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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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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11>

군사재판

별들이 앉아 구형과 판결을 내리고 있었다.'고행… 1974'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보인다.

사형이 구형되었다.

내 뒷자리의 서경석이 한마디 했다.
"웃기네."

나도 웃었다.

김병곤의 최후진술이 시작되었다. 그 첫마디가,
"영광입니다!"

아아, 이게 무슨 말인가. 이게 무슨 말인가.
"영광입니다!"

사형을 구형받자마자 '영광입니다'가 도대체 무슨 말인가. 나는 엄청난 충격 속에 휘말려들기 시작했다. 이게 도무지 무슨 말인가. 분명히 사형은 죽인다는 말이다. 죽인다는데, 죽는다는데, 목숨이 끝난다는데, 일체의 것이 종말이라는데, 꽃도 바람도 눈매 서글한 작은 연인도, 어여쁜 놀 가득히 타는 저 산마을의 푸르스름한 저녁 연기의 아름다움도, 늙으신 어머니의 주름살 많은 저 인자한 얼굴 모습도, 흙에 거칠어진 아버지의 저 마디 굵은 두 손의 훈훈함도, 일체가, 모든 것이 갑자기 자취 없이 사라져 버린다는데, 그런데 '영광입니다'.

성자(聖者)의 말이다, 그것은. 우리가 성자인가.

사형을 집행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비꼬는 말이다. 그것은. 무슨 일이든 저지를 수 있는 저들의 그 독살스러움을 잘 알고 있는 우리가 다만 집행하지는 못하리라고 생각하여 여유있게 비꼬고 있을 그런 처지인가. 아니다.

그러면 무슨 말인가.

그렇다.

확실히 그렇다.

우리는 드디어 죽음을 이긴 것이다.

그 지옥의 나날, 피투성이로 몸부림치며 순간순간을 내내 죽음과 싸워 드디어 그것의 공포를 이겨내 버린 것이다.

경석이 한 사람, 병곤이 한 사람, 또 나 한 사람이 이긴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집단적으로 이긴 것이다.

이기고 나아가 그 죽음 위에 한없이 거룩한 성총의 봉인을 씌운 것이다.

죽음을 받아들임으로써 죽음을 이겼고 죽음을 스스로 선택함으로써 우리들, 이 집단의 영생을 얻은 것이다. 우리는 우리들 이 집단의 사슬에 묶인 가슴 속에서 비로소 타오르기 시작하는 참된 삶의 저 휘황한 불꽃을 감격에 차서 바라보고 있었다.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아니 역사적인 것만이 아니다. 종교적인 천상의 예감이었다. 아니, 종교적인 것만도 아니다. 예술적인 감동의 극치이기도 하였다. 그렇다. 그 순간은 무어라고 차마 이름붙일 수조차 없는, 모든 인간적인 가치와 모든 고상한 것들이 통일되는 빛나는 절정이었다.

그때 어떤 이상한 영감에 접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일어났다. 그리고 언뜻 단 한 마디,'정치적 상상력'이라는 어휘가 내 머리와, 이상스럽게도 그와 동시에 바로 내 가슴 속에 불에 달군 시뻘건 낙인처럼 아프게 아프게, 깊이 깊이 아로새겨지고 있음을 느꼈다.

그렇다.
'정치적 상상력!'

탁월한 의미에서의 정치와 예술의 통일. 어줍잖은 절충이 전혀 아니다.

통일!

바로 그것이다.

나는 드디어 그처럼 오랜 세월 나를 괴롭혀온 나의 민중적 운동, 정치행동과 예술적 창조 사이의 저 미칠 것만 같던 간극을 일시에 극복해 버리고 만 것이다.

숙제 해결의 결정적 해답을 선사받은 것이다. 엄청난, 엄청난 순간이었다. 나는 그때 혼잣소리로 중얼거렸다.
"감사하나이다."

그리고 또한 말할 수 없이
"영광입니다."

<'월간중앙'과 동시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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