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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의 상술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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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의 상술 <27>

광둥상인(하) 광둥의 빛과 그림자

***두껍고 검은 낯가죽의 광둥상인**

<27-1>

낯선 도시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찾아가는 곳은 박물관과 시장과 서점이다. 그 도시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한눈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작년 10월 초, 중국 국경절 연휴기간, 광저우에 도착했을 때, 제일 먼저 신화수디엔(新華書店)을 다시 찾았다. 1998년 불황으로 서점 문이 닫혔던 서운한 기억과는 달리 그날은 서점 입구에서부터 책을 사려는 사람으로 붐비고 있어 흐뭇하기만 했다.

연휴기간이라 발 디딜 틈도 없었고 서점은 아예 시장바닥과 다를 바 없었다. 광저우 출판계는 오랜 불황의 터널을 뚫고 기지개를 켜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어린이보다는 20, 30대 성인의 수가 더 많은 점이 인상적이었다. 베스트셀러 코너에는 중국어판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富爸爸, 窮爸爸)'가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내 눈길을 끈 것은, 1912년 이종오(李宗吾)가 쓴 '후흑대전(厚黑大全)'이 베트셀러 코너와 스테디셀러 코너에 나란히 쌓여 있었다는 것이다. 상하이나 베이징의 서점에서는 스테디셀러나 고작 처세술 서적 코너에서만 몇 권씩 볼 수 있는 그 책이 거기에서서는 불티나게 팔리고 있었다.

<27-2>

그 책에서 말하는 '후흑학'이란 한마디로 낯이 두꺼워 부끄러움을 모르고, 속은 엉큼해 뻔뻔스러운 행동을 거리낌 없이 할 줄 알아야 성공한다는 시니컬하면서도 아주 실용적인(?) 학문이다. 한마디로 얼굴에 '철면피'를 깔라는 가르침과 일맥상통한다 하겠다.

연약한 모습을 보이지 말고, 만만찮은 사람이란 인상을 심어줘라. 그래야만 온갖 수모와 불익에서 자신을 보호하고, 권위와 사사로운 정, 타협에 굴하지 않는 승리자로 거듭날 수 있다. 유비가 실패한 원인은 '낯은 두꺼웠으나 속이 검지 못했기 때문이고, 조조가 천하통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낯과 속이 모두 두껍고 검었기 때문이란다. 후흑학이야말로 천하를 집어삼키는 지혜이며 난세를 휘어잡는 도리라는 말씀이다.

상하이 상인은 돈을 벌더라도 상업윤리의 범위 내에서 품격을 잃지 않고 자신의 실력에 의해서 번다. 그러나 타고난 후흑학의 고수들인 광둥상인은 '흑도'(黑道)와 '백도'(白道)의 양갈랫길로 나뉜다. 광둥상인 중 7할 가량은 밝고 넓은 길, 즉 백도에서 이윤을 추구한다. 물론 백도라고 해서 후흑학의 궤도에서 이탈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후흑학의 정수를 이어받고 있는 부류들이다. 나머지 3할 가량은 어둡고 음산한 골목길, 즉 흑도에서 피 묻은 돈을 벌려는 부류다. 흑도는 후흑학을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흉악한 범죄를 저질러도 좋다는 가르침으로 삼는 악의 무리들이다.

흑도는 외국투자자들로 하여금 광둥 진출을 꺼리게 하고 광둥으로부터의 탈출을 기도케 하는 암적 존재다. 광둥 경제의 큰 오점인 흑도는 외국상인을 함정에 빠뜨리고 눈을 속이고 몰래 빼앗고 기만하고 사기치는, 한마디로 악의 모든 요건을 구비했다.

***일본도 울며 돌아가게 한 광둥**

돈을 신처럼 받들고 후흑학에까지 정통한 광둥상인과의 경쟁에서 승리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광둥에 멋모르고 발을 들여놓은 외국인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광둥상인의 식탁 위에 올라가 그들의 밥이 되는 참극을 맞이하게 된다. 오죽하면 '경제동물'이라는 일본기업이 광둥에 웃으며 왔다가 울며 돌아갔을까!

1980년대 광둥상품은 진짜와 가짜를 불문하고 중국 전체를 점령했다. 광둥 지하공장에서는 뉴욕, 파리, 런던, 밀라노 등의 유명브랜드가 생산된다. 흑도의 광둥상인은 일상 생활용품에서 전자, 전기용품까지, 노동집약형상품에서 하이테크 상품까지 손을 안 되는 것이 없다.

