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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의 상술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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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의 상술 <31>

리우리창의 몰락

<31-1사진> 리우리창의 대표적인 상점 롱바오자이.

***멋모르는 외국인이나 가는 곳?**

베이징에는 아주 희한한 관광명소가 하나 있다. 한국과 일본 등 제3국에서 펴낸 서적에는 상당한 지면을 차지하며 적혀있는데, 근래 중국 내에서 나온 여행 책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곳이 하나 있다. 어렵사리 찾아낸 2001년판 『베이징자주유』(北京自助遊)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멋모르는 외국인이나 가는 곳입니다. 그곳의 골동품은 전부 가짜이거나 바가지 쓰기 십상인 것들입니다. 골동품을 사려면 판자웬(潘家園)이나 홍차오(虹橋)시장으로 가세요. 그곳의 골동품은 대부분 판자웬의 휴일 골동품시장에서 헐값에 사들여 진열해 둔 겁니다."
대개는 좋은 점만 적혀 있는 관광안내책자에 이런 막말에 가까운 구절이 있다니, 그곳은 어디인가? 놀랍게도 리우리창(琉璃廠)이다.

벌써 10년전 이다. 필자가 1992년 9월, 베이징에 도착하자마자 텐안먼(天安門) 다음으로 찾아 간 곳이 이 중국의 인사동이라는 리우리창 거리였다. (일본 책을 거의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번역한 것이지만) 우리나라에서 나온 중국 여행 책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하는 칭찬을 들은 데다 조선시대 실학자들과 서예가들이 베이징에 오면 꼭 그곳을 들렀다는 기록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원나라 때 유리공장이 있었다고 해 이름이 지어졌다는 리우리창 거리는 청나라 때부터 골동품, 서화, 도자기, 문방용품 등을 파는 상점들이 모여들었다. 18세기 후반기부터는 궁정이나 귀족 장서가들에게서 흘러나온 고서, 명화, 문물이 집중되어, 전성기 때는 리우리창 거리의 상점 수는 400개에 달했다. 특히, 건륭황제 때 『사고전서』를 편찬하기 위해 많은 문인들과 고금의 서적들을 리우리창에서 수집하여 마치 문화의 유통센터처럼 되었다. 그 후 많은 외국인이 리우리창을 방문하면서 거래가 이루어져 세계적으로 유명한 거리가 되었다.

지금도 100여 개 상점이 남아 있는 리우리창 거리에서 대표적인 상점 하나만 고르라면 단연 롱바오자이(榮寶齎)가 첫 손가락에 꼽힌다. 1672년 창건되어 2002년 현재 만 330세 생신을 맞은 롱바오자이는 고금의 명가들의 서화와 복제품, 수채 목판화, 종이, 붓, 먹, 연적 등 골동품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 원래 그 상점 이름은 송죽재(松竹齎)로 저장상인인 장(張)씨 가문이 인수하고 상호를 롱바오자이로 바꾸면서 번창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왜 롱바오자이가 리우리창의 대표 상점이 되었을까? 그 무엇보다 진신보(縉紳譜)덕분이었다. 진신보는 조정의 관리의 성씨와 이름, 공식직함과 혈연과 지연 사제지간은 물론 라이벌의 명단까지도 수록한 '주요 관료 인사파일'인데 롱바오자이가 그것을 편집하고 출판하였던 것이다.

봉건군주시대의 최고급 꽌시망을 망라한 진신보는 리우리창 거리의 상점들에게는 용이 여의주를 얻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벼슬을 하려는 자, 뇌물을 주어야 하되 정확히 주려는 자들에게는 그것은 부르는 게 값이었다. 동업자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롱바오자이는 거액의 뇌물을 들여 황궁을 마음대로 출입할 수 있는 5품 관직을 샀다. 관직을 돈으로 살 수 있었으니 청나라의 정치가 얼마나 부패했던가를 능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 그 5품 관직은 직급은 별로 높지 않았지만 중앙과 지방의 주요 관료의 임면과 승진이나 전보의 인사정보를 청취하고 관료의 인맥 등 참고사항이 적힌 정부문서를 열람하고 필사하는 특권이 쥐어졌다. 그는 마음껏 수집한 인사정보를 롱바오자이에게 제공하고 격려금을 두둑히 받았다. 그는 공직이라기보다는 민간업체에서 황궁으로 특별히 파견한 상인에 가까웠다.

