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에 주교님과 나는 잠깐 내설악(內雪獄)에 들어간 일이 있다. 주교님은 하루 주무시고 나서 속초쪽으로 넘어가고 나만 그대로 주저앉았는데 거기서 우연히 황성모(黃性模) 선생을 만났다.
황선생은 본디 서울대 문리대에서 사회학을 가르치셨고 소위 '민비'(民比), 즉 민족주의비교연구회(民族主義比較硏究會)의 지도교수이셨다. 그 민비가 정부의 탄압을 받으면서 구속되어 재판받았고 그 길로 대학을 그만두고 '중앙일보'로 가셨다.
어두운 숲 저편 여울 물소리가 폭음처럼 시끄러운 백담사 안쪽 이종복(李宗馥) 선생 별장 마루에서였다. 캄캄한 밤이었다.
"어떻게 할 작정인가?"
"몇 사람은 부딪쳐 깨어져야 합니다."
"너무 과격하지 않은가?"
"과격이란 상대가 그렇지 않을 때지요. 지금 상대는 강도올시다."
"그것 때문에라도 유연해야 하지 않을까?"
"유연성은 우리가 여유 있을 때지요. 지금 모두 다 숨 죽이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을 깨뜨려야 합니다."
"누가 앞장서려고 하겠는가?"
"나라도 앞장서야죠."
"…."
"인간이 몇백 년 사는 건 아니잖습니까?"
"그래도 너무 강하면 부러지지."
"그 말 명심하겠습니다. 그러나 일단 침묵이 깨진 뒤에 그것을 생각하겠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을까? 현 정권은 앞 뒤 가리지 않는 파시즘일세."
"기세(氣勢)의 문제 같습니다."
"그럴까?"
"저는 허무주의자가 아닙니다."
"알아! 알고 있어!"
두 가지 기억이 뒤를 잇는다.
선생은 이미 고인이 되셨다.
그 황선생님이 한 저녁 무렵 내가 사모님에게 호박잎을 밥 위에 쪄서 생된장을 얹고 밥을 싸먹으면 맛있고 몸에 좋다는 말을 하자,
"허허허, 기본 출신이군. 기본이야."
그리고 헤어질 때 방안에 누운 채 숙취(宿醉) 때문에 고통받는 나를 들여다보시며,
"자넨 죽지 않아! 절대로!
필사즉생(必死卽生)이지! 믿으라고!"
고맙습니다. 선생님, 명계(冥界)에서나마 편안하십시오!
<'월간중앙'과 동시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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