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튿날 아침 집을 나서면서 대문 밖까지 나와 전송하는 아내에게 그날 있을 일을 간략히 얘기해 주었다. 아내는 무표정이었다.
혹시 며칠 지나야 돌아오게 될지, 또는 몇 달간 교도소에 가 있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아내는 역시 무표정이었다.
대신 왼손을 배 위에 갖다 대었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다. 아기가 노는가?
아기! 아기! 아기!
택시로 종로까지 가면서 내내 아기를 생각했다. 그러는 동안 겹쳐서 내가 안 보일 때까지 끝끝내 문앞에 그대로 서 있던 아내의 모습이 아슬아슬 떠올랐다. 마음을 강하게 먹어야만 되었다. 시선을 창밖 거리로 돌렸으나 여전히 그 모습은 지워지지 않았다. 결심을 단단히 굳혀야만 되었다.
단단히! 단단히!
장공(長空) 김재준 목사님이 선언문을 낭독하셨고 내외신 기자와의 회견도 끝났다. 연행을 선포하고 안내하는 종로경찰서 경찰관들을 따라 트럭에 올라 우리는 종로서까지 갔다.
기다렸다.
상부의 지시가 올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서에서 점심을 먹고 또 기다렸다.
밖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내 곁 벤치에 앉아 계시던 김재준 목사님의 한 말씀이 기억난다.
"미스터 김, 외국에 좀 다녀오지."
"어디 그렇게 되겠습니까?"
"바쁠수록 외국 견문을 넓히는 게 중요해요. 평생 일할 텐데 뭘…."
"글쎄요. 저는 한국땅도 다 밟아 보지 못했습니다."
"내가 한번 주선해 볼까?"
"이때다 싶으면 제 스스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날이 완전히 어두워지자 종로서장이 들어와 우리를 면담했다. 그 서장은 '비어'(蜚漁) 필화사건때 마산경찰서장으로 있었노라고 자기 소개를 했다. 성 선생님, 김 목사님, 천 선생님만 남기고 모두 방면했다.
인사동 입구에서 주교님, 법정스님 등과 헤어지고 나 혼자 터덜터덜 인사동 골동가게 앞을 걸었다.
"이제 시작이다.
문제는 아내다.
각오를 단단히 해야겠다.
그러나 아내는 끝내 이겨낼 것 같다."
또 다시 아슬아슬 아내의 모습이 떠올랐다. 서둘러 택시를 타고 정릉으로 급히 돌아왔다. 문을 열고는 아내가 조용히 미소지었다. 그리고는 들릴락 말락 자그마한 입안 소리로 말했다.
"고마워요."
<'월간중앙'과 동시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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