<31-2사진>롱바오자이 1층 대청에 전시해 놓은 중국에서 최고 크다는 벼루(필자의 핸드폰을 올려놓고 촬영).

그러나 오랜 세월 중국 문화의 대표거리라는 명성에 취해있던 이곳에서 파는 골동품은 대부분 모조품 아니면 가짜라고 한다. 총각 몇이 내게 다가와 수작을 부린다. 그들은 같은 동양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옷차림과 헤어스타일만 보고도 금방 외국인인 걸 알아차린다.

"우리들은 200년 전 청나라 때 도자기가 있는데, 아주 싼값에 해 줄 께요."
그들의 수작을 한두 번 경험한 게 아니다.
"내게 2,500년 전 춘추전국시대 금송아지가 수십 마리가 있는데 살래?"
"……."

1992년부터 2000년도까지 나는 매년 대여섯 번씩 리우리창을 찾았다. 이제 처음 갔던 해에는 인산인해를 이루던 관광객들의 발길은 해마다 줄어들었다. 갈 때마다 속았고 그곳에서 물건을 사가지고 올 때마다 실망했다. 작년 한 해 동안은 아예 발길을 들여놓지 않았다. 그런데 2002년에 펴낸 우리나라 어떤 신간서적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리우리창 상품의 가격이 대체로 비싸고 수준 높은 전문가 고객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일반 관광객의 발길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북새통이라니? 그래서 지난 4월 21일, 리우리창을 가보았다. 황사바람도 없는 화창한 봄날 대낮이었는데도 한산하기 이를 데 없었다. 베이징 도심이 아니라 어디 중국 농촌 읍내 거리도 이처럼 한적할 수는 없으리라? 게다가 재작년에는 드물었던 휴점, 폐점, 내부수리중, 점포급매 공고가 거의 두 집 건너 하나 꼴로 상점 문 앞에 붙어있었다. '롱바오자이' 등 극소수의 몇 개만 빼놓고 리우리창의 상점들 내부에는 손님의 수보다 상점 종업원의 수가 훨씬 더 많았다. 그 책에서 말한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룬다는 리우리창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리우리창이 망한 이유**

중국 속담에 "동종업자는 원수다"(同行是寃家), "동종업자는 서로 질투하기 마련이다 "(同行必妬)라는 게 있다. 돈을 남보다 많이 벌기 위해 동업자간이 치열한 경쟁을 치루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과도한 경쟁을 벌이면 공멸을 면치 못한다. 리우리창의 상점들은 고객들에게 속임수와 바가지를 누가 더 많이 씌우는가를 경쟁하다가 결국 서로를 잡아먹는 꼴이 되었다.

또한 중국 속담에는 "사는 사람은 파는 사람만큼 똑똑하지 못하다"는 말이 있다. 소비자가 제 아무리 총명하더라도 상인을 이기기 힘들다는 뜻이다. 상인은 어두운 데 있고 소비자는 밝은 데 있으니 소비자는 물건의 실제 가격도 상인이 이윤을 얼마나 보태어 파는지도 모른다. 그는 다른 상점에서 똑 같은 상품을 더 싸게 파는 것을 알고서야 "아이쿠 속았구나" 하며 탄식한다. 소비자는 두 번 다시 속지 않을 것이다. 상인은 폭리를 취한 벌을 받게 될 것이고 같은 상가의 동업자들까지도 사기꾼으로 같이 욕을 먹고 손님의 발길이 줄어들게 된다. 소비자도 상인들이 어느 정도 술수를 부리는 것은 이해한다. 상인도 자식을 키우고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려하니깐. 그러나 무엇이든 지나치면 안 된다. 소비자의 가슴에 아픔을 주어서는 안 된다.

