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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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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102>

방랑

떠났다.
서울을 떠나 나는 부모님이 계신 원주로 갔다. 내 집이었지만 나는 그 한때를 방랑으로 기억한다.

내 집으로의 방랑!
그러매 내 넋 속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 일에 비추어 볼 때 내 집은 타향이고 부모님은 객지였다.

한편으로 민통에 가입하지 않고 친구들이 추진하는 민족통일운동을 매섭게 거절했지만 이미 내 마음은 익숙한 내 일상으로부터, 부모님과 내 집으로부터, 성년(成年)의 여드름으로부터 멀리멀리 떠나고 있었다.

그때의 원주.
원주에서 떠돌던 내게 한 사건이 있었다.
기독청년회관에서 무위당(无爲堂) 장일순(張壹淳) 선생을 만난 것이다.

나는 그때의 한 청년모임을 사회(司會)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치악산 산등성이의 한 외로운 소나무 피부조차 이 민족역사에 일어난 고통스러운 사건들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 기억을 우리는 이제 다시 되돌려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잃은 것, 잊은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 기억을 되돌려받음으로써 우리 자신과 그 치악산 소나무들의 삶을 회복해야 합니다. 인간과 자연의 일치 말입니다. 소나무가 기억하고 있는 우리 민족의 비극의 역사! 그것이 도대체 무엇일까요?"

무위당(无爲堂) 선생은 그때 윤길중(尹吉重) 선생과 함께 혁신계 정당인 사회대중당(社會大衆黨)을 이끌고 계셨다. 그 날이 아마도 내 삶 속에 선생님이 들어오신 첫 날일 것이다. 선생님은 몽양(夢陽) 여운형(呂運亨) 선생과 그 뒤 죽산(竹山) 조봉암(曹奉岩) 선생의 제자였고 계승자이셨다. 선생님은 그 뒤 5·16 군사쿠데타 때에 구속되어 3년의 옥고를 치르셨다.

그 날 이런 말씀을 하셨다.
"소나무 이야기는 매우 시적(詩的)이다. 그리고 좋은 문화운동의 표현이다. 나도 매우 좋다고 생각한다. 나도 서울대학교 미학과에서 예술을 공부했다.
이렇게 생각하자.
소나무 이야기는 좋은 것이지만, 소나무보다 인간이 더 강하고 총명한 역사의식을 갖고 있다고. 그러므로 무엇보다 먼저 인간 안에서 기록이나 기억에 의해 과거의 민족사를 다시 끄집어내야 한다고.
그것을 기억하고 다짐하고 한걸음 더 내딛는 것이 바로 지금 여기에서 진행되는 민족통일운동이라고 생각하자."

옳은 얘기였다.
그리고 내 얘기는 조금 환상적이었다.
그래서 아마 그 뒷날 뒷날 나는 선생님을 따라 선생님과 함께 그 길고 긴 세월을 이른바 '원주캠프'에서 일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의 내 얘기는 환상이 아니었고 틀린 말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소나무와 우리들 속에서 움직이는 민족의 독특한, 도리어 세계적인 보편성·홍익성(弘益性)을 지닌 그 역사의식에 오늘날 신세대의 초점이 서서히 모아져야 하고 또 모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날 밤 시내에서 술을 마시고, 독한 술을 많이 마시고, 고등학교 때 방학이면 늘 스케치북을 메고 드나들었던 그 기독교 선교사들의 땅, 원주기독병원 뒤편에 있는 그 히말라야 소나무와 콩밭으로 무성했던 숲 속, 철조망이 쳐진 그 숲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콩밭에 누워 쳐다본 하늘, 이월의 밤하늘에는 별들이 찬란했다. 내 머리 바로 위에 북두칠성이 뚜렷이 삼렬(森列)해 있었다.

'인간은 별로부터 온 것일까?
인간은 죽어 별로 돌아가는 것인가?
북두성(北斗星)에서 왔다는 민족의 역사는 사실일까? 지구는 북극에서부터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전설은 참다운 과학일까?
별과 혁명은 어떤 관계인가?
북두칠성의 민족신앙과 지금의 통일혁명은 어떤 관계인가?'

이때 내 얼굴에 무척 밝은, 눈부신 플래시 빛이 비쳐졌다. 그리고 시커먼 엽총의 총구멍이 바로 내 얼굴을 향해 불쑥 다가들었다.
'너, 누구야?'
서투른 우리말이었다.

아! 선교사로구나!
'이발소' 그러니까 영어로는 '에이블스'라는 그 땅의 주인이었다.
그 땅의 주인! 이발소! 선교사! 총뿌리! 아아 그리고 또 북두칠성!

가느다란 실비가 흩뿌리기 시작했다. 원주 시내 시장과 행락가들은 비에 젖은 속에서 부옇게 빛나며 불빛의 춤을 추고 있었다.

나는 그날 밤 일을 결코 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내가 콩밭으로 기어들어간 까닭은 자살하기 위해서였으니까. 노끈에 매듭을 지어 철조망에 매달려 몇차례고 몇차례고 반대방향으로 몸을 쓰러뜨리곤 했으니…. 그리고 죽음은 오지 않고 이상한 쾌감, 황홀한 의식상실 상태가 세번씩이나 왔었으니….

왜?
나의 숙제는 '내면과 외면' '명상과 변혁' '소나무와 혁명'이 통일되지 않는 것!
'요기-싸르'의 꿈!

나의 세계가 화해하지 않는 것.
내 운명이 이해되지 않는 것.
뭐 그런 그런 모든 것들이었으니.

<'월간중앙'과 동시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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