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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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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151>

쓰레기 위에 詩를!

그 무렵 내가 자주 어울린 선배와 친구들은 김윤수(金潤洙) 형님과 염무웅(廉武雄) 형, 그리고 시인 이성부(李盛夫) 형과 오숙희(吳淑姬) 선배, 또 오선배의 그림 그리는 후배나 친구들이었다.

예술이나 민족통일, 특히 서구 근대주의와 우리의 처지 사이에 나타나는 여러 문제들에 대해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서로 통하고 함께 술을 마시며 민족문화운동에 관해 의견을 나누곤 했다. 함께 오(吳)선배의 집에 가서 하룻밤 자는 일도 한두 번 있기는 있었으나 대체로는 낮과 저녁에 만나고 밤에는 자기 거처로 돌아갔다. 나이가 든 것이다. 내가 종암동에 살 때다.

문리대 선배요, 당시 공화당의 엄민영(嚴敏永) 씨가 운영하던 '정경연구'(政經硏究) 편집장으로 있던 안인학(安仁鶴) 형님이 가끔 우리와 함께 어울릴 때가 있었는데 형님이 워낙 기발한 분이어서 우리 패거리 이름을 단박에 지어냈다.

'폰트라'
설명하는데 '폰트라'는 영어로 'PONTRA'로서'poem on trash'(쓰레기 위에 시를!)이라는 캐치프레이즈의 줄임말이라고 널름 받아젖혔다. 멋진 이름이라는 것이 우리 모두의 의견이었다. 이 그룹'폰트라'는 아무런 체제도, 약관도, 구속도 없었지만 분명한 방향(方向)을 갖고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훗날 '민중 주체의 민족문화운동'이었다. '폰트라'는 오윤이 중심이 된 미술에서의 '현실동인'(現實同人)의 탄생을 유도하고 지원했으며 김민기(金敏基)의 노래를 듣고 그가 새로운 차원으로 성큼 나아가는 데에 한 도움을 주려고 노력했다.

문학(文學)과 연극에서도 새로운 길을 모색하려는 대화를 아끼지 않았다. 아마 아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고 눈에 띄지도 않았을 것이다. 배우 신성일(申星一) 씨의 동생이기도 한 미대 회화과 강명희(姜明姬)의 집에서 오윤과 임세택(林世澤) 그리고 안인학 형님과 내가 둘러앉아 듣는 가운데, 그 무렵 서울대 미대 회화과에 갓 들어온 김민기(金敏基)의 노래를 듣던 기억이 새롭다. 세 곡을 내리 들었던 기억이 난다.

'길' '혼혈아'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다. 찢어지고 해진 청바지에 잠바를 걸치고 기타를 치며 심상치 않은 우울 속에서 저 밑바닥의 밑바닥으로부터 올라오는 깊고 애잔한 저음으로 미군부대 근처에 버려진 혼혈아의 슬픔을 지극한 데까지 들어올려 노래부르는 '혼혈아', 그리고 '길'에서는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여러 갈래 길의 혼돈이 가져오는 아린 상처를 건드리는 듯 고통에 가득찬 노래를 불렀다.

그것은 그러나 노래가 아니었다. 차라리 아슬아슬하게 절제된 통곡이었고 거센 압박 속에서 여러 가지 색채로 배어나고 우러나는 깊디깊은 우울의 인광(燐光)이었다.

인학 형의 한마디,
"사람 자체가 폰트라로군!"

민기를 끌어들인 오윤 왈,
"한국의 밥 딜런이오,"

내가 마침내 한마디 거들었다.
"음유시인(吟遊詩人)이야!
삿갓 이후 지하 이후의 계승자로군. 하하하…."

참으로 민기는 음유시인이었다. 우리가 헤어진 뒤 여름 한 날, 나는 서울대 의대(醫大) 함춘원(含春園)에 무료하게 앉아 있다 그때 마침 가까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민기의 독특한 우울투성이 저음을 듣고 귀를 바짝 기울였다.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
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자기 나름의, 신세대 나름의 입을 꽉 다문 대담한 출사표(出師表)였다. 그리고 '아침이슬'이, 곧 일어나기 시작하는 새 노래운동의 시작이었다.

언뜻 생각이 미치는 것은 저것이 필경 '금지곡'이 되리라는 거였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고!' 여지없는 '불온'이었다.

좌우간 그 노래를 들으면서 앞으로 무엇이 올 것인지, 어디로 갈 것인지 아직 아무도 정확하게는 알지 못한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그러나 '황톳길'이 나오고 '서울길'이 나오고 또 이제 저처럼 강렬하고 아름답고 애틋한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라는 '아침이슬'까지 나왔다.

과연 우리는 이제부터 어디로 가는 것이며 또 가야 할 것인가.
'폰트라'의 한 불문율(不文律)로서의 과제(課題)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 가는 곳이 어디인지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해 내는 것이었다.

그 방향 진단의 한 형태가 미술에서는 바로 '현실동인선언'으로 구체화되었다.

<'월간중앙'과 동시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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