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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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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04>

박정희의 코

죽음을 선택해 죽음을 이겨낸
촛불 신비의 苦行 1974년

"그 방들 속에서의 매 순간 순간들은 한 마디로 죽음이었다. 죽음과의 대면! 죽음과의 싸움!
그것을 이겨 끝끝내 투사의 내적 자유로 돌아가느냐, 아니면 굴복하여 수치에 덮여
덧없이 스러져 가느냐? 1974년은 한 마디로 죽음이었고 우리들 사건 전체의 이름은
죽음과의 싸움이었다. 죽음을 스스로 선택함으로써 비로소 죽음을 이겨내는
촛불 신비의 고행, 바로 그것이 우리의 일이었다."

***박정희의 코**

긴급조치 4호가 발동되면서 신문·라디오·텔레비전 등에 박정희가 나타나 한 말씀 거룩하게 지껄였다.

"학원 주변에 고의적인 장기 학적 보유자들이 배회하며 직업적 학생운동가를 양성하고 있는데 나는 그들이 공산주의자임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자기 코를 가리키면서,
"내 코는 못 속인다. 나는 냄새를 맡고 있다. 직업적 혁명가들이 배후에 있다. 이 자들을 소탕해야겠다."

<사진>

나는 박정희의 코에서 무엇을 느꼈을까?

'츠루미', 즉 일본 쿄토(京都)대 철학교수요, 김지하구명위원회 위원장인 츠루미 순스케(鶴見俊輔) 선생이 내게 선물한 두 권의 책 '전향(轉向)'에서 그 '전향의 안테나'를 본 것이다. 박정희의 코는 그가 과거 친일파였다가 거기에서 전향했고, 좌익이었다가 거기에서 또 전향한 뒤로는 바로 그 일에 대한 콤플렉스를 지닌 채 좌익을 때려잡는 정보업무의 참모장을 지내면서 더욱 예민해진 사정을 압축한다.

그 코에 붙잡힌 존재가 바로 나였다. 그들은 나를 찾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틀렸다. 나는 지하조직에 속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통해 혁명을 하려는 골수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며, 마르크스를 인정하는 사회주의자라 하더라도 그것은 민족주의나 가톨릭·불교·동학·신좌익 등으로 혼합된 아직은 구도(求道)중의 방황하는 시인에 불과했던 것이다. 질긴 행동은 이념 때문이 아니라 정열 때문인 것이었다.

그러나 그 코는 바로 나의 냄새, 즉 '적극성'의 냄새를 맡았고 그 전향의 안테나는 나를 전향시키는 쪽으로 움직였다. 전혀 뜻밖이었다. 왜냐하면 비록 사회주의·공산주의가 붕괴된다 하더라도 이미 그것을 부분적으로 포함한, 그것의 대안을 찾고 있던 나에게는 하나의 정보이지 사형선고도 전향의 메시지도 아무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20여년전 '김지하가 전향했다'고 소문이 돌았다는데 그 말 자체가 우스운 것이고, 그 뒤 나를 향한 극좌들의 비난 역시 오해의 산물에 불과한 것이었다. 감옥에 있는 동안 나를 지독한 빨갱이로 우상화시킨 결과인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위험을 느꼈으며 동시에 역설적이게도 이 운동의 대성공, 한국현대사에 하나의 분기점을 형성하는 새로운 주체들의 탄생으로 이어지리라는 예감을 느꼈다. 그렇지만 무척 견디기 힘들고 피곤했다. 그 무렵 문득 환청처럼 갓난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목숨
이리 긴 것을
가도가도 끝없는 것을 내 몰라
흘러 흘러서
예까지 왔나 에헤라
철길에 누워
철길에 누워

한없이 머릿속으로 얼굴들이 흐르네
막막한 귓속으로 애울음소리 가득차 흘러
내 애기
피속으로 넋속으로 눈물속으로 퍼지다가
문득 가위소리에 놀라
몸을 떠는 모래내
철길에 누워

한번은 끊어버리랴
이리 긴 목숨 끊어 에헤라 기어이 끊어
어허 내 못한다 모래내
차디찬 하늘

흘러와 다시는 내 못가누나 어허
내 못돌아가 에헤라
별빛 시린 교외선
철길에 누워
철길에 누워

'모래내'라는 시다. 충격은 난데없는 애기 울음소리로부터 왔다. 술 때문이었을까. 잠은 오지 않고 내내 울음소리의 기억에 시달렸다. 아내가 걱정되었던 것이다.

나는 전화를 걸어 김수환 추기경님과 시간약속을 하고 밤에 서울 교구청을 조심조심 찾아가 만나 뵈었다.

내 부탁은 내 아내를 추기경님 보호 아래 성모병원에 입원시키고 추기경님께서 좀 돌봐 달라는 것이었다. 추기경님은 그 부탁을 받아들이셨다.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나는 또 그곳을 떠나 조심조심 모래내로 돌아왔다.

<'월간중앙'과 동시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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