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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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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111>

윤노빈(尹老彬)

내게 여러 스승들이 있었다고 했다. 친구로서 내게 스승 노릇을 한 것은 사실에 있어 두 사람이다. 그 한 사람이 지금 서울대학교에서 문학사를 가르치는 조동일 학형이다.

먼저 또 다른 한 사람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얘기한 뒤에라야 조형 얘기가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철학자 윤노빈(尹老彬)이 그이다.

노빈은 나와 원주중학 동기생이고 서울 문리대를 함께 다녔다. 대학 때는 박종홍(朴鍾鴻)선생, 최재희(崔載喜) 선생 등이 가르치던 철학과에서 헤겔을 전공하였고 독일 유학까지 하였다. 그는 유학 후 부산대학교 철학과 주임까지 했는데 어느 날 문득 식구들을 데리고 월북(越北)해 버렸다.

왜 갑자기 그가 월북했을까?
그는 소문에 의하면 지금 대남(對南)방송국인 만보산의 '구국의 소리' 기사 작성자로 일하고 있다 한다. 독일에서 월북했다가 탈출, 월남한 '오길남'이 전하는 말이다.

'유격훈련'이라는 저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고통을 마침내 졸업하고 나서야 노빈은 비로소 북한 당국에 의해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오길남'이 전하는 바로는, 안팎으로 얼마나 고초가 심했던지 그의 아내 왈 '죽어서라도 남편을 저주하겠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어쩌면 과장일 것이다.

왜 윤노빈은 월북했을까?
그는 공산주의자도 좌경도 아니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고 헤겔철학으로 무장되었으며 그것을 또 한차례 뛰어넘어 동학(東學)과 스피노자의 생명철학을 밑에 깔고 제 나름의 철학, 저 유명한 신생철학(新生哲學)을 창안한 사람이다.

그의 철학은 내용에 있어서 '묵시철학'에 가깝고 그의 형식은 최재희(崔載喜) 교수의 빈정대는 말처럼 '풍자(諷刺)철학'에 가깝다. 그 책 마지막 장에 그려진 도형인 '브니엘(하느님의 얼굴을 보다)'은 소름이 끼치도록 무섭고 두려운 인간의 삶과 신생(新生)에 대한 깊은 묵시를 압축하고 있다.

그러한 그가 왜 뜬금없이 월북했을까?
부산대학교 운동권 학생 써클의 지도교수였던 것이 문제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학교제자들의 짐작일 뿐일 게다. 노빈은 그보다는 훨씬 큰 사람이다. 철학적으로 그가 내다보는 게 있었던가? 북쪽에 가서 그의 '브니엘'(사람은 사람에게 한울이다)을 실천하여 미구(未久)에 남쪽에서 올라올 민주화와 생명운동의 물결에 북한측 나름으로 '부합(符合)'하려는 통일을 위한 대응 목적이었을까?

그러나 이 또한 깨작깨작하는 이야기일 뿐이다.
그는 중국을 통해 월북하기 직전 며칠전 밤에 내게 왔었다. 무위당선생을 보고 오는 길이라는 한 마디와 나에게 읽어 보라고 건네준 그의 철학노트 '님에게' 이외에 우리 둘사이에 오고간 얘기는 단 한 마디도 없었다. 그때 마침 정전(停電)이 되어 약 두시간 이상을 캄캄칠흑이었다. 기이하다 못해 기괴하기까지 한 마지막 장면이었다.
그리고 불이 들어오자 그는 떠났다. 그리고 그 뒤 어디론가 없어져 버렸다.

그의 철학노트를 세 번 네 번 읽었다. 그 자신의 철학이지 좌파의 대중철학이 아니다. 누군가 철학하는 노빈의 친구 한 사람은 그의 신생철학이 좌익 대중철학의 구조와 의도로 우리 현실에 맞게 씌어졌다고 강변하는데 아무래도 견강부회다.

물론 그의 '중심적 전체론' 등은 북한의 현 체제를 인정할 쏘시알 파씨즘의 개념적 정초(定礎)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중심적 전체론'의 중요한 한 기초로써 작용하는 '활동하는 무(無 여러차례 써온 나의 개념이지만 본디는 윤노빈과 내가 동학의 '弓弓론', 불교 등에 관해 합의한 철학적 개념이다)'에 이르면 동양의 儒·佛·仙 삼교(三敎)의 근원성의 통합은 보이지만 좌파철학의 그 잡다한 구체성과 고압적 단순성의 합명제(合命題)라는 느낌은 안든다.

그럼 왜일까?
그 비밀은 그의 가슴 안에만 있을 것이다. 통일이 되어야 비로소 풀릴 수수께끼다. 그런 윤노빈이 내게 헤겔의 변증법을 가르쳤다. 그곳에서 그의 월북동기를 찾는 수밖에 없다. 헤겔에서? 변증법에서?

