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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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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148>

진달래 필 때까지

요양원에는 슬픈 유행어가 하나 있었다.
'진달래 필 때까지'.

장기적인 폐결핵 환자들은 대각혈로 질식해 죽는 것이 대다수다. 그런데 그 대각혈이 오는 것이 대개 진달래 피기 직전 무렵 하늬바람 불고 날씨 쌩고름한, 또 불두덩 아래는 후끈후끈한 그런 2월 하순 무렵이다.

진달래 필 때까지 안 죽으면 그해는 또 산다는 뜻이니 바로 '희망'의 시적(詩的) 표현인 셈이다. 어느날 남녀 혼성 병동의 스테이션에서 한 노라리 출신 중년 여자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떠벌였다.

"진달래 필 때까지 목숨 붙어 있으며 씹이나 실컷 하다 죽고 싶은데…."
막 가는 인생이었다.

이렇게 노골적이지는 않더라도 남자든 여자든 배배말라 비틀어지면서도 성적 충동에 몸부림치게 마련인 것이 폐결핵쟁이들이다. 그 절정이 진달래 필 무렵인데 거기서 우리는 성욕(性慾)이 죽음과 친연(親緣)관계에 있다는 것, 에로스는 죽음의 신(神)인 타나토스와 붙어다닌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강연주.
고려대 영문과 출신 미모의 여성.

피를 뱉으며 피를 뱉으며, 마침 잠깐 초대받아 그들의 방에 간 나에게 가라사대
"나는 내 남편을 사랑합니다.
영육이 다 함께 내 남편을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

묻지도 않은 말을 자꾸 해대니 딱할 정도. 이 현상도 그 현상과 앞뒤가 같다. 얼마 안 있어 면회온 남편의 품에 안겨 대각혈로 떠났다.

장희진.
바로 그 방 식구로 나이는 많으나 너무 마르고 성장이 정지되어 열대여섯밖에 안돼 보이는 그녀는 자주 내 방에 와서 시(詩)에 관하여, 인간의 삶의 길에 관하여, 병과 인생에 관하여 꼭 몇마디라도 듣고 돌아가곤 했다.

그 희진이 훗날 훗날, 감옥에서 만난 여호와의 증인 '똥퍼 장씨(張氏)'를 통해 안부를 물어왔다. 여호와의 증인이 된 것이다. 얼마 안 있어 죽었다고. 대각혈로 떠났다고. 죽기 전에 나를 보고 싶어 했다고. 별스런…!

뚜뚜 황.
월남하기 전 북한에서 기관차 운전수를 하다 월남후 미군 트럭을 몰았다는 황씨. 기관차 운전수라고 '뚜뚜'라 했다. 그는 나이가 많은데 일제 말부터 기관차를 탔단다. 꺾센 평안도 사투리로

"왜놈 시대와 공산당 시대와 남한에 내려온 이후 시대와 미군부대 시절을 비교하믄 잉" "내 한몸 편하기는 미군부대고 잉, 세상이 제대로 굴러가는 건 왜놈시대라 잉―! 하하하 왜놈들 우습게 보면 안돼요 안돼 잉―!"

나 아직 그 방에 있던 캄캄한 새벽, 대각혈이 터져 말문이 막힌 그가 머리맡에 놓인 당두대를 쾅쾅 쳐서 사람을 불렀다. 몇사람이 깨어나 불을 켜자 입가와 가슴이 피범벅이 된 채 뚜뚜씨가 큰 눈을 더욱 크게 뜨고 손을 저으며 띄엄 띄엄 말했다.

"안녕―!
여러분 안녕―!"

이길수.
젊은이인데 자그마한 고물상을 한다고 했다.

그가 한 말 중 기억에 남는 한마디,
"전쟁은 어린이에게 제 몸에 안 맞는 헐렁한 옷을 입힌다."
아침에 오리나무 밑에 갔다가 터져 그여 그 오후에 질식해 떠났다.

손영감.
사고무친의 손영감.
점잖고 고학(古學)에 깊은 손영감.

평양이 고향인 그이는 해방 직후 토지를 몰수당하고 월남해 공무원을 하다 가정이 파산한 뒤 발병해 입원했다. 늘 발그레한 볼에 흰 머리칼, 입술에서 떠나지 않는 미소.
그 미소도 어느날 캄캄 밤중에 소리없이 떠났다.

김주호.
법대를 나온 젊은 수재.

깡마르고 밝은 성격이나 옆 침대의 한 목사와 사이가 나빠 늘 씨근거렸다. 자기가 산 조그만 흙집에서였다. 병원 주변 흩어진 마을에서 요양하는 만성환자 중 한 여자와 성관계를 하다 새벽 이슬 내릴 때 질식해 떠났다.

김재덕.
일제때 함흥고보 시절의 유명한 축구선수.

피를 뱉으면서도 하루 종일 잠자리채를 들고 산과 들판을 헤매며 수많은 나비들을 10여 권 분량으로 채집하였고 저녁에는 반드시 소주 한 병을 마시고서야 잠드는 그이는 축구공 모양의 재떨이, 한쪽을 누르면 동그란 돔 모양의 뚜껑이 뒤집어져 움푹 들어가는 재떨이 모형을 만들어 특허를 겨냥하고 있었다.

내가 그 방에 놀러 가면 언제나 소줏병을 들고 숲속으로 가잔다. 숲속에서 들려준 얘기는 대개가 전쟁이야기인데, 하나는 지리산에서 겨울밤 눈이 키 넘게 내린 곳을 두 팔꿈치로 헤쳐 나가면서 졸음과 싸우는 빨치산들 이야기.

또 하나는 전라도 광주 사교계의 유명한 꽃이었던 모 여류 성악가가 자기는 맨날 유혹의 손짓을 보내는 남자들을 겪어와 남자들을 아주 우습게 알았는데, 지리산에 들어와 눈같은 악조건을 헤쳐나가는 남자들의 초인적 의지를 보고 남성관이 전면 바뀌었다고 고백하더라는 이야기.

그리고 북한 출신 유격대 간부들이 북상(北上)해서 김일성이를 만나 지리산과 백두대간의 게릴라들이 이제는 다 철수해야만 한다고 보고했을 때 김이 새로운 게릴라를 더 보내도 모자라는데 그 무슨 소리냐고 쫓아 돌려보냈다는 것.
그 뒤 토벌대에 자수해 자기를 만나 이런 저런 얘기도 하게 됐다는 것.
나 퇴원한 직후 그이도 퇴원했다.

한번 오장동에서 만나 함흥냉면을 먹고 헤어졌는데 그 뒤 소식이 묘연하다. 공산당에 입당했다 지겨워 당원증을 금강산 밑 고성에서 우편으로 당에 돌려보내고 그 길로 월남했다는 김씨,
부디 살아 있기를!

아아! 이승이 아닌 저승에서라도 부디 살아 있기를! 소멸한다면 아마 그 속으로 속으로 맺힌 한(恨)이 끝끝내 풀리지 않으리니, 부디 부디 죽어서라도 내내 살아 있기를!
수미산 너머 칠성(七星)별 어딘가에 돌아가 모두들 우주 안에 살아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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