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그때 안개 자욱한 새벽 가포 바다로부터 왔는가? 사랑은 그때 잃어버린 민주주의에 대한 쓰라린 회한으로부터 왔는가? 사랑은 그때 빛을 잃고 머언 바다로 얼굴을 숨기던 나의 삶, 우리의 그 불행한 세계로부터 소리 없는 눈물처럼, 새벽 무렵 희미해지는 고깃불처럼, 탄식처럼 왔는가?
아아, 우리는 민주주의를 잊고 살았듯 이 사랑도 잊고 살았다. 민주주의의 내면적 원리가 사랑이란 걸 처음으로 깨달았으니 님의 침묵을 통해 비로소 님을 알게 되듯이, 사랑을 회복함으로써만 잃어버린 민주주의를 되찾을 수 있다는 이 기이한 반비례를 그때 비로소 깨닫게 되었으니….
낮과 밤이 엇섞이는 새벽이나 해거름에 가포의 호수같은 바다 주변을 헤매며 사랑이 민주주의로부터, 민주주의가 사랑으로부터 별 스며들 듯, 별 돋아나듯 내 마음 안에 얽혀 움직이는 그 애틋한 천문학을 조금씩 공부하였다.
사랑의 기술을 에리히 프롬으로부터, 사랑의 분별을 힐데 브란트로부터, 사랑의 신성을 휠덜린으로부터, 그러나 사랑 자체를 예수로부터, 석가로부터, 공자(孔子)로부터, 사랑의 반비례를 만해 스님으로부터, 그리고 사랑의 거침없음을 원효 스님으로부터, 사랑의 개벽적인 힘을 수운 선생으로부터 조금씩 배웠으니 그때 그 무렵 나의 가포 병원은 어두운 시절의 한 사랑의 공부방이었다.
바닷가에 매어 놓은 뱃전에서 동료 환자들과 어울려 사랑을 말했고, 나는 민주주의보다 도리어 사랑의 깊음과 넓음과 높음을 씹고 곱씹어서 그 시절을 어찌어찌 살아냈었다.
병원을 둘러싼 탱자 울타리, 마치 '위리안치'(圍離安置)처럼 나를 세상에서 격리시켜 가두는 탱자가시가 처음에는 여린 움 모냥 조용조용히 싹트듯이 그렇게, 훗날 내 삶의 울타리요. 지남침(指南針)이 될 사람, 그 삶의 비밀이 그때 비로소 내 안에 그 보드라운 첫 움이 싹텄던 것이니. 알 수 없다, 몇살때던가? 서른한 살이던가? 서른두 살이던가?
아아 늦었구나!
짙은 안개 속에서 문뜩 눈 뜨듯이 그렇게 사랑의 이 해맑고 막연한 어떤 예감처럼 솟아 올랐으니, 누군가 그때 나를 찾아오고 있었다. 누굴까? 발자욱 소리 같은 싹트는 소리, 싹트는 소리 같은 발자욱 소리.
어느 봄 밤의 꿈결처럼, 어둠 속의 흰 비단 띠처럼 잃어버린 옛 유년(幼年)의 한 소롯한 기억처럼, 때 아닌 웬 햇살에 반짝이는 흰 이슬의 투명한 빛처럼 왔다.
와서는 기인 얘기도 아닌 짧은 몇마디, 건강이 걱정되었다는 것. 와 보지 않고는 마음 놓이지 않았다는 것. 와 보니 주변 풍치가 너무 좋아 도리어 마음이 놓인다는 것.
그리고는 돌아갔다.
돌아간 뒤 나는 많은 생각을, 수많은, 수도 없이 많고 또 많은 생각의 여름 구름 봉오리 봉오리 위에 실려 올랐다.
그때는 그래도 아직은 몰랐다. 그 깊음과 오래도록 간직된 그 따뜻함을…. 세월이 흐르고 고통의 언덕들을 넘고 넘어 참으로 삶에 있어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문득 발견하거나 문득 깨닫게 되는 그런 나이에 이를 때까지. 다만 몽롱한 예감과 희미한 자취만이 감지될 뿐, 아직은 확실히 몰랐고 모르는 것 자체를 아직도 분명히 알지 못했다.
그랬다.
무수한 오류와 끝없는 하자 속에서도 무언가 운명같은 것이 거기 웬 발자욱 소리같이 강가 조약돌 위에 발을 벗고 끝없이 기다리며 부르는, 낮게 흐느끼는 휘파람 소리같이 거기 그렇게 서 있다는 것만 오로지 알고 있었을 뿐이다.
유신이 일단 전면적 침묵을 몰고 오는 데에 성공하고 내가 정보부에서 풀려나 마산으로부터 서울로 올라왔을 때, 인사동의 한 2층 찻집 어둑한 귀퉁이에서 서투른 몇마디로 청혼했을 때 그리고는 마침내 천천히 허락이 떨어졌을 때 내가 똑 피카소의 '우는 여인'모냥 펑펑 눈물을 흘리며 운 것은 채 사랑 이전에 누군가에게 진실로 받아들여졌다는 것, 그리하여 장차 감히 사랑 가까이 내가 서 있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것 때문이었다.
아내.
아내라는 사람의 존재.
절망과 미움이 나를 억누르다 안개 낀 가포 바닷가에서 도리어 사랑이 나에게 가까이 온 것은, 변증법인가?
모순어법인가?
음양법인가?
연기법인가?
반비례인가?
아니면 은총인가?
<'월간중앙'과 동시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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