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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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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158>

불꽃

그 무렵 어느날 저녁때 조영래(趙英來) 형이 전화를 해서 급히 보자고 했다. 나는 약속장소인 명동성당 건너편 골목 입구의 한 2층 찻집으로 들어갔다. 거기 조(趙)형과 장기표(張琪杓)형, 이종률(李鍾律) 형과 민통(民統) 출신으로 동아일보 기자로 있던 심재택(沈在澤) 형이 모여있었다.

그날 낮에 동대문 평화시장 앞길에서 전태일(全泰一)이라는 이름의 노동자(勞動者)가 노동법(勞動法)을 지키고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라는 요구조건을 외치며 분신자살(焚身自殺)했다는 것이었다.

그 시체(屍體)를 경찰(警察)이 탈취해 지금 명동성당 구내의 성모병원(聖母病院)에 안치(安置)시킨 뒤 지키고 있는데 노동자 친구들과 자기들이 시체를 힘으로라도 탈취해서 내일 서울대 법대(法大)에서 장례(葬禮)행사를 치르고 시체를 앞세워 평화시장(平和市場)과 종로(鍾路)·광화문(光化門)을 거쳐 청와대(靑瓦臺)까지 행진(行進)하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놀라운 얘기였고 끔찍한 일이었다.

조형과 장형은 매우 흥분해 있었다. 이형은 시종 말이 없고 심재택 형은 그 행진이 불가능하다는 논지를 폈다. 흥분한 두 사람은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하며 꼭 그렇게 하고야 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내일 장례식에는 독일 사람 브라이덴슈타인을 불러 추도사를 하게 했고 외신(外信)도 부르겠다고 했다.

나는 내 할 일이 뭐냐고 물었다.
조형이 조시(弔詩)를 쓰는 거라고 했다.

심형이 또 반대하고 나섰다.
그렇지 않아도 중앙정보부와 검찰이 오적 때문에 좌경문인(左傾文人)으로 몰려고 드는데, 그 조시를 썼다가는 틀림없는 프롤레타리아 시인으로 못박히고 만다. 그러면 앞으로 우리가 치러야 할 합법(合法)투쟁에서 김지하(金芝河) 형의 중대한 몫은 없어지고 만다. 대개 그런 취지였다.

조형과 심형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다. 끝날 것 같지 않은 논쟁이었다. 나는 구석자리에 가서 '불꽃'이라는 제목(題目)의 기인 낭송시를 한편 쓰기 시작했다. 뜨거운 김이 목구멍에서 올라오는 듯했다. 그렇게 격렬하고 전투적이었다.

이종률 형에게 원고를 건네고, 길게 보면 심형 말이 맞다. 중요한 것은 조시이지 아직은 나의 명성이 아니다. 민중 전체의 정치적 앙양이 먼저이니 이 원고를 젊은 학생들이 읽도록 하라고 했다. 심형이 찬성했다. 조형과 장형도 마지못해 찬성했다.

나는 찻집에서 나와 파고다공원까지 걸었다. 밤의 공원에 앉아 어색해진 가슴을 어루만지며 한참을 스스로 달래야 했다. 체한 것 같았다. 한 두시간 후에야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 이튿날 법대 장례식은 성공하지 못했다. 그리고 행진도. 아직은 힘든 일이었으니 심형의 현실적 판단이 옳았던 것이다.

그 며칠후 독일 사회민주당원(社會民主黨員)인 에리히 홀체의 집에서 저 유명한 브라이덴슈타인을 만났다. 그는 내게 여러 가지 얘기를 했다. 주로 한국 노동자와 노동운동에 관한 자기의 구상이었는데, 나는 줄곧 듣고 있었고 이후 원주 청강 선생에게 보고했고 얼마 있어 에리히 홀체가 원주에 내려가 청강 선생을 만났다.

기인, 그리고 조심스러운 노동운동에 관한 전략이 논의되었고 그것은 전태일의 벗들이나 조형·장형 그룹, 그리고 이선구 형과 이창복 형이 관계하는 가톨릭노동청년회 등이 우선의 씨앗이 되어 점차 전체 민중운동의 앙양과 함께 물결을 일으켜 가는 쪽으로 정리되었다.

훗날 내가 몇사람의 후배들과 함께 마산 옆 창원(昌原)자유무역공단을 조사하러 내려가게 된 것도 이 만남에서의 합의(合意)의 연장이었고 가톨릭신문사 6층엔가 있었던 가톨릭노동청년회 사무실에 들르거나 원주에서 노동자강연회 등을 개최하여 함석헌 선생의 '전태일 추모 강연'과 청강 선생의 '노동회칙강연' 등도 다 이것과 관련이 있었다.

전태일의 불꽃은 수많은 청년학생과 젊은 노동자들을 눈물 속에서 각성시켰다.
불꽃의 힘은 두려웠다.

그러나 같은 불꽃이지만 강경대(姜慶大)군 치사(致死) 사건으로 비롯된 이른바 대학생 연쇄 자살의 분신정국(焚身政局)은 성격이 다른 것이었고, 그 창조력은 미미하고 슬프고 어두운 것이었다.

내가 노동자 문제에 대해 말을 아끼는 것은 순연히 마르크스적 시각에서만이 아닌 보다 복합적인 변화 속에서의 새로운 시각을 찾기 때문이지 노동자를 우습게 안다거나 사회주의를 일방적으로 반대해서가 아니다.

나는 사실을 말하면 사회주의와 함께 자본주의까지 장점은 취합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세계적 교환시장과 더불어 다른 한편 고대에 있었다는 인격(人格)과 경건성을 앞세운 호혜시장(互惠市場)이나 인격 교환으로서의 포트라치가 현대적으로 되살아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생각뿐이어서 구체적으로는 말할 수 없다. 다만 현존 사회주의와 함께 최근의 세계를 강제 통합하고 있는 악성적 금융자본주의, 신자유주의의 극복은 현대의 초미의 과제라는 점만은 명백히 하고 싶다.

그 새로운 호혜시장의 개척, 새로운 포트라치의 창조에도 역시 불꽃이 요구된다.
육신을 불태우고 자살하는 불꽃이 아닌 정치·경제의 새 유형을 함유한 새 문화, 새 정신, 새 인간의 불꽃이 점화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전태일의 불꽃이 그러한 새로움으로 거듭나 브라이덴슈타인이나 에리히 홀체와 같은 유럽 좌파를 도리어 새 길로 이끌어가야 한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아직도 사회주의의 어떤 것들은 인간을 사랑하는 길 위에 선 나그네들의 신념의 한부분이기 때문이다.

<'월간중앙'과 동시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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