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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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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131>

최한기(崔漢綺)

"혜강(惠崗) 최한기(崔漢綺)에 대해서 알아?"
"몰라"

"녹문(鹿門) 임성주(任聖周)는 알아?"
"몰라!"

"그러면 황진이(黃眞伊)는 알아?"
"알아?"

"황진이(黃眞伊)의 스승이 누구야?"
"그야 화담(花潭)이지, 서경덕(徐敬德)이지, 물론!"

이제 됐다.
"그럼 화담부터 시작하자고! 우리나라의 기철학(氣哲學)은 화담부터라고!"

"어어?"
"화담 아래가 녹문이고 그 밑에가 혜강이지! 기철학을 중심(中心)으로 해서 이기철학(理氣哲學)을 다시 보는 공부가 이제부터의 우리 철학(哲學)공부야! 그렇게 볼 때 율곡(栗谷)·퇴계(退溪)·남명(南冥)이 다 다시 보이지! 나머지도 물론(勿論)이고!"

"뭐가 그렇게 쉬워?"
"우선 뼈대를 세우는 거니까 그렇지!"

"수운(水雲)은? 최제우(崔濟愚)는?"
"아항!
니가 동학에 빠졌구나!
최수운(崔水雲)은 기철학을 신비화(神秘化), 종교화(宗敎化)한 사상가지. 그러나 선도(仙道), 속에서 기중심(氣中心)으로!"

"그래! 그것 참 쉽네!"

수학과(數學科) 학생으로 문리대(文理大) 산악반(山岳班)의 리더였던 이돈녕(李敦寧)이 4·19의 충격으로 졸업후 철학과(哲學科)에 학사편입하여 이른바 '기굴'(氣窟)에 빠진 것이다. 그는 입만 벌리면 기(氣)는 우주(宇宙)의 주재(主宰)요 리(理)는 그러한 기(氣)의 조리(條理)란 말부터 시작해서 혜강 최한기의 일신운화(一身運化)는 대운화(大運化)로 우주화(宇宙化), 대기운화(大氣運化)는 다시 교접운화 (交接運化)로 사회화(社會化), 그것이 결국은 또 다른 대기운화로 현실화, 구체화하는 것이 통민운화 (統民運化)다. 통민운화가 정치(政治)이니 바로 '인정'(人政)이라 했다.

나는 이돈녕(李敦寧)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내가 이형(李兄)에게 혜강 등을 배운 뒷날에 비로소 박종홍(朴鍾鴻) 박사의 한국근대철학사(韓國近代哲學史)강의가 시작되었으니 이형이 내게만은 기와 혜강 최한기에 관해서 훨씬 더 선구적(先驅的)인 셈이었다.

별명이 '기철학' 혹은 '최한기'인 이형이 위장병, 아마 위암이 아니었을까, 결국 그 윗병으로 세상을 일찍 떴다. 귀하고 가까운 사람이 어처구니없이 훌쩍 곁을 떠나고 보니 벗들은 도리어 철인(哲人)에게 욕을 했다.

"돈녕이가 왜 죽은 줄이나 아나? 밥 굶는다고 위를 상해서 병이 된 거다? 돈 없어서 굶은 게 아니지! 이유를 들으면 너희들 까무라친다. 바로 이거야! 가라사대 '혁명을 하려면 끼니를 잘 건너야 한다.' 나는 지금부터라도 하루 한끼 먹고 사는 훈련을 하는 중이다. 혁명은 목전(目前)에 와 있다"

친구들은 입술을 실룩일 뿐, 웃지도 욕을 하지도 않았다. 사실 너무도 어처구니 없었다. 제일 가까웠던 조형이 나지막하게 한마디 씹어 뱉을 뿐이었다. "미친놈…!"

내가 먼저 혜강의 '신기통'(神氣通)을 읽다보면 "인간의 진짜 능력은 추측(推測))에서 오는 거야, 추측록(推測錄)을 먼저 읽어!" 이리 소리소리 지르고, 추측록을 읽다 보면 "인식은 구체적 사물의 판단이 먼저 쌓이는 과정에서 신기(神氣)가 통하는 거야! 신기통부터 먼저 읽어!" 소리소리 지르는 저 홀쭉한 모습이 떠오른다.

그 영상 자체가 4·19다.
그의 존재 자체가 5·16에 대한 4·19의 전인적(全人的) 반격이다. 그리고 그의 학문은 우리가 찾는 바로 그것! 그처럼 어려운 그것의 길잡이, 충실한 길잡이다.

얼마전 나는 '시(詩)와 시학사(詩學社)'에서 시상하는 정지용문학상(鄭芝溶文學賞)을 수상(受賞)하게 된 것을 계기로 조동일 형과 대담(對談)을 하게 되었다. 10여년만의 만남이었다. 그 대답의 결론으로 조형은 최한기로 대변되는 자기의 학문과 최제우로 상징되는 나의 문학이 하나로 만나는 것이 한국학의 결론일 것이라는 마지막 진단을 내렸다. 그러나 그 통합은 어렵고 자기와 나는 아무래도 예수가 아니라 세례 요한이라고 했다.

그때 나는 고운 꽃그늘로 노을을 이렇게 저렇게 그 모습을 변조시키는 '시와 시학사'의 예쁜 이층 편집실 연두빛 벽에 선 홀쭉한 등산쟁이, 문리대 마당에서 랜턴 파티를 열고 있는 고(故) 이돈녕 형의 영상과 불그레한 눈자위, 새빨간 입술빛을 본 것 같았다.

그가, 어느날인가, 대학식당에서 밥 한끼를 사주고 자기는 굶으면서 했던 말과 이 말이 거의 일치하기 때문이다.

"감성(感性)과 이성(理性)과 영성(靈性), 예술과 철학과 종교, 거꾸로 하면 천지인(天地人), 이 셋이 합쳐져야 통일이 돼! 우선 최한기와 최제우가 통합돼야 해! 그러나 그것 꽤는 어려울 거라!"

나는 지금 이 두 벗의 두 사건을 비교하며 입속으로 중얼거린다. 아직 자신이 없어서다.

"생극론(生克論)과 상생상극론(相生相克論) 불연기연론(不然其然論, 아니다와 그렇다, no와 yes의 동시파악론)을 통합해야 한다. 불연기연(不然其然)은 보이는 차원과 보이지 않는 차원 사이의 생성적 관계에 대한 떼이야르 드 샤르댕, 베르그송, 그레고리 베이트슨과 데이비드 보옴 그리고 미셸 셰르의 논리적 판단에서도 관통하고 있지만 옛 원효(元曉)의 일심불교(一心佛敎) 나름의 '사연비연론'(似然非然論·비슷한 듯 하나 전혀 그렇지 않다)에서 이미 그 모습을 보인다. 그것은 선도(仙道)의 생명논리(生命論理)다. 그리고 생극론(生克論)은 동양인이면 누구나 인정하고 도가(道家)와 유학(儒學)에서의 음양(陰陽)과 태극(太極)이 아닌가!"

비록 오류라 하더라도 내가 이렇지 않을까 생각한다는 사실 자체가 통합과 통전에의 큰 한걸음이다. 아니 그럴까?

<'월간중앙'과 동시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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