우리는 서울에서는 별로 자주 만나지 못했다. 그는 강의실, 도서관, 하숙집 밖엔 몰랐으니까. 다만 우리는 방학 때마다 원주에서 매일 아침 일찍 만나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그 길고 긴 서장(序章)부터 시작하여 샅샅이 공부하였다. 내가 읽고 해석하면 그가 교정해주거나 철학적으로 주석을 달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몇 번 방학 때의 헤겔철학 일반과 변증법 공부가 나의 논리적 삶의 뼈대를 이룬 것 같다. 아마 그럴 것이다. 노빈은 방학 때는 아침에 나와 함께 공부하고 낮에는 저희집 가게인 중앙시장의 피륙전에서 방석을 내다 깔고 앉아 장사를 하고 밤에는 나와 함께 토론을 하며 술을 마시곤 했다.

네 번째의 방학이 끝나갈 무렵이던가 그와 나는 아마도 몇 년간의 헤겔 공부의 결론 비슷한 데에 도착한 것 같다. 헤겔 변증법은 결론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 그래서 헤겔을 지양(止揚)하는 데에 포이에르바하와 마르크스가 있듯이, 이 두 사람의 변증법마저 지양(止揚)하는 그 어떤 논리나 철학이 반드시 나와야만 한다고!

그것이 노빈의 '신생철학'에 나왔을까?
'님에게'에서 나왔을까?
'동학(東學)의 세계사상사적(世界思想史的) 의미(意味)에서 암시되었을까?' 더욱이 북한 주체철학 안에 그의 의도와 맞는 게 조금이라도 있었을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역시 '아니다, 그렇다'이다.

최수운의 '불연기연(不然其然)'이다.
그가 변증법을 극복했다면 그것은 동학(東學)이었을까? 동학(東學)에 대한 그의 관심은 독일유학 후 부산까지 찾아가 만난 나에 의해서 촉발된 것이었지만 만약 그 극복의 주체가 동학(東學)이었다면 유행된 동학(東學)이 아니라 수운단계에서도 비밀스럽게 압축되거나 은유되거나 상징된 바로 그 '역(易)사상' 때문일 것이다.

왜냐하면 동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물한 자 주문(呪文)이고 그 주문의 마지막 즉 완성태는 '모든 것을 다 안다' 즉 '만사지(万事知)'인데 이 '만사지'의 '만사(万事)'가 바로 '수가 많음(數之多)'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 때의 수는 바로 '신비수(神秘數)' 즉 '원자(原者)'이기 때문에 다른 말로 '역수(易數)'를 가리킨다. 그래 이 '원자(原者)'와 역수(易數)의 '많음(多)'이란 이미 옛 역(易)인 주역(周易)이 포함하고, 거기서 시작하되 그것이 다가 아니라는 전제를 깔고 있는 것이다. 역(易)은 역(易)이로되 주역(周易)이 아니라면 그것은 김일부(金一夫)의 '정역(正易)'일까? 아니면 또 다른 역(易)을 기다려야 할까?

'동학(東學)'에서는 수운(水雲)도 해월(海月)도 의암(義菴)도 '수(數)'나 '다(多)'를 말하지 않고 그것에 관한 '앎'인 '지(知)'의 그것, '내가 노력으로 공부해 알면서 동시에 앎을 계시받는 것(知其道 易受其知)'에 관해 시종 묵묵하다.

노빈은 이 영역을 예의 그 묵시적 표현으로 압축한 것일까?
동학과 기독교의 통합은 스피노자(그는 내가 기인 감옥에서 풀려나왔을 때 스피노자의 '윤리학' 한 벌을 선물했다)에 토대를 둔 것인가? 아니면 베르그송인가?

모든 것을 확실히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의 '신생(新生)철학'이 남한에서만이라도 공개적, 합법적, 적극적으로 연구 검증되고 또 필요하다면 엄밀히 분석·비판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남북통일의 철학적 접근에 있어 송두율(宋斗律)과 함께 필요한 지식으로 긴히 직·간접으로 활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주체철학은 크게 변경되어야 한다. 남한과 북한이 함께 새로운 철학을 찾고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주체와 타자의 문제는 새롭게 더욱 더 민족적이면서도 동시에 더욱 더 세계적, 국제적, 우주적으로 깊고 넓게 해석되어야 한다는 얘기이다.

그때에 비로소 만보산 그늘에 감추어진, 그러나 '구국의 소리'를 통해 매일 들을 수도 있는 그의 얼굴과 목소리와 온갖 의문 등 속에 감추어진 묵시의 비밀을 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서울에서든 평양에서든 개성이나 금강산에서든. 사람은 사람에게 한울이다. 노빈은 지하에게 대해 한울님이다.

언제, 그러나 그것도 가까운 세월 안에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사상 문화의 창조적 과정 안에서 나와 그의 만남, 그를 그토록 못 잊어하는 그의 애틋한 부산대 제자들과 그의 만남, 남과 북의 생명철학의 만남! 그 '브니엘'은 언제 이루어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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