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트르의 한 소설이 있다.
올리비에와 이비치라는 남매의 부르주아적 삶과 실존적 결단을 그린 소설, 그 제목은 잊었다. 다만 누이 이비치가 좋아하는 날씨에 관한 묘사가 기억에 남는다.
해는 있으되 안개에 가려 뿌우옇고 서늘한 대낮, 길가에 흰 수선화 화분들이 놓여 있는 도시의 한적한 한 날.
그 날은 그런 날이었다.
4 월의 한 날.
우리는 그날 명동성당의 반지하 납골당 자리에서 김수환 추기경님의 주례로 결혼했다. 기인 혼배미사가 진행되는 내내 그 무렵 내가 좋아하던 영화감독 이만희 형님과 그 조연출들인 나의 벗 김원두와 백결이 밝은 조명등을 켜놓고 8㎜ 카메라로 그 전 과정을 촬영하고 있었다.
추기경님 역시 강론에서 비록 부부 간의 예절에 관한 것이기는 하나 비상한 결심과 각오를 강조하였다.
그러나 그날.
아름다운 그날.
그날을 생각하면 반드시 뒤따라 떠오르는 어린 시절의 한 목포 풍경이 있다.
목포대 바위 다른쪽 혼마치에 있는 큰고모네 과일가게 앞, 희뿌연 날 물 뿌린 한적한 거리, 길 건너편 동아부인상회 앞에 장미며 카네이션이며 백합같이 싱싱한 꽃묶음들이 나란히 놓여 있고, 아버지가 저만큼 천천히 자전거를 타고 멀어져가는 걸 쳐다보면서 길고 네모난 알루미늄 통에서 소금·깨·고춧가루와 후추를 뿌린 조그만 김조각들을 꺼내 먹던 게 생각난다.
뿌우연 한적함, 꽃빛, 김맛, 천천히 멀어져 가는 침침한 아버지의 모습. 이 영상은 늘, 그리고 지금까지도 내 마음에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는 묘한 느낌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흑백영화,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일식'(日食)의 이미지다.
물론 그것이 나의 결혼식을 그대로 상징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 흑백의 적료(寂廖)함은 내 생애를 두고 내내 어떤 의미심장한, 아름다운 한 인상화(印象畵)로 인화되곤 했으니, 가령 고인이 된 천관우(千寬宇) 선생 왈,
"참 호사스런 결혼식이었소."
그 '호사'란 말이 내 뇌리에서는 그날의 그 뿌우연 적료함으로, 그래서 도리어 하나의 호사스러운 아름다움으로 되곤 했었다.
누군가는 가라사대,
"너무 귀족적이었지!"
그러나 그런 것은 아니다.
그것은 성당 반지하 납골당의 그 기이한 죽음의 적막 위에 장식된 흰 꽃무늬의 레이스천과 사제들의 붉은 망토, 장미와 분수, 대리석 돌계단과 스테인드글라스 같은 유럽 스타일의 중세풍(中世風)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더 깊은 그 아름다움의 바탕에는 이비치의 뿌우연 날씨가 뿜어내는 적료함이 있었다. 그 적료함을 안고 그날 오후 우리는 신혼여행을 섬이나 해변이 아닌 청평호반으로 떠났다.
호반엔 안개가 자욱했다.
호반에서 잉어회에 맥주를 한 잔 마시며 뿌우연 안개를 바라보다 갑자기 흠칫 놀랐다.
'결혼은 일생에 단 한번뿐'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은 것이다.
내 마음은 꼭 그때의 물빛 같았다.
뿌우옇게 흐렸다.
호수는 점점 저물고 있었다.
흰 안개가 거뭇거뭇해지고 있었다.
검은 창유리에 등불이 타기 시작했다.
내게 새로운 삶이 시작되고 있었다.
"좋다."
나는 모든 것을 다 받아들였다.
<'월간중앙'과 동시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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