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02>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02>

절두산(切頭山)

내 외로운 삶에서, 내 괴로운 감옥살이에서 떠나지 않고 내내 거기 그렇게 우뚝 서 있던 산봉우리 하나 있으니 한강 가의 저 시커먼 절두산(切頭山)이다.

예부터 나라의 역적을 목쳐 죽였고, 천주교 박해 때는 김대건(金大建) 신부의 목이 버려졌으며 상하이(上海)에서 돌아온 김옥균(金玉均)의 시체가 부관참시(剖棺斬屍), 능지처참 당한 모래밭도 절두산 아래 강변이다. 지금은 그 꼭대기에 성당과 기념관이 있으나 그 무렵 아무 것도 없었고, 아무 표지도 없었다.

2월 바람이 몹시 불던 날, 햇살은 한강물 위에 번뜩번뜩 빛날 때 한 오후 나는 문화패의 아우들과 함께 절두산 바로 아래 김옥균의 시체가 토막나고 수급이 효수되었던 모래밭 그 자리에 앉아 이별의 술잔을 나누었다.

절두산 너머 어딘가에서 아슬아슬하게 아코디언 켜는 소리가 들려왔었다. 나는 소주잔을 고균(古筠)의 반역(反逆)의 자리 위에 한 번, 대건의 반역의 자리 검은 바위 밑에 또 한 번 붓고 나서 나와 우리의 반역의 자리인 내 몸 안에도 한 번 부었다.

"나는 아무래도 감옥에 갈 것 같다. 그러나 너희들은 따라오지 말아라. 감옥에는 나 혼자 가는 것으로 만족해라. 너희들이 이제부터 할 일은 내가 하려다 못한 일, 하고 싶지만 성공시키지 못한 일을 하고 또 성공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민중민족문화운동이며, 그중에도 특히 탈춤이나 마당굿·풍물 같은 연행예술이다. 또 판소리나 시나위, 정악(正樂)이나 민화(民畵) 등이다. 힘을 모아라. 그리고 대본을 쓰는 데서 힘이 부치거든 황석영 씨에게 도움을 청해라. 문체에서 제일 너희들 느낌을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이 황석영이다.

<사진>

다시 부탁한다.
정치를 작품 안에서 표현은 하되 정치에 직접 뛰어들지 말아라. 정치에 기울면 예술을 할 수 없다. 이 말을 내내 명심해다오. 부탁한다. 정치는 나 한 사람으로 그치자.

너희들은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을, 그 예술을, 그 전통의 현대화를, 민족적 형식 속에 보편적이고 변혁적인 사상을 담아 수많은 씨알들을 키워내야 한다. 마당에서, 판에서, 그리고 극장이나 공회당에 들어가더라도 그 극장, 그 공회당을 마당과 판의 원리로 역동화시켜서.

나는 이제 그만 이별해야겠다.
금방 가지 않더라도 나는 틀림없이 수배될 것이다. 잡혀 가거나, 잡히지 않으면 계속 지하에서 활동한다. 정치조직은 다른 사람이 할 것이다. 나는 그와는 또 다른 일을 할 것이다. 그러나 알려고 하지 말라. 시간이 가면 자연히 알게 된다.

우리 부모님 가끔 들여다봐다오. 우리 집사람과 아기 부탁한다. 우리 아버지 가끔 술 좀 사드려다오.
부디 내가 아끼던 것들을 아껴다오.
사랑했던 사람들을 사랑해다오.
너희들은 내 후배라기보다 나의 친동생들이다.
부디 잘 있거라."

바람은 풍덩풍덩 불고 차디찬 물 위에서는 햇살이 부서지고 있었다. 나는 전혀 새로운 길을 예비하고 있었다.

<'월간중앙'과 동시연재>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