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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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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145>

주선생(朱先生)

한 병실 바로 내 건너편 침대에 주선생(朱先生)이라는 분이 입원해 있었다. 전라도 사람인데 내게 조금씩 접근해 와서 냉정하게 검토해 보니 과거에 혹은 현재까지도 좌익, 그러나 필시 자기 집안의 누군가가 좌익을 했기 때문에 수렴 현상으로 함께 어울리다 슬그머니 좌익이 되는'수렴좌익'인 듯했다.

주선생의 기억은 세 가지로 남아 있다.

늘 두고 쓰는 문자가
'자기가 아무리 괴로워도 남에게는 생기(生氣)를 줘야 한다'는 말이었고 그리고 산책할 때면 함께 조용한 음성으로 부르던 러시아 민요 '포플러'다.

높다란 산 너머
햇발은 흘러와
좌체의 소리도 없다.
끝없는 창공을
홍채로 물들여
곱드란 노올이 되었어라
외롭게 서있는
포플라 가지에
흘러와 조올졸
어여쁜 노올―

그리고 나서는 반드시 나에게 역시 6·25 당시에 움직였던 사람들이 즐겨 부르는 '부용산'(芙蓉山)이라는 노래를 청하곤 했다. 술자리 외에는 노래를 잘 안부르는 나였지만 몇차례는 주문에 응했던 것 같다.

부용산 오릿길에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
솔밭 사이 사이로
회오리바람 타고
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너만 가고 말았구나
피어나지 못한 채
붉은 장미는
시들었구나
부용산 한 허리엔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일곱 명이 들어가는 그 때 그 병실에 여러 해 입원해 있던 절망적인 환자가 한 사람 있었다. '강(康)'이라는 사람인데 함석헌(咸錫憲) 선생을 존경하고 숭배했다. 항상 모로 누워 숨을 할딱였는데, 그리 누워서도 붉은 핏발이 선 눈으로 항시 주선생을 노려보곤 했다. 늘 섬뜩한 느낌이 오곤 했는데 그 헐떡이는 목청으로 가끔 일본 해군가(海軍歌)인 '군함(軍艦)마치'를 불러대곤 하는 것을 보면 집안이 친일파였던 것 같고 구월산(九月山) 유격대식 발언을 가끔 해대는 것을 보면 극우파(極右派) 기독교인임에 틀림 없었다.

한번 주선생과 다른 한 입원자가 말다툼을 벌였는데 강씨가 예의 그 누운 자세로 주선생을 빤히 노려보면서 대뜸,
"야, 이 빨갱이 새끼야!
내 모를 줄 알아! 너 빨갱이란 것 다 알아! 까불지 마라. 찔러 버리기 전에!"

놀라운 것은 강이 아니라 주선생이었다.
얼굴이 파랗게 질리더니 기듯이 설설 문쪽으로 다가가 순식간에 도망쳐 버리는 거였다. 그리고 며칠인가를 돌아오지 않았다.

도대체 사상이란 무엇인가?
늘 리시버를 끼고 북한방송을 듣는 나에게도 '강'은 똑같은 핏발선 눈길을 보내는 때가 가끔 있었다.

아아!
나 역시 그 때는 목덜미가 서늘했으니 주선생은 당연했으리라는 이해가 갔다.

더욱이 그 때가 통혁당·동백림·전략당 등이 마구 작살나던 때였고 전위당에 의한 남조선 해방운동 전략이 실패로 돌아가자 남한 사람들에게 실망한 북한이 게릴라전(戰), 그것도 북한에서부터 글라이더나 잠수함으로 실어 보내거나 백두대간(白頭大幹)의 등산 루트로 '코만도스'들을 침투시키는 직접적인 전략으로 바뀌고 있던 때 아니던가!

<'월간중앙'과 동시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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