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인 듯 내 곁에 앉아 있었다.
꿈꾸듯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지 주교님의 주교관(主敎館) 귀빈실에 머무르며 가까운 생사탕집에 다녔다. 독사나 살모사 등의 탕제를 먹고 있었다. 지 주교님, 청강 선생, 그리고 원주 중앙시장(中央市場)의 호상(豪商)인 강학(姜鶴) 형님의 합의(合意)였다.
내가 잠들어 있으면 그녀는 이불 깃을 곱게 여미어 놓고 나가고, 깨어 있으면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 갔다. 아무래도 자기는 옷을 벗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왜냐하면 결혼 같은 것은 전혀 생각이 없지만 보통의 신자로서 거리낌 없이 사회운동에 뛰어들고 싶다는 거였다. 검은 옷, 흰 두건은 자유로운 삶의 확장으로서의 사회운동에 아무래도 걸림이 된다는 거였다.
또 내 얘기를 듣고 싶어했다.
나는 그 가을에 있을 원주교구의 궐기대회 건에 대해 일절 함구하고 있었으니까.
원동 성당(聖堂) 마당에서 반(反)부패 규탄대회가 열릴 때에 가서야 사제관(司祭館)에 틀어박혀 문건 등을 다루거나 판단을 내리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웃었다. 놀라지 않고 그냥 방그레 웃었다.
"그럴 줄 알았어요.
공연히 주교관에 머무를 까닭이 없지요."
3일간의 시위(示威) 도중 내내 루시아 수녀(修女)는 남에게는 알릴 필요가 없는 큰 기밀사항 등을 실천해서 참모진과 주교님의 칭찬을 차지했다.
사흘 뒤 새벽,
경찰과 정보부원과 1군 보안대가 첩첩이 포위한 그물을 뚫고 나가기 위해 나는 루시아 수녀가 모는 지프 뒷자리에 엎드렸다. 그때 무사히 원주를 빠져나와 헤어지기로 정한 횡성에 가까이 가자 이런 말을 했다.
"나 프란치스코로부터 큰 마스코트를 하나 얻어가요. 어디에 있든 그것을 잊지 않을 거예요. 그것이 사랑인데, 그 사랑은 참 커다란 세상에 대한 사랑이고 자유로운 사랑이에요.
이제 옷을 벗지 않고도 세상을 위해 기쁘게 일할수 있어요."
그 뒤 소식 듣지 못했으나 루시아 수녀님이 원동성당 안에서의 농성 때 흰 예수고상 곁에 걸어놓은 태극기를 쳐다보며 내 뒤쪽 의자에 앉아 중얼거리던 말 한마디만은 기억한다.
"그래, 이거야, 이거!"
<'월간중앙'과 동시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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