지적재산권문제로 중국과 미국 간의 분규로 한창 뜨거웠던 1997년, 미국 측은 광둥성 내 30여 개 지하공장에서 불법복제되는 CD와 VCD의 수량은 오리지널 미제보다 더 많다고 절규하듯 폭로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광둥의 지하경제는 맹렬한 속도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중국의 소비자들은 지상의 정품보다 훨씬 저렴한 지하제품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홍콩과 마카오와 인접해 있는 관계로 광둥은 밀수가 창궐한다. 광둥의 밀수꾼들은 쥐떼들처럼 조금의 틈만 생기면 곧 헤집고 들어가고, 빈틈이 없더라도 새롭게 빈틈을 만든다. 컬러TV, 비디오카메라, 고급양담배, 고가의 약품 등등, 광둥에서 거래되는 밀수 품목과 수량은 엄청나다.

광둥상인은 흑백의 구분이 분명하다는 특징이 있다. 백은 백도(白道)로만 간다. 그들은 법질서를 크게 교란하지 않으면서도 이문도 많이 남기는 비전의 상술을 구사한다. 흑은 흑도로만 간다. 흑도 또한 자기조직 내부의 규율과 질서에 의해 행동한다.

그리고 광둥상인은 여타 지역에서처럼 백도로 가되 때때로 흑도의 수법을 쓴다거나 흑도로 가되 선명성이 미약하여 한탕주의식 떼돈을 벌어도 발을 빼지 않는다. 흑과 백은 레일처럼 나란히 병행 발전하고 있다.

광둥에서의 사업은 우선 상대방이 백도인지 흑도인지 명확한 판단이 필요하다. 상대방이 흑도라면 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같이 흑도로 말려들거나 재산을 몽땅 날리게 되며, 심한 경우 목숨까지도 잃는다. 사업에 흑도가 간여하지 않도록 사전 예방에 신경을 곤두세우되 흑도가 침투해 올 경우에는 즉각 치안당국과 사법당국에 고발하고 그들의 지지를 얻는 게 중요하다. 아무래도 광둥에서는 유비와 같은 인의로움을 갖춘 상덕(商德)만으로는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

***먼저 나를 알려라**

인류 최초로 게를 먹어본 자는 아주 용감한 자일 것이다. 광둥요리의 재료는 가히 삼라만상을 포함한다고 할 만큼 다양하다. 웬만큼 용감하지 않으면 입에 댈 엄두도 못 내는, 몬도가네성 식품이 많다. 광둥사람은 무력과 정치의 간담(肝膽)은 적으나 재물과 음식의 간담은 크다고 한다. 중원과 멀리 떨어진 터라 광둥상인은 외래문화에 대한 면역력이 약한 반면 활기찬 개척정신으로 사업을 당차게 벌려 나간다.

광둥상인이 부자가 되는 핵심 비결은 단 두 글자로 집약된다. '먼저 선(先)'과 '감히 감(敢),' 먼저 감행하고 기선을 제압하라!

중국 최초로 광둥은 중앙정부의 재정지원 없이 도로와 교량을 건설했다. 또 중국 최초로 성 내의 모든 도로와 교량에 통행료를 부과했다. 통행료를 거두어 모은 자체 재원으로 광저우에서 주하이까지 고속도로를 건설하기도 했다. 광둥의 위대함은 그저 단순한 재원조달 방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간 꽉 막혔던 사람의 사고방식을 돌파한 데 있다. 광둥은 중앙정부의 지원이 없더라도 스스로 다리를 놓고 도로를 건설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주었다. 광저우의 포산(佛山), 광저우와 선전 간의 고속도로, 광저우 지하철도 등 모두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들이다.

또한 광둥상인은 중국 최초로 연예계와 체육계의 스타들을 출현하는 광고를 감행했다. 유교문화 전통이 농후한 북방상인들은 "술 향기가 좋으면 골목이 깊어도 괜찮다"라며 광고를 그다지 중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광둥상인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알린 '모수자천'(毛遂自薦) 고사 속의 모수와도 같다.

자기 PR과 광고를 중시하는 광둥상인의 현란하고 절묘한 광고기법은 세상을 놀라게 한다. 순종 상인종 광둥상인은 거의 동물적인 감각으로 광고의 중요성을 직감한다. 광고가 상품 정보의 전달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고 소비방식과 관념의 변화를 주도하고 기업자신의 이미지를 수립하는 관건임을 인식했다.

