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원이 결정되었다. 몸도 나았고 정세도 자기들에게 유리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간단한 짐을 꾸려 들고 인사를 마친 뒤 병원문을 향해 가고 있을 때다.
"김선생! 김선생!"
헐떡거리며 뒤쫓아온 사람은 한 병실에서 같이 요양하던 창녕할배였다. 영감님은 도수 높은 안경 너머로 나를 지그시 바라보며 흰 봉투 하나를 내 손에 꼬옥 쥐어주었다.
"면목 없소. 잘 가이소."
한 마디를 끝으로 되돌아 병실로 가버렸다. 손과 가슴에 느껴지는 예감이 있었다. 예감부터가 이미 따뜻한 '인'(仁)이요 곡진한 '예'(禮)였다.
돈은 지금으로 치면 한 5만원쯤. 얼마 안 되는 금액이었으나 내게는 수백만원이었다. 영감님은 유신체제의 어둠 속에 갇힌 내게 미안함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병실에서 아무 말도 안 했기 때문에 잘은 몰랐으나 때때로 도수 높은 안경 너머 나를 지그시 바라보거나 옛 한학(漢學) 책을 꼼꼼이 들여다보거나 함으로 미루어 유생(儒生)임이 분명했다. 영감님 나름으로, 경상도 양반 나름으로 미안함이 있었구나 생각하니 감개무량했다.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오는 그날 내내 말로는 다하지 못할 이상한 따뜻함이 내 가슴에 가득했으니, 아! 그것이 바로 '민중'이란 단어의 속뜻일까?
내가 어려움에 부딛힐 때마다 영감님의 도수 높은 안경이 늘 떠올랐고, 그때마다 나는 늘 예의 그 따뜻함을 기억해내곤 하였다. 영감님의 그 '예절'이야말로 진정한 '어짐'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월간중앙'과 동시연재>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