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나는 원주에 내려가 청강 선생과 이 모든 문제들을 의논했다.
"잠시 여기 와서 있게.
쉬면서 천천히 생각해 보지."
원주 봉살미 아래 봉산동 청강 선생의 자택(自宅)에 내가 머무르던 무렵이다. 교황들의 여러 회칙과 방대한 공의회 문헌들을 읽으면서 지내던 무렵이다.
홍수가 날 때 외에는 물이 말라 나날이 더러운 개굴창으로 변해가는 봉천 냇가에, 노을 무렵 혼자 앉아 우연히 지녔던 꼬투리 연필로 담배 속종이에 꾹꾹 눌러 쓴 한편의 시는 나의 종교우회론에 의한 가톨릭 입교(入敎)와 지방 소도시 거점론에 의한 정치사상으로서 전혀 새로운 원주캠프의 개척 그리고 당(黨)으로서의 전선이론, 전선 당운동의 개척을 암시하고 있다.
희한하다
더러운 개울물이 졸졸졸
소리만은 맑은 곳에 나는 있어라
물가에는 답싸리
똥덩어리 쓰레기 두엄더미 더불어
애기머리마안한
호박들이 열리고
꽃도 피었어라 참으로 희한하다
물이 늘면 비내리고 내리 비가 내리면
또 물이 늘어 강물인듯이
강물인듯이 우렁차게도 외쳐대는 곳
밤낮으로 시달린 끝내는 하아얀 조약들들이
저리도 눈부시게
반짝이는 곳 반짝이는 곳
그곳에 나는 있어라
큰돌이 때론 흰 물살을 이루고
때론 푸른 하늘마저 내려와 몸을 씻는다
밤마다 지친 일꾼들이 먼지를 씻는다
지쳐 대처에서 돌아온 큰애기들
더럽힌 몸도 마음도 씻는다 희한하다
더러운 개울물이 졸졸졸
아아 머나먼 바다로 가리라
끝내 가리라 쉬임없이
꿈만은 밝은 곳에 지친 나는 서있어라.
'물 흐르는 곳에'라는 시다.
청강 선생과 함께 간디즘과 비노바 바베의 경제노선, 몽양(夢陽)과 중도좌파의 검토, 가톨리시즘과 동양종교, 그리고 마오쩌둥과 한국의 합법적인 주민·시민개량운동, 민중민족노선 등에 관해 매일 끊임없이 토론했으나 결론은 꼭 하나였다.
혁신적 가톨리시즘을 토대로 한 민중민족노선, 합법적인 신용조합운동이나 합법적 근로자·농민운동 속에서 점차 진정한 민족의 새 이념과 통일의 주체를 길러내는 것, 그것을 위한 전략으로서의 종교우회론, 소도시거점론, 당으로서의 전선론이 검토되었으며 인간의 내면적 혼(魂)의 평화와 외면의 사회적 변혁의 통합이 총체적인 목표로 설정되었다.
이른바 원주운동의 명제(命題)가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원주 사람들과 가톨릭쪽, 그리고 서울의 내 친구들과 언론계 혹은 야당 일각 등에 대한 설득과 조율의 시간을 벌어야 되었다. 나는 용기를 가지고 다시 서울로 향했다.
<'월간중앙'과 동시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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