1920, 30년대 상하이의 광고가 일세를 풍미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1980년대 개혁개방이후, 상하이도 흉내내지 못할 만큼 광둥의 광고전략은 앞서나갔다. 중국 최초로 광둥기업은 유명 연예인을 자사의 전속 광고모델로 삼았다. 저명한 연예계 스타 리모란의 '산지우웨이타이(三九胃泰)' 소화제 광고를 보자. "산지우웨이타이를 복용할 때는 반드시 유사품에 주의하라"고 엄숙한 표정으로 충고하는 그의 광고는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연예계 스타가 상업광고를 해야 되는가 이견이 분분하기도 했다.

그러나 광둥상인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홍콩의 유명스타들을 거액의 개런티로 캐스팅해나갔다. 북방과 내륙의 점잖은 인사들의 '스타광고'에 대한 질책과 비판이 사라지고 광둥을 모방하기 시작할 즈음, 광둥제는 이미 중국 천하를 점거해버린 뒤였다.

세계 체조의 왕자 리닝(李寧)이 등장하는 '동방마법의 건강음료'라는 별명의 '젠리바오'(健力寶)는 중국 건강음료의 대명사가 되었다. 지금도 홍콩의 세계적인 유명 스타 성룡과 공리는 천문학적인 액수의 개런티를 받고 광둥제 컴퓨터와 화장품을 선전하고 있다.

'먼저, 용감하게 광고하라' 이외에도 광둥광고의 성공비결은 상품과 사람과 긴밀한 관련을 맺도록 하는 데 있다. 소비자가 어떤 사물과 접촉하거나 어떤 상황에 처했을 경우 자연히 그 상품을 연상하게끔 하는 데 광둥상인은 도통했다.

<27-3>

***시작도 빨리, 변화도 빨리**

시장경제의 최고 매력은 시장에 있다. 시장을 향한 상인의 후각은 예민해야 산다.

시장은 전장이다. 전쟁터에서 너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전황과 시황도 수시로 변한다. 얼마만큼 빨리 변화하느냐에 따라 주도권을 잡게 된다. 그 협력과 경쟁의 파도가 흉용한 '상업의 바다' 한가운데에서 행동강령 제1조는 무엇보다 '빨라야 산다'는 것이다.

광둥상인은 잽싸다. 변화에 능하고 속도의 빠르기로 광둥제는 전중국을 휩쓸었다. 존재가 미미한 시골 구석의 조그만 소형기업이 왕왕 전국 기업의 샛별로 떠오르기도 한다. 생활수준과 사회 환경이 달라짐에 따라 소비자의 수요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기업은 끊임없이 신제품을 개발하여 소비자의 수요를 만족시켜야 한다. 신제품 개발전략은 기업의 흥망과 직결되는 핵심전략이다.

소비자의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일상용품의 수요는 끊임없이 증가한다. 상품은 정감화 개성화의 방향으로 가고 있는 만큼 일상용품은 유용한 것만으로는 더 이상 경쟁력이 없다. 가정환경과 조화가 되고 거실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또는 구매자의 신분과 지위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

일상용품은 고품질 초경량 아름답고 정교한 방향으로 발전한다. 광둥상인은 변화에 적응하는 게 아니라 변화를 몰고 온다. 광둥제 가구는 정교함과 섬세함, 그리고 운치로 중국 내수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광둥제 철물도 중국 최초로 다기능 세트화 공예장식화를 실현했으며 가전제품은 미관과 다기능 내구성 전자컴퓨터화 안전, 절전형의 신제품을 끊임없이 선보이며 기존의 가전제품 시장의 골격을 파괴해버렸다.

광둥의 플라스틱제품 역시 컬러화·조합화·복합화의 새로운 스타일을 창출하여 중국의 플라스틱업계를 정복했다. 광둥의 플라스틱 쓰레기통은 공예품을 보고 있는 것처럼 아름답다.

"시작도 빨리, 전환도 빨리, 변화도 빨리" 는 소비자들이 광둥제에 내리는 평가이자 광둥기업의 생산과 경영의 최대 비결의 하나다. 광둥상인은 결코 자신의 상품을 고정된 테두리 안에 그냥 놔두지 않는다. 광둥상인과의 거래에는 손발의 동작이 빨라야 한다. 시장 수요에 잘 적응해야 되고 변화의 속도를 중시해야 살아남는다. 신제품을 출시하여 시장의 반응의 좋으면 곧장 대량으로 출시해야 한다. 일단 시장의 반응이 미미할 때는 즉시 생산량을 조정해야 한다. 시종일관 고도의 경각심을 가지고 언제라도 시장변화에 대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광둥상인에게 먹히기 십상이다.