『사기』에서 사마천은 상인을 간상(奸商)과 의상(義商)으로 구분하고 간상은 3할의 이득을, 의상은 5할의 이득을 번다고 했다. 간상은 한탕주의로 폭리를 꾀하다가 민심을 잃고 3할의 이윤만을 얻는 데 반하여 의상은 폭리를 구하지 않고 민심을 변함없이 꾸준히 얻어 5할의 이윤을 얻는다는 뜻이다. 리우리창의 예로 보아선 이러한 사마천의 지적은 간상에게 지나치게 너그러운 것은 아닐까? 오늘날의 간상은 3할의 이윤의 커녕 1푼도 없을 뿐더러 패망의 운명만이 기다리고 있다. 또 『명현집』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교활한 자는 머저리를 속이지만 머저리는 그걸 모른다. 교활한 자는 당나귀가 되면 머저리는 그를 타고 다닌다."

리우리창의 상점은 지나치게 탐욕을 부렸다. 가련하고도 우스운 머저리 당나귀가 되었다. 자신이 골동품에 상당한 식견을 갖춘 전문가가 아니라면 몰락하는 리우리창 거리의 몰골을 반면교사로 삼아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한번쯤 그곳을 둘러보는 것은 괜찮다. 그러나 거기서 거금을 쾌척하여 "17세기 청나라 도자기(실은 21세기 제작품)"를 손에 넣어 횡재했다고 우쭐해하는 관광객들은 어쩌면 당나귀보다 더 못할 수 있다.

<31-3사진> 시골 읍내보다 한적한 리우리창 거리.

***베이징 시민의 주요 재테크 수단.**

정치 분야를 제외하면 베이징이 상하이보다 조금 나은 것은 관광자원과 교육환경, 그리고 골동품 시장, 단 세 가지라고 한다. 만리장성과 자금성 등 명승고적이 상하이보다 풍부해 관광수입을 많이 올릴 수 있다. 또 중국 표준말을 배우는 데는 베이징이 상하이보다 좋아 외국유학생들을 통한 외화 수입이 많다. 중국에는 교육부 직속의 60여 개 중점대학이란 게 있는데 이것들이 우리나라의 이른바 명문대학 격이다.

베이징에는 칭화(淸華)대학, 베이징(北京)대학, 런민(人民)대학 등 7개소의 중점 대학이 있는 반면 상하이에는 푸단(復旦)대학 상하이 자오퉁(交通)대학 통지(同濟)대학 등 6개가 있다. 베이징이 상하이보다 겨우 1개가 더 많은데 대학의 수뿐만 아니라 수준도 상하이에 비해 절대적이 아니라 상대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베이징 대학이나 중국의 수도에 위치한 대학들이라고 해서 우리나라의 서울대나 서울 소재 대학처럼 압도적 지위에 있지 않다. (이점에 대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지만 무엇이나 서울에 쏠려있는 한국의 기준으로 중국을 보아서 그럴 것이다. 중국의 교육과 대학에 관해서는 다음 기회에 상술하기로 한다.)

2001년 말 기준, 중국 정부 통계에 의하면 상하이 시민의 재테크 수단 1위는 은행저축 2위는 주식투자 3위는 부동산이다. 이에 반해 베이징 시민의 재테크 수단 1위는 은행저축 2위는 골동품 우표 및 서화, 3위는 부동산이다. 베이징 시민의 재테크 수단으로서의 골동품은 부동산을 오히려 앞지르고 있다. 부동산이 재테크 수단의 순위에서 뒤쳐진 주요 원인은 예로부터 높기로 유명한 중국인들의 저축률(2001년 전국평균 36퍼센트)과 그들의 황금이나 골동품 등 환금성이 좋은 재산을 선호하는 특성 때문이다. 그리고 개인의 부동산 소유권이 부인되는 대신 50년에서 70년간의 장기 사용권만이 인정되는 등 중국특색적 사회주의 체제 특성에 기인하는 것도 이유다.

