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 넘칠 땐 매일매일 삶의 기쁨일 것이다. 그러나 절망이 가득할 때에도 매일매일의 삶 자체가 곧 희망을 대신하는 즐거움일 수 있다.
기흉수술 직후 병실로 옮겼을 때 공기와 피를 뽑아내며 누워 소리없는 미소와 함께 앓고 있는 내 곁에 앉아 하마리아, 즉 마리아 하이센베르거 씨는 나를 들여다보며 한마디 했다.
"고통에 의해 구원받는군요."
그러나 정확하게 말한다면 구원이 아니라 안도감이었다. 그때 보안사에 끌려간 김상현 씨와 김옥두 씨가 겪은 고초는 필설로 다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니 매일매일이 꿈결 같았던 것이다.
환자들로 빼곡이 들어찬 좁은 병실에서의 나날은 자잘한 즐거움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큰 평화였다. 파시즘의 극악한 압제 밑에서는 판에 박힌 나날의 생활 자체도 축복일 수 있는 것이다.
더욱이 그 무렵의 병실생활은 내 생전 처음 사랑에 관한 공부와 묵상, 그리고 자그막 자그막한 기쁜 깨달음들로 가득찬 것이었다.
병실까지 들어오는 생선장수 아주머니들로부터 고등어를 사서 방 한복판에 있는 난로 위 큰 찌개통에 잘라 넣고 고춧가루를 잔뜩 풀어 얼큰한 찌개를 만들어 나눠 먹는 즐거움도 있었고 한꺼번에 찰떡을 몇 몫씩이나 주문하여 서로 내기해 먹는 오붓함도 있었다.
병실에서는 환우끼리의 말싸움이나 이김질조차 기꺼운 일과였으니, 아!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전부를 근본에서부터 파악하는 사람에게 위협을 가할 수 있는 힘은 아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한 겨울이 지나갔다.
시퍼런 탱자 울타리 위에 웬 샛노란 빛깔의 새가 와 앉아 울기 시작했다.
봄이 오고 있었고 나의 목숨을 건 판갈이 싸움의 날들도 조금씩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다.
<'월간중앙'과 동시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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