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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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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173>

공소

주임신부가 없는 기도소를 가톨릭에서는 공소라고 한다. 그 공소가 병원 안에 있었다. 공소에는 오스트리아의 사도직(使徒職) 협조자(協助者)인 하(河) 마리아, 즉 마리아 하이센베르거 씨가 있었다. 마리아 씨가 내내 나를 보호했다. 거기에 전성용 회장과 의사 구(具)선생, 그리고 간호원 이혜영이 한 팀을 이루어 오붓하게 살고 있었다. 하마리아 씨는 독실하다 못해 지독한 사람이다.

그 무렵 공소에서 '견진성사(영세 이후 신앙을 더욱 공고히 하는 성스러운 행사)'가 있었다. 마리아 씨는 내게 견진을 받도록 권유했다. 견진을 받으려면 일체의 미움을 버려야만 한다. 그래서 나는 견진을 포기했다. 박정희에 대한 미움을 버릴 수 없었고 또 그 미움은 공분(公憤)이므로 당연한 것으로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마리아 씨는 나를 온종일 따라다니며 빌고 또 빌고, 그 이튿날도 아침부터 와서 빌었다.

"내 일인데 왜 당신이 내게 빕니까. 그리고 이것은 정의에 관련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용서하세요. 용서하고 싸워야 합니다. 미워하지 마세요."

"못합니다."
"못하면 프란치스코의 영혼이 죽어요. 용서하세요."

"못합니다. 그를 쓰러뜨려야 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적을 죽인다는 말은 노자에도 나와요. 기독교는 그것을 가르칩니다."

"노자 아니라 장자라 해도 안됩니다."
"억지예요. 억지는 프란치스코 같은 사람과 거리가 멀어요. 제발!"

그날 오후쯤 나는 결국 지고 말았다. 나는 박정희를 용서한다는 긴 기도를 드린 뒤에 견진 채비에 들어갔다. 결핵이 심하던 전성용 회장은 얼마 전 대구에서 돌아갔고 재작년 부산여행때는 의사 구선생과 간호원 이혜영 씨를 수소문해 만나 저녁을 함께 먹었다.

모두 고마운 사람들! 그들의 복스러운 마음으로 이 세상은 유지되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월간중앙'과 동시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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