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부두에 닿고, 내리기 위해 수갑을 차고 갑판으로 나오니 이감독이 브리지를 잡고 고개를 숙인 채 오열하고 있었다.
그 뒷모습에 꾸벅 절하며,
"형님, 죄송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그런데 그 곁에 서 있던 문정숙 씨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꼭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었다.
<사진>
그 무렵의 그 흔한 독립운동 영화에서 일제에 끌려가는 투사에 대한 한 여인의 전별의 신 같았다. 배우는 역시 배우였다. 아주 숙연한 분위기였으니까. 원두와 제작진 및 아는 스태프들과 작별하고 부두로 올라서는데 그곳에 몰려섰던 군중들 속에서 여러 소리가 쏟아졌다.
"옴메, 못 보던 얼굴인디…."
"신인배우랑게! 신인이여!"
"먼 배우가 저렇게 꾀죄죄하다냐?"
"독립투사여! 독립투사!"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다. 잘난 체하고 미소를 보낼 수도, 그렇다고 잘못한 체하고 고개를 숙일 수도 없었다.
어물쩡해서 속히 빠져나와 대기하고 있던 경찰차를 타고 목포경찰서로 향했다.
떠오르기 시작한 아버지의 영상! 그리고 그 숱한 민중들의 이미지! 아, 나는 혹시 잘못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영웅주의는 아닌가. 잘 가고 있는 것인가. 기침, 끊임없이 기침이 터져나왔다.
목포서 정보과장은 흐뭇이 웃으며,
"귀향을 축하합니다. 그 수갑 좀 얼른 끌르랑게!"
가까스로 미소짓는 나에게,
"어디 잘 아시는 음식점 있는가요? 우리가 밥 한끼는 대접해야 예의인께잉―."
"상해식당 자장면이오."
정보과장은 또 흐뭇이 웃으며,
"입맛은 변함없지라우, 잉―."
그렇게 심한 기침 속에서 자장면 한 그릇을 마저 다 못먹고 출발하여 그 무렵에 운행되기 시작한 고속버스를 탔다. 호송하는 두 사람의 경관은 권총을 찼고 내 손의 수갑은 소매 속으로 감추어졌다. 그 경관이 호의를 베풀어 서비스했다. 고향의 인사였다. 그날 신문이었다.
신문에는 수십 명의 민청(民靑) 지도부와 인혁당(人革黨) 관계자들의 얼굴이 계보를 만들어 나와 있었다. 그중에 얼른 눈에 띄는 게 조영래 아우의 얼굴이었다.
아아! 만사 다 끝났다!
그 순간부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깊고 깊은 지옥의 잠! 눈을 떴을 때는 서울이었다.
나는 그날로 정보부 6국으로 들어갔다.
<'월간중앙'과 동시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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