베이징의 골동품시장이 그야말로 북새통을 이루는 곳은 판자웬과 홍차오 시장이다. 특히 우리나라 황학동 벼룩시장이 연상되는 판자웬은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만 장이 열리는데도 거래액은 전국 골동품시장의 절반에 이르는 거액으로 추산되고 있다. 중국 방방곡곡에서 골동품을 싸들고 온 상인들의 수는 약 2,000여명으로 중국 각 지방의 사투리를 써대는 진짜 중국인들을 실컷 볼 수 있다.

판자웬은 1992년만 하더라도 도깨비시장(鬼市)라고 불렸던 것이 1995년부터는 현재 초대형 규모의 골동품 종합시장으로 바뀌었다. 도자기와 서화나 가구를 비롯하여 옛날 돈 , 먹 묵, 종이, 벼루 등 문방사우와 비취와 수정 등의 보석류, 문화대혁명시대의 마오쩌둥 만세를 외치고 있는 바탕에 정지된 탁상시계며, 램프, 소수민족 복식, 심지어 공룡알을 비롯한 각종 화석, 화성에서 날아왔다는 운석 등등 판자웬에는 도무지 없는 게 없다.

중국 각지에서 밀려든 다양한 사람들과 그들이 가지고 온 물건이 누군가의 눈에 익고, 누군가의 손을 타고, 누군가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을 시간들을 어림해보면 오래된 골동품들이 꿈틀거리는 생명체처럼 느껴진다. 한 달에 한두 번은 맑은 산소를 가슴과 머리에 온통 흡입시키듯 판자웬 시장을 찾는다. 그러나 이런 것보다는 판자웬이 나의 발길을 흡인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다름 아닌 "흥정하는 재미를 맛보기" 위해서다.

<31-4사진>고객과 관광객으로 북새통을 이룬 판자웬.

정찰가는 없다

중국에서 한 상점주인이 물건을 5,880위안으로 호가한다면 그걸 5,800위안에 사고서 에누리 했다고 좋다고 하는 사람은 바보다. 그걸 800위안에 샀다면 보통 사람이고 앞의 5,800을 모조리 떼 내고 맨끝의 80위안에 사야지만 비로소 물건을 살 줄 아는 손님이라는 취급을 받는다고 한다. 물론 과장이 섞인 우스개지만 그렇다고 전혀 허튼소리만은 아니다.

중국에 정찰가란 없다. 몇몇 특급 백화점이나 외국관광객 전용의 요이(友誼)상점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중국에서 모든 것은 흥정이 가능하며 그만큼 흥정의 탄성이 강해 즐겁기도 하다. 중국에서 흥정은 규칙도 한계도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흥정을 할 것인가?

무엇보다 우리 시각이 아닌 중국인의 가치관으로 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들의 문화적 시각에서 보면 어떤가, 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 흥정의 폭은 얼마나 되는 가를 알아야 한다. 중국의 사업이나 생활은 흥정에서 시작하고 흥정에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마도 흥정의 기술을 단련하는 가장 좋은 훈련장소는 골동품시장일 것이다. 흥정의 고감도 탄성을 즐길 수 있으며 중국 각지의 역사와 문화의 향취를 음미할 수 있어서 좋다.

"손님이 어느 나라 사람인가에 따라 부르는 가격이 다르다. 만일 미국이나 유럽인이라면 원래 파는 가격의 10배를 부른다. 일본인은 8배, 한국인이거나 선진국에서 온 화교라면 5배, 동남아 등 개발도상국민이거나 그곳 거주 화교라면 3배를 부른다. 같은 중국 내 사람도 외지인에게는 2배, 베이징사람에게는 1.5배를 부른다."

