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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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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129>

사상

아이들이 장난하며 노는 한 놀이가 있다. 하나가 제 눈을 가리고 한군데에 서서 "어디까지 갔나?"하면 다른 하나가 저만큼에서 "방문까지 왔다." 또 묻는다. "어디까지 갔나?" "마루까지 왔다." 또 묻는다. "어디까지 갔나?" 이번엔 거짓말로 답하여 "학교까지 왔다." 해버린다. 그럼 다른 한 아이가 눈 가렸던 손을 금방 내려 버린다. 거짓말을 눈치챈 것이다.

그렇게 될까? 내 사상의 성장사에 관한 이야기도 그렇게 되고 말까?

자왈(子曰) 중에 '공공여야'(空空如也)란 말이 있다. 문자 그대로 '마음을 텅 비우고 나서'의 뜻이라 한다. 참으로 '공공여'(空空如)로 말하리라.

그 겨울 신접살림에서 올라온 박재일 형이 내게 종이가 낡고 겉장이 닳아 빠진 '대중철학' 한 권을 가져다 주었다. 쉽고 대중적으로 된 책이어서 진보철학적 원칙들에 대한 요해와 호감과 흥미는 갔지만 내 인생의 미묘한 구석구석에까지 해답을 주기에는 아득히 멀었다.

그 무렵 서울에 머물러 있던 나에게 내면의 큰 바람을 일으킨 것은 도리어 붉은 러시아에서 음으로 양으로 박해받아 자살해 버린 시인 '세르게이 예쎄닌'이었다. 해방 직후 일어판을 오장환(吳章煥) 시인이 중역한 말똥종이 책이었다.

'폭풍은 지났다.
소수의 사람만이 무사하였다.
이젠 소리높여 서로를
이름 부르는 사람마저도 드물어졌다.'

'소비에트 러시아'란 시의 도입부다. 전율이 온다.

하일민으로부터였나? 영역판 레닌 저작과 강연집을 모두 빌려다 내내 읽으면서도 도리어 레닌의 쿨락(富農) 착취와 농촌을 볼모로 한 도시노동자 중심의 산업정책에 반기(反旗)를 들고 농업사회주의에로의 쿠데타를 모의하다 적발되어 외국으로 망명해버린 사회혁명당의 '마프노', 그리고 그 '마프노'의 절친한 친구인 '예쎄닌'에게, 아니, 차라리 그들의 참혹한 운명에 매혹되어 있었다.

훗날 유기농운동인 생명운동, 생태학에 입각한 환경운동의 철학인 '생명'에의 깨달음과 경도(傾到) 역시 여기에 줄을 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차돌같은 기상으로 이름 났었다.'

이렇게 고백한 '예쎄닌'의 그 무사기(無邪氣)한 시심과 달빛이 푸르게 비치는 방, 제가 태어난 제 고향의 바로 그 방, 그 침대 위에서 권총자살로 삶을 마감하는 예쎄닌의 슬픈 삶, 슬픈 시업(詩業)에 비(比)해 '마야코프스키'는 얼마나 범속하며 '데미안 베드누이'는 또 얼마나 저속한가!

철학과 친구들로부터 빌려온 마르크스의 '자본론'(資本論) 전석담(全錫淡) 번역본 두 권을 그해 겨울이 가고 초봄이 오는 눈부신 나날에 나가지도 않고 방구석에서 자나 깨나 눈에서 떼지 않던 그 무렵의 놀라움과 깨우침의 폭탄같은 위력(威力)을 가지고도 '예쎄닌'의 시 한 구절을 감히 어찌하지 못했다.

'어머니
이제 더는 땅거미 지는 무렵
먼 도시로부터 혹시 이 아들이 올까
철 지난 옷을 입고
자꾸만
신작로가로 나오지 마십시오.'

참으로 시(詩)란 무엇일까.
참다운 시(詩)는 가장 지혜롭고 최고로 과학적인 사상마저 압도한다. '루나찰스키' 등의 관료지식인들은 아메리카 부르주아의 꽃 '이사도라 던컨'과의 열애(熱愛)와 그로 인해 이제 막 일어서기 시작한 신생(新生) 소비에트 러시아를 감히 떠나 유럽 사교계(社交界)를 유령처럼 전전(轉轉)하다 돌아온 예쎄닌에게, 그에겐 총살보다 더 지독한 비애국자(非愛國者)의 스캔들로 괴롭히고 괴롭혀 끊임없는 술주정과 싸움 끝에 마침내는 자살에까지 몰아넣고 만다.

