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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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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174>

가라 쥬로(唐十郞)

가라 쥬로(唐十郞)와 교도(共同)통신 주한 기자 히시키(考木)가 병원에 나타났다. 일본에서 공론이 나빠질 것을 염려한 중정(中情)은 면회를 허용했다.

가포 물가의 한 음식점에 가자, 가라(唐)는 허리에 차고 있던 전대(錢袋)를 풀었다. 그 안에 달러가 가득 차 있었다.

영어로, "웬 돈?"
영어로, "지하를 중국으로 데리고 갈 돈이다."

영어로, "어떻게?"
영어로, "조그마한 모터보트를 사서 이 만에서 탈출시키겠다."

영어로, "중국에서 환영할까?"
영어로, "중국이 별로 환영 안 하면 쿠바로 가자!"

영어로, "나는 안 간다."
영어로, "왜?"

영어로, "나는 이 나라를 사랑한다. 버릴 수 없다."
영어로, "그렇게 탄압해도…?"

영어로, "그렇다. 나는 어느 날이 될 때까지는 이 나라 이 땅에서 한 치도 벗어나고 싶지 않다. 그 어느 날이 오면 내가 당신을 데리고 쿠바로 가겠다. 아니 쿠바가 아니라도, 중국과 쿠바보다 더 좋은 사회를 한국과 일본에 건설하자."

영어로, "정말인가?"
영어로, "그렇다."

일본어로, "사께(酒)!"
일본어로, "간빠이(乾杯)!"

히시키(考木) 기자는 내내 우리 두 사람의 사진을 찍었고 우리 셋은 노을녘까지 술을 마셨다. 밤에는 하늘과 바다와 술잔과 가라 쥬로의 눈 속, 이렇게 네 개의 달이 떴는데 술취한 내가 옷 입은 채로 바다로 뛰어들자 가라가 뒤따라 뛰어들었다.

그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 한 팔을 끼고 헤엄쳤다. 잔뜩 젖은 채 나무판자로 엮은 '짝띠'(波止場)에 앉아 또 마셨다. 물 건너 섬들 부근에 켜진 고깃불(漁火)을 보며 내가 어촌(漁村)에 전하는 민요에서 비롯된 '바다아기네'란 시를 띄엄띄엄 읽자 가라는 루이 아라공의 '엘자의 눈'이라는 샹송을 일본어로 불렀다. 그는 좌(左)도 우(右)도 아닌 가라 쥬로 자신이었다.

정보부 마산분실은 고성능 녹음기구를 앞세우고 가까운 거리에서 내내 감시했고, 바닷가의 가포 여관방에서는 바로 옆방에 들어 우리 얘기를 다 듣고 있었다.

그 방에서 조금 이상한 소리가 나자 민감한 가라가 갑자기 영어로 소리를 꿱 질렀다.
"Rat(쥐새끼)!"

셰익스피어였다. 그러나 그 자리에 칼은 없었다. 내 마음에도 없었다. 견진 때문이었을까?

<'월간중앙'과 동시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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