이는 판자웬 관리위원회 주임 주용더(朱永德) 씨가 중국의 경제월간지 『상계』(商界) 2001년 2월호에 기고한 '고객 국적별 호가기준'이다. 필자의 시행착오로 점철된 오랜 체험에 비춰보아 이는 골동품 가계뿐만 아니라 중국의 여타 업종에서도 통용되는 기준이라는 생각이 든다.

***진짜는 필요없어, 가짜를 원해요**

중국의 장사꾼이 흔히 쓰는 수법은 먼저 손님한테 원하는 가격을 묻는다. 여기에서 마음이 약해지면 절대 안 된다. 얼마면 사겠냐고 물을 때는 그들이 부르는 가격은 무시해야 한다. 마음먹은 최저가격을 제시하되 호가의 10분의 1 이하로 정말 물건 사는 사람으로서도 민망할 정도의 가격을 제시해야만 한다. 그리고 두 가격 사이에서 절반, 즉 호가의 5분의 1 가격으로 타협을 보도록 고수해야 한다. 호가의 5분의 1을 마지노선으로 정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 가게에서 구입하지 않아도 좋다는 각오로 흥정해야 한다. 파는 쪽에선 한 명의 손님도 아쉬우므로 손해만 안 보면 팔 것이다. 다른 상점으로 가려고 발걸음을 옮기면 장사꾼은 손님의 소매를 잡고 "이렇게 싸게 팔면 완전히 밑지고 파는 거지만, 오늘 장사 개시니까" "손님의 인상이 좋으니까" "나는 돈벌기보다는 손님 같은 좋은 사람과 친구 삼는 게 낙이다" 등등 구시렁거리며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지으며 팔 것이다.

싸게 샀구나 여기며 만면에 웃음을 띠며 가게를 나온다. 그러나 얼핏 가게 쪽을 뒤돌아본다. 그 매점주인도 싱긋 웃는 표정으로 가게 문으로 들어간다. 아차, 좀더 더 깎을 걸 하고 뉘우치지만, 그럴 것까지 없다. 그게 가짜만 아니라면 된다. 장사꾼도 먹고 살아야 하고 돈도 모아야 한다. 장사꾼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보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질 것이다.

전문가가 아니라면 중국에서 골동품을 구입할 때에는 마음을 비우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중국은 가짜의 천국이다. 속지 않으려면 중국의 시중에 나도는 골동품은 대부분은 일단 가짜라고 여겨야 한다. "진짜 가치 있는 골동품이라면 박물관에 있어야지, 왜 시중에 나돌고 있는가"를 항상 자문자답해야 한다. 처음부터 아예 진품이 아니라 복제품을 구입한다는 마음을 먹어야지 나중에 심신에 충격을 덜 받는다.

중국의 골동품은 1796년 청나라 건륭제가 죽기 이전의 것은 전부 외국으로 반출되지 않는다. 특히 서화일 경우, 명품인 것은 1949년 이전의 시기의 것도 반출금지이다. 반출이 허용되는 골동품에는 중화인민공화국 문물관리위원회 관인의 붉고 커다란 사각형 도장이 찍힌 라벨을 붙여 준다. 출국할 때 세관 심사에서 영수증 제출을 요구하니 반드시 영수증은 지참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마저 진품이라고 안심해서는 안 된다는 설이 있다. 베이징 고궁 박물관의 감정 전문가 모씨(그의 성씨조차 밝힐 수 없는 사정을 이해 바란다)에 의하면 중국 골동품을 찾는 외국의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출현한 21세기 중국제가 상당수 있다 한다.
언제부터인가, 하도 많이 당해(?) 상심한 필자는 그곳에 가면 아예 이렇게 말문을 연다.
"부야오 젼더, 야오 쟈더!"(不要眞的 要假的: 진짜는 필요 없어요, 가짜를 원해요!)

<31-5>판자웬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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