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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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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13>

징역

영등포교도소에서 나의 무기징역이 시작되었다.

머리를 박박 깎았고 맨처음 먹방에 배방되었다. 먹방이란 글자 그대로 새카만 방이니 밥그릇 들어오는 식구통만 열려 있고 나머지는 0.78평의 폐쇄된 방, 징벌방이었다.

왜 징벌방인 먹방에 집어넣었을까.

의문이 앞섰으나 나는 일체의 권익투쟁을 포기하기로 했다. 바로 옆방에는 박형규 목사님이 계셨다. 아항! 가장 미움받는 두 사람이로구나! 그런 생각은 했지만 나도 목사님도 아무 말 안 했다.

온종일 식구통만 바라보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식구통만은 늘 열려 있어서 새카만 속에 네모난 하얀 외줄기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그 무렵, 하루는 문득 '우주에로 뻗어가는 외줄기 하얀 길, 나의 운명'이라는 말이 떠오르고 10여년전 4월혁명 직후 한밤중 수원농대 앞길에서 체험한 그 끝없는 흰 길의 환영이 다시금 떠올랐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무언가 나의 피할 수 없는 운명에 직결되는 것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았다. 그후 천주교 교리방(敎理房)에서 자고 제본(製本)공장에서 징역을 살 때 그 흔해빠진 종이로 스스로 만든 수첩에 그 환영을 그대로 써놓은 것, 나중에 문제가 되어 7년간 수형생활을 하게 만든 두 권의 수첩 속에 바로 그 흰 길의 운명이 그대로 있다. 뒷날 서대문감옥에서 참선하던 중에도 보았고 또 훗날 그 훗날에 '흰 그늘'의 체험에서도 되풀이된 이상한 환상이었다.

나머지 일들은 모두 그렇고 그렇다. 다만 교리방에서 잘 때 내 바로 곁에 김원영이라는 독특한 아이가 나를 형님! 형님! 하고 따랐다. 베트남에서의 양민학살범이었다. 나를 형님으로 모시고 싶다고 했다. 우울한, 그러나 가슴에 한이 깊은 주먹 출신이었다.

나는 그 무렵 처음으로 가족 접견이 허락되었다.

아내는 초췌한 모습이었다. 말이 없는 대신 속으로 심한 고통을 받고 있음이 역력했다.

그러나,

아기!

우리 아기!

재판때 잠든 모습을 한 번 보고 두번째가 바로 영등포감옥에서의 접견 때였다. 이번에는 눈을 뜨고 있었는데,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묘하다'였다.

물론 어느 애비치고 첫아들을 특별하게 생겼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 없겠으나 이 아이는 특별하게 생긴 것 같았다. 허허허, 불출(不出)이 따로 없구먼!

생각해 보니 죽어가는 소나무에 솔방울이, 그것도 크고 덩실한 솔방울이 많이 달리는 이치였다. 나는 죽어가고 있었을까. 그럴지도 몰랐다. 아마 그때쯤, 그리고 조금 지나 국민투표를 할 때쯤, 민주회복국민회의(民主回復國民會議)가 태동할 무렵쯤은 그리고 김재규 정보부장의 시해사건 직전에나 김대중 씨 등을 포함한 총살 대상 1,000여명의 리스트까지 작성한 것 등 박정희가 나를 죽일 생각을 한 자취가 분명한 것을 보면…. 그럴지도 몰랐다.

좌우간 나는 상당히 평안한 마음으로 징역을 살았다. 죽은 듯이 고요하게…. 그때 영등포감옥에는박형규 목사님, NCC 총무인 김동완 목사님, 미술사학자 유홍준 아우, 중국학자 백영서 아우 등이 있었다. 그리고 긴급조치 1호로 장준하 선생과 함께 구속된 백기완 선생이 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유신헌법의 가부(可否)를 묻는 국민투표가 있었으니 우리는 모두 석방이 머지않음을 알고 있었다.

매우 추운 어느 겨울날 밤, 우리는 마침내 석방되었다.

<'월간중앙'과 동시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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