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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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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176>

남북회담(南北會談)

남북간의 밀사 왕래 소식이 터지고 남북회담의 시작이 보도되고 있었다. 김동길 교수님이 내려왔다. 석방(釋放) 소식을 갖고 오셨다. 그리고 남북회담의 내밀한 소식도.

솔직하게 말하자. 그 회담의 장래에 대한 내밀한 소식을 들었을 때, 그리고 함께 기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오는 동안 내내, 서울에 내려 강서면옥에서 냉면을 먹다 마치 무슨 주술(呪術)처럼 오적 사건의 검사(檢事)였던 흰 머리의 박종연(朴宗演) 씨를 만났을 때,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불길(不吉)한 예감에 뒷덜미가 뻣뻣해질 정도였다.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현실은 바로 그 불길한 예감의 실현 쪽으로 조금씩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이틀 뒤 나는 '슈칸 아사히'(週刊朝日)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견해를 내비쳤다.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의 정세가 무르익고 있다. 남북회담을 어떻게 보는가?" 라는 질문에,
"좋은 일이다. 그러나 매우 불길하다."

"무슨 소린가? 앞으로 더욱 밝은 전망 가능한 소식들이 들리는데 …."

슈칸 아사히의 지문은 다음과 같이 썼다.

'이 말에 김지하(金芝河)의 얼굴은 이상하게 일그러졌다. 네가 뭘 아느냐는 힐난이 담긴 표정이었다. 무슨 뜻일까?'

아마 기사는 이랬을 것이다. 나의 대답은 또한 이랬다.

"두고 보면 안다.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화제는 바뀌었다.

"언제 결혼할 작정인가? 애인은 있는가?"
"아직 애인은 없다. 결혼은 통일되는 날 북쪽 여인과 …."

"그것이 언제쯤인가? 정세로 봐서는 금방 올 것 같은데 …."
"모른다."

다음 기사는 이랬을 것이다.
'김지하는 입을 굳게 다물어 버렸다.'
이렇게!

회담이 막상 시작되고 북에서 박성철이 내려와 박정희를 만나고, 북한 대표단에 윤기복이란 사람이 끼어 왔을 무렵이다.

소설가 이호철(李浩哲) 씨가 술자리에서 그들을 만나고 온 얘기를 많이 흥분하면서 들려주었다. 윤기복이 이랬다는 것이다.

"우리는 연극에 방백(傍白)을 도입했습니다. 현대극에서는 사라져 버린 방백을 혁명적으로 부활시켰습니다. 이런 말을 하더라고. 크게 놀랐지. 방백이라니!"

나는 속으로 뇌었다. 그 형편없는 신파조(新派調)에다 방백까지 곁들였으니 참 희한하겠군!

내가 한마디 했다.

"그 윤기복 씨를 또 만날 겁니까?"
"응. 그래. 한번 더 만나기로 했어."

"그럼 이렇게 한번 말해주세요. 우리는 남쪽 연극에서 프로시니엄 아치 자체를 없애버렸다. 이제 우리 연극은 둥근 마당에서 논다고!"
"…."

"한 마디만 덧붙여주세요. 중국의 '경극'(京劇)과 일본의 '가부끼'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프로시니엄 아치를 벗어난 사각의 권투링에서 장루이 바로가 새로운 연극을 할 때도 아직 해방시키지 못한 공간, 시간, 육체와 시각(視覺)을 일면성(一面性)에서 협동적(協同的) 다면성(多面性)으로 바꾸어놓았다고요!"
"…."

'원귀(怨鬼) 마당쇠' '호질(虎叱)' '야, 이놈 놀부야!'의 맥을 잇고 더 심화 확대시키는 마당극 '진귀(鎭鬼)' 직전의 우리의 민족연행문화운동의 논의 구조를 말하는 것이었다.

<'월간중앙'과 동시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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