***광둥, 그 빛과 그림자**

<27-4>

중국 전체 무역의 3분의 1이 광둥에서 이루어진다. 우리나라의 대중 수출액의 3분의 1이 광둥을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광둥성 하나가 중국 전체의 10분의 1이상으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2001년도 말 기준 광둥성의 외자유치 실적은 중국 전체의 4분의 1이나 차지한다. 그러나 특기할 만한 사실은 광둥에 진출한 우리나라 (등록)업체수는 500여 개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전체 중국 진출 한국기업체 수의 10분의 1에 훨씬 밑도는 수다.

한국 기업의 진출이 적은 현상과는 광둥의 투자 여건 자체의 장단점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선 광둥에 많이 진출한 여타 나라의 기업들이 고려했을 장점을 살펴보면, 광둥의 최대 메리트는 개혁개방적이고 경제제일주의적인 사회분위기에 있다. 광둥은 중국에서도 개혁개방 정책이 제일 먼저 도입 실시된 곳으로 중상주의 분위기가 충만하다. 중국의 5개 경제특구 가운데 3개가 광둥성에 있다.

그리고 광둥은 중국에서 가장 높은 구매력을 구비한 지역이다. 높은 소득 수준에 따른 구매력이 뒷받침되어 있다. 수입 소비재의 수요가 크고 홍콩이 인접해 있어 중앙정부의 소비재 수입억제 정책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비롯한 세계 유명 브랜드가 광둥시장에 항시 유통되고 있다.

또한 중국 전국을 커버하는 물류망이 완비되어 있다. 중국 3대 강의 하나인 주장( 珠江)을 이용한 내륙 수운과 함께 고속도로망이 잘 갖추어져 있고 광둥성 자체 판매망은 물론 광둥성 주변 성을 연결하는 전국적 도매망이 잘 형성되어 있다. 주강 델타의 항구들은 중국 전역을 연결하는 창구 역할을 수행한다. 광둥은 양호한 사회간접시설을 자랑하고 있다. 전력과 공업용수, 통신서비스망이 양호하여 정전 등으로 공장가동이 영향을 받는 예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빛이 환하면 그림자도 그만큼 짙은 것인가. 광둥은 장점이 많은 만큼 단점도 많다. 우리 나라 기업들이 이곳 진출을 망설이는 원인과 배경은 이렇다.

거기에는 광둥시장을 선점해버린 화교들이 있다. 홍콩 주민의 80퍼센트가 고향이 광둥이다. 즉, 광둥에는 2,000만 명에 가까운 홍콩의 가족과 친지들이 거주하고 있다. 결국 혈연과 지연, 언어와 풍습이 같은 홍콩자본이 광둥시장을 손쉽게 장악했음은 당연하다. 또 홍콩 이외에도 싱가포르, 마카오, 말레이시아, 태국 등 동남아 등지의 화교계 자본이 집중투자된 대표적 지역 역시 광둥이다. 이들 화교기업들이 현지 상권과 투자요지를 선점함에 따라 후발기업들의 진출은 상대적으로 높은 투자비용과 차별적 대우를 각오해야 한다.

한국 기업이 중국에 대해 갖는 제1의 매력은 무엇보다 저렴한 임금수준일 것이다. 그러나 광둥은 높은 임금수준으로 이름 높은 지역이다. 광둥의 임금 수준은 중국의 다른 지역에 비해 평균 30퍼센트 이상 높다. 땅값 또한 한국의 중소도시 수준을 넘어설 정도로 폭등을 거듭한지 오래다.

그리고 단순 노동집약 업종의 경우 광둥성 내 수요가들이 밀집되어 있는 신발, 완구, 가전, 봉제 가방이나 의류 원부자재 관련 업종 이외는 사업성을 찾기가 극히 어렵다. 더구나 외자업체에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을 만큼 가격경쟁력과 품질경쟁력을 갖춘 광둥 내 중국 업체가 적지 않다. 뿐만 아니라 광둥상인의 경제적 마인드와 마케팅 서비스나 광고기법 수준은 선진국과 비교해 손색없을 만큼 탁월해 우리 업체가 쉽게 들어갈 틈새가 별로 없다.

끝으로 광둥의 지하 경제의 횡행과 치안상태의 열악성이다. 미생물은 그 배양액에서 자란다. 매춘과 밀수 마약관련사업자와 조직폭력배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 있는 광둥의 열악한 치안상황은 진출에 성공한 기업까지도 철수를 심각히 고려하게끔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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