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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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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142>

공부

그때는 라디오에,
리시버를 꽂고 라디오에 의지해 살았지.
남한의 연속극 외에 북한방송도 들었고 베이징(北京)의 한국말 방송도 들었지.
그렇지.
북한방송은 세 가지를 연속해서 들었지.
남한 이야기를 남한 출신 학교 교사를 통해 짚어나가는 '인민 속에서'와 김일성 노선 중심의 '항일 빨치산 참가자 회상기' 그리고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강의하는 '맑스-레닌주의 방송대학'이었어.

북한에 아직 '주체철학'이 나타나기 전이었다.
베이징에서 발신하는 한국말 방송은 내내 문화혁명과 홍위병과 마오쩌둥 어록에 관한 것이 거의 전부였는데, 귀찢어지게 쳐대는 꽹과리나 징소리나 잊히지 않고, 그 사이 사이 태평소, 즉 날라리 호적(胡笛)의 째지는 고성(高聲)이 인상에 남는다. 만리장성 같았다.

'방송대학'에서 발신하는 사상체계는 내게 완벽한 것처럼 들렸고 조금만치의 논리적 오류도 용납하지 않는 철저한 철학적 세뇌 강의였다. 어떤 의미에서 유물변증법을 대충은 모두 공부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2년 너머까지 매일 한시간씩 들었으니 김일성대학에 2년간 유학한 셈이다.윤노빈과 헤겔의 관념변증법을 공부한 뒤에 듣는 유물변증법 강의라 매우 쉬웠고 그 변별점도 금방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내게 깊은 회의가 왔다.

저것이 영원불멸의 논리란 말인가.
물론 투쟁만의 변증법은 없다. 그것은 변증법 공격이 아니라 변증법 분석을 통한 투쟁성에 대한 투쟁이다. 투쟁성과 통일성을 함께 보아야 비로소 변증법이다.

그러므로 변증법에 역(易)을 대입시킬 때 둘 사이에 변별과 우열을 강조하려다 변증법의 통일성 즉 상생(相生)이 약화된 상극(相克) 일변도, 즉 변증의 투쟁성만을 들어올린다거나 해서는 참다운 의미의 변증법 극복이 안된다. 양자를 함께 보아야 하되 '그럼에도 투쟁성이 항존적(恒存的)이고 통일성은 잠정적이다'라는 정의에만 너무 기울거나 또 반대로 통일성에만 기울거나 해서도 안된다. 문제는 시중(時中)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회의는 그런 정도의 철학적 약점이나 오류에서부터 오는 것이 아니었다. 참으로 변증법 대신 역(易)을 객관적 세계와 인간 내면적인 삶의 논리로 역동(力動)시키려면 가시적 차원의 생극론(生克論)과 함께 또 하나의 사상세계를 결합 통전해야 할 것 같은데 그것이 가시적 차원과 비가시적 차원 각각과 함께 둘 사이에서 작용하는 '아니다·그렇다(不然其然, No-Yes)의 생명논리요 모순어법이다.

요컨대 감성과 이성만이 아니라 그 둘의 역동적 관계 안에, 사이에서 작용하는 초월적 영성(靈性)도 들어와야 한다는 것이다. 혹시 이것이 한국 고유의 삼극(三極)과 삼재(三才)사상, 천지인(天地人)사상과 음양의 결합이 아닐까.

변증법은 보이는 차원의 이것과 저것 사이의 상대적인 관계는 잘 설명하지만 상대적인 상대성의 결핍만으로 제 자리를 역(易)에 넘기는 것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차원과 그로부터 끊임없이 물질화, 가시화, 형상화하는 보이는 차원과의 관계를 동시적, 상관적으로 인식 파악하는 보다 깊고 생동적인 논리가 마련될 때에만 역(易)은, 그리고 나아가 다름아닌 우리 시대의 우리의 세계역(世界易)은 변증법을 극복하는 새 세계, 새 세기의 새 철학이 될 것이다.

요컨대 그 누군가의 말처럼 최한기와 최제우의 통합이 핵심일 것이다.

막연하지만 변증법의 인정과 함께 극복은, 또 2차원을 포함하면서 동시에 새 차원으로 뛰어넘는 어떤 초점의 발견과 그 구체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이 그때부터다. 자극은 물론 '방송대학' 자체에서 왔지만 그보다 더 강한 자극은 '푸른 인광'에서부터 왔다. 푸른 인광(燐光)?

그 숱한 잠 못 이루는 밤, 내 머리맡에서 조용히, 그러나 참으로 신의 있게 나를 지켜주고 위로해준 것이 하나 있었다. 한뼘커녕 반뼘도 못되는, 밤마다 푸른 인광을 발하는 플라스틱 예수 고상(苦像)이었다. 그 푸른 고통, 그리고 그 고통의 승화는 무수히 자다 깨다 하는 나의 밤의 감각을 통해 그 통합과 확장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고 또 강조해 왔다.

나는 보이는 차원의 대립 및 조화로부터 차츰 보이지 않는 차원에로의 초월과 영성에 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어떤 차원에서 그것은 가톨릭이기도 했고 불교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캄캄한 밤의 한복판에서 마치 조르주 루오의 예수상(像)과 같은 인광의 강열한 방사 한 구석에서 수운과 해월(海月)의 동학이 차차 차차 가까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이상한 예감을 또한 갖고 있었다. 막연하지만, 최수운 선생의 '불연기연'론이 그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생각들이 곧 그 무렵 도미(渡美)하여 UCLA에서 영화공부를 하고 있던 고(故) 하길종(河吉鍾) 감독과의 길고 긴 20여통에 달하는 편지, 영화(映畵)의 트리트먼트(梗槪)를 내가 써보내고 그가 거기에 코멘트하는 시나리오 전단계(前段階)의 편지 내용 안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월간중앙'과 동시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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