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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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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135>

선언문

김중태 형 등의 제 일선이 무너졌다.

나·박재일·송철원·최혜성 형 등이 새로운 전선을 구축하기 위해 제 2선언문을 작성했다. 그때 우리가 참고로 한 여러 문건(文件) 중 과거 코민테른의 국제공산주의운동선언문 한 쪽이 있었는데 그 중에 이런 표현이 보였다.
'이빨에서 발톱 끝까지 무장한 제국주의, 신식민주의자들은….'

이 구절을 놓고 우리는 한참을 몹시 웃어댔다. '무장'이란 말이 꼭 코미디 같았기 때문이었다. 찬반 양론이 한참 맞서다 드디어 그 표현을 갖다 쓰기로 했다. 이 부분이 훗날 크게 문제가 된다.

내가 잠시 시골에 간 사이에 친구들은 시내버스를 함께 타고 가다 한 정류장에서 갑자기 포위당했다. 중앙정보부 제6국(?)이던가 동대문 공설운동장 옆 고양군청 바로 옆에 있는 서울분실로 끌려갔다고 한다. 정보부는 선언문 내용과 그 작성 과정을 이미 환히 알고 있었고, 그 때문에 좌익이라는 자백을 끌어내고 운동의 장래 방향에 대한 정보를 이끌어 내기 위해 몹시 닥달했다고 한다.

지하실에서 멍석으로 몸을 둘둘 말아 물을 축이고 나서는 야구 방망이로 직신작신 타작했다고 한다. 운동하는 사람의 한 불문율(不文律)이기는 하지만 견디다 못하면 안 잡힌 사람에게 모든 혐의를 넘기는 것이 상례(常例)다. 그러나 그리하면 사건은 더 커지고 자신의 죄질과 형량도 훨씬 나빠지고 늘어나기 때문에 슬기로운 사람은 좀 견디고 말지 불어대지는 않는다.

그러나 학생이, 우리들의 그때가 '꾼'은 아니지 않은가! 폭탄, 특공대, 돈가방에 이어 코민테른 선언문 인용 책임까지를 몽땅 아직 안 잡힌 나에게 넘겨버렸다. 나에 대한 수배가 전국에 내려졌다. 그리고 친척들 집과 친구들 집, 그리고 '길'과 같은 나와 연관있는 모든 곳, 모든 사람에 대한 조사와 호출, 타작이 시작되었다. 한번은 장위동 작은 이모집 골방 캐비닛에 숨어 그 방까지 들이닥쳤던 정보부원들의 눈을 잠깐 속이고 캐비닛을 빠져나와 꽁무니 빠지게 도망친 적도 있다. 그 대가로 작은 이모가 혼이 났다.

그날 밤,
나는 수유리에 숨어 있었다.

그날 밤, 나를 지키기 위해 내 곁에 있던 정남, 한때 김영삼정부에서 교육문화수석비서를 하던 그 김정남(金正男)이 시내에 갔다 와서 정보부가 내 어머니, 아버지를 잡아다 나 숨은 곳을 대라고 전기고문을 서너차례나 한 끝에 아버지가 졸도하고 고혈압이 크게 터져 이제 더는 전기회로나 정밀기계도 못 보는 반병신이 돼버렸다는 얘기를 나직나직 들려주었다. 우리는 소주를 마셨다. 희뿌옇게 먼동이 터올 때 뒷산 의암(義菴) 손병희(孫秉熙) 묘소(墓所) 근처에서 밝아오는 동쪽을 바라보고 혼자 속으로 굳게 맹세했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는 반드시 박정희를 무너뜨리겠다!'

들끓는 가슴과 부릅뜬 두 눈에서 붉은 핏덩이가 계속 터지는 것 같았다. 이를 악물었다. 그것이 '독'(毒)이었고 '폭력'이었다.

내가 8년간 감옥에 있는 동안 운동의 관성(慣性)에 따라 혹은 전술(戰術)에 따라 나를 철저한 마르크스-레닌주의자, 불효불굴의 혁명투사로 만들어 바로 그 허상(虛像)이 젊은이들 속에 퍼져 나갔던 모양이다. 그만큼 독해서일 것이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분명히 말해두지만, 나의 행동의 과격성은 특히 이 무렵 일종의 남아로서의 맹세의 힘에 속하지, 나의 사상의 치열성에 온 것은 아니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것!' 그 '중심의 씨알' 같은 '초점'을 찾아 헤매는 한 사람의 구도자(求道者)일 뿐이지 단련된 투사나 철두철미한 혁명가가 전혀 아니다.

그러나 박정희를 미워하는 마음이 가슴에 가득했던 것은 사실인데 그것은 맹세의 결과요, 일종의 복수심의 결과였다. 그랬기 때문에 그리도 오랜 세월을 무너지지 않고 견딜 수는 있었지만 그랬기 때문에 내 마음 속의 폭력 때문에 그리도 오랜 시간을 정신병적인 질환 속에 갇히게 된 것이다.

폭력은 폭력을 낳는다. 남에 대한 외면의 폭력은 곧 자신에 대한 내면적 폭력의 어머니다. 그러므로 최초부터 폭력에 의지하지도, 함부로 그 마귀를 불러내지도 말아야 한다.

정보부는 점점 더 수색의 강도를 높이고 나는 나날이 더 갈 곳이 없어졌다. 어머니를 지프에 태워 앞세우고 친척과 친구들의 집을 일일이 찾아가 집적댐으로써 내가 그곳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월간중앙'과 동시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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