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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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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09>

슬라이딩 태클

구치소로 넘어갔다.

구치소 안으로 비밀 전갈이 들어왔다.

지주교님이 입국, 공항에서 연행되었다가 박정희의 특명으로 석방되었으나 며칠후 200여명의 원주교구 청년신도들과 함께 상경하여 성모병원에 입원한 뒤 병실에서 내외신(內外信) 기자회견을 열고 그 자리에서 양심선언을 하셨다고. 그 내용은 유신 철폐를 위한 학생시위 자금으로 김지하에게 120여만원을 준 것이 사실이며, 자신은 유신 철폐를 위해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선언해 버리셨다고. 그 길로 정보부를 거쳐 서대문구치소로 입감되셨다고.

<사진>

됐다!

그러나 주교님께는 죄송한 마음이었다. 가까운 교도관들을 통해 그날 밤부터 시작하여 나는 이른바 '슬라이딩 태클' 전술을 전 구치소 전 사방에 속속들이 알리도록 신신당부했다.

혐의 사실 전부를 시인하고 조직 관계를 모두 다 불어버려라. 현정부의 파렴치성과 10월유신의 반민주성을 당당히 고발하며 접촉 범위를 최대한 확대진술함으로써 피해 범위를 거듭 확대하라! 피해자들은 이후 전원이 반유신 활동가로 변모할 것인즉 인간적 죄스러움을 떨쳐버려라! 등이다.

지금도 가끔 회고하며 쓴웃음을 짓는 것은 몇몇 아우들의 고답적 태도다. 전술을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 거부만 지속하는 아우들의 '기미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그 무병법(無兵法) 상태'가 답답했던 기억이 난다.

그 결과 소환, 연행, 구금, 피해의 범위가 수천 명에 달하고 단 한 대의 뺨이라도 맞았던 사람은 실제에 있어 모두 반유신(反維新) 분자(分子)로 변모하여 민청학련사건을 분기점으로 국내의 반유신투쟁이 대중운동으로 전환하고, 국내외 각계각층의 효력있는 전선을 결성하게 되었으니 훗날의 민주회복국민회의(民主回復國民會議) 등은 다 이같은 대중성과 전선 양상 성격을 반영한 것들이었다.

그 모든 전변(轉變)이 민청학련 전술의 '슬라이딩 태클'에서 비롯되었고 박정희는 확실하게 패배를 인정했으니 이미 기왕에 선포한 유신헌법을 다시금 조작적 국민투표에 부치는 코미디를 연출할 수밖에 없는 수동성(passive)에 빠져든 것이었다.

그러나 이 역시 '솔라 페시브'(Solar passive)였으니 햇빛의 이동에 따라 대세(大勢)의 방향을 따라 기획하는 것. 바로 이미 그런 모습으로 되어가고 있었으니 꼭 나와 우리의 공로라고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여하튼 두 사람의 공로는 막대했으니 어찌하랴! 이로 인해 우리의 보석인 지주교님이 당뇨를 얻으시어 결국 돌아가시게 되고, 우리의 진주(眞珠)였던 조영래 아우가 장장 7년간의 피신생활로 고초를 당하게 되었으니 오늘날에 와 되돌아보건대 그 또한 다름 아닌,'헛되고 헛되고 또한 헛되도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음을 통감(痛感)한다.

'슬라이딩 태클!'

그러나 그 지렛목인 지학순 주교님과 조영래 아우가 없었다면 그 전술은 결코 성공할 수 없었던 것이다.
'솔라 페시브!' 이 역시 겸허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월간중앙'과 동시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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