그러나 바로 그렇게 죽은 예쎄닌이 혁명에 대한 정열과 동시에 혁명이란 이름의 역사로부터 시작하고 공산주의 사회라는 역사로 돌아가거나 또는 그 밖의 역사로 되돌아갈 운명이기는 하지만 그 자체로서는 이미 역사가 아니고 도리어 역사에 반대되는 민중의 내면적 삶의 생성, 그 미묘한 삶의 그늘을 내내 느끼게 하고 내내 깨닫게 만든 러시아 민중의 한 깊은 상처요, 한 추억이요, 한 사랑이었던 것이니 훗날 파스테르나크에게, 예프투셴코와 솔제니친에게 깊고 깊은 영감의 샘물이 되지 않았던가!

나는 그밖에도 바쿠닌이나 크로포트킨까지 파들었으니 잡탕 꿀꿀이죽인 셈이었다. 나의 잡식성은 마오쩌둥(毛澤東)과 유럽의 뉴 레프트 마르쿠제와 프랑크푸르트학파(學派), 그리고 실천에서 루디 두츠케나 다니엘 꽁방디에까지 이르러 절정에 달했다.

철학과 최혜성 형의 도움이 매우 컸다. 학교의 커리큘럼은 헤겔·칸트·베르그송과 하이데거, 미학자 테오도어 립스나 니콜라이 하르트만, 실존주의 미학과 실존주의 사상사 등 유럽학(學)이 판을 쳤고 동양미학 시간에는 공맹(孔孟)과 노장(老莊)을 바탕한 고전적(古典的)인 동양미학과 규범적인 동양사상사, 미술사 등이 전면을 차지했다.

중국에서는 한창 마오쩌둥과 장칭(江靑)·야오원위안(姚文元)·왕충원(王洪文) 등의 홍위병(紅衛兵) 문화혁명(文化革命)의 폭풍이 거세게 불고 있었고, 서부유럽에서는 신좌익(新左翼) 등에 의한 소위 6·8문화혁명(文化革命)의 예비 전역(戰力)이 태풍이 되어 휩쓸었다.

동부유럽에서는 반체제(反體制)적인 비판운동, 아메리카에서는 흑인(黑人)들의 인권운동이나 베트남전(戰) 반대(反對)운동·히피운동·비트제너레이션의 문화운동(文化運動)이, 베트남의 사이공 등지에서는 트리 쾅 스님의 동료들이 끊임없이 불꽃에 몸을 던지는 소신공양(燒身供養)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시아·아프리카·라틴 아메리카는 수카르노와 네루, 저우언라이(周恩來)와 나세르 등의 지도로 '제 3세계 운동'을 장엄한 새 지구운동으로까지 전개하고 있었다.

나는 술에 취해서도 반야심경과 금강경 도입부를 중얼중얼 암송하며 선(禪)의 세계를 부질없이 동경했다.

아! 틀림없는 차원변화(次元變化)인데, 문제는 그 어떤 새롭고 민족 고유와 주체의 사상 속에 동서양 사상과 함께 현대의 문화적(文化的) 요동들을 함께 담아 새 차원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것인가?

바로 그 '씨알'이 무엇인가 였다.
주역(周易) 이괘(離卦)의 처음인 초구(初九)에 '엇갈리고 얼크러진 잡다를 밟고 나가되 공경하는 마음을 놓치지 않고 집중하면 허물이 없으리라'(이착연 경지 무구·履錯然敬之無咎) 했다.

그것, 바로 그 '경지'(敬之)가 동학(東學)에서는 '시'(侍) 즉, '모심'이다. 혼돈(混沌) 그 나름대로의 질서와 중심 아닌 중심이 바로 '모심'인데 나는 그것을 몰랐고, 모르는 채 그 하나를 잡다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강박 그리고 그것을 찾지 못한 내게 닥쳐오는 온갖 혼란과 부담감은 내 젊음을 내내 무거운 짐으로 느끼게 했으나 바로 그것이 사실은 내 곁에 있고 우리 속에 있는 줄은 새카맣게 몰랐다.

문학평론가(文學評論家)인 유종호(柳宗鎬) 선생은 어느 글 속에서 '청춘(靑春)은 중하(重荷)였다. 빨리 늙기만을 바랐었다'고 썼다. 참으로 그것은 바로 나의 말이다. 청춘의 중하와 그것을 벗어나게 해줄 내 속의 우리 속의 우리 나름의 그 어떤 것 그 어떤 세계사상, 그것은 대체 무엇일까? 어떤 사상이요, 문화일까?

<'월간중앙'과 동시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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