 비난이 연일 쏟아졌다. 나는 거듭되는 일본 언론과의 회견에서 그들과 그들을 대하는 일본 국민들의 엉터리 영웅 숭배를 비판하는 내용을 더욱 더 강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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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요미우리신문(讀賣新聞)의 한국 특파원이 찾아왔다. 그 이름이 '단도'(丹藤). 그는 그 무렵 내가 만난 어느 일본인 기자보다 일본적 민족감정에서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그는 일본인 두 사람의 실수와 신의 부족을 시인하고 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적 세계주의자로서의 의무를 수행하려 했던, 유치하나마 가상스러운 행태에 대해 너그럽게 이해해줄 수 없느냐고 부드럽게 말해왔다.
나는 그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렇다. 내가 바라던 것은 바로 그런 태도였다. 나는 곧 그들의 선한 의도를 인정하고 그들이 캄캄한 지하실에서 겪었을 고통에 대해 한민족을 대표해 사과했다. 그리고 일본 국민과 나의 벗들에게 그 두 사람을 따뜻이 맞이해 달라고 부탁했다. 요미우리신문 특파원은 웃으며 돌아갔고 그것으로 일본과 나의 갈등은 끝났다.
훗날 방일중 그를 만났고 그는 그후 10년 가까이 중국 특파원을 지냈으며 그가 쓴 중국에 관한 비판적인 책을 선사받았다. 그러나 그는 중국의 부패를 지적하면서도 상승하는 중국의 잠재력을 인정하고, 겉은 화려하나 실제에 있어 가라앉고 있는 일본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우익의 요미우리신문의 오랜 기자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본인들의 이런 태도가 좋다. 긍정과 부정, 이것과 저것이 함께 공존하는 살아 있는 사람! 이것이 양심적인 일본 지식인의 진짜 얼굴이었다.
<'월간중앙'과 동시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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