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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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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99>

연극 1

미술학교의 데모는 성공했다. 문제 교수 몇 사람을 사퇴시켰고, 미학과를 문리대로 옮겼으며 학생과 업무와 커리큘럼 개혁을 시도한다는 내용이었으나 장발 학장은 그대로 유임했고, 아! 그래 우리는 바보였다. 왜냐하면 그 당시 정권이 장발 학장의 형인 장면의 정권이었으니까!

그리고 또 주동했던 선배들 여섯인지 일곱인지가 조건부로 퇴학처분되었다. 그러니 그 데모는 결국 실패한 것이다. 성공처럼 보이지만 실패하는 것.
이것이 관료주의다.

그러나 실패한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만 빼버린다면 길게 보아 성공적일 수도 있는 것.
이것이 문화혁명이다.

나는 선배들의 퇴학 처분과 문교당국의 위선에 심기가 뒤틀려 2학기 가을 등록을 포기하고 휴학한 뒤 서울과 원주, 그리고 대학가를 구름처럼 떠돌기 시작했다.

4월 혁명의 참모부요, 그 최전선이었던 민족통일연맹에는 가입하지 않았으나, 나는 평생 그 어떤 조직에도 직접 가담한 적이 없지만, 분명 혁명의 한 날개였던 '새생활계몽대'에는 깊숙이 관여하기 시작했다.

'새생활계몽대'는 전국 각 대학 학생들로 조직되어 양담배와 양주를 비롯한 외제상품을 쓰지 말자는 계몽운동으로, 경제·문화적인 민족 자주성을 드높이는 운동이었다.

학생들은 완장을 차고 술집이나 가게, 행인들에게서 양키물건을 입수해 모아다 종로 네거리 한복판같은 곳에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행인들이 보는 앞에서 불태웠다. 이 운동은 큰 반향을 일으키며 장차 사상 및 문화와 예술에 있어서의 민족주체, 민족주의의 열풍을 불러오게 된다.

계몽운동은 선전연극을 기획했다.
내가 가담한 두번째 연극이었다. 첫 연극은 1학년 겨울, 그러니까 4·19 직전에 서울대 학생연극회에서 공연한 티에리 모니에의 '암야(暗夜)의 집'이라는 반공(反共) 연극이었다.

두번째는 '새생활계몽대'에서 주관한 계몽선전연극이었다. 이철향 작 '달빛 있는 생신'으로 지금은 톱스타들인 최불암·박근형씨가 출연했고 나는 잠깐 무대에 들어오는 젊은 대학생 역이었다. 달빛이 비치는 생일날 양담배·양주 등 외래물품을 쓰지 말자는 각오를 새롭게 하는 부자지간(父子之間)의 갈등을 다룬 것이다. 당시 을지로 입구의 전문 소극장인 '원각사'에서 공연했다. 연극은 이곳 저곳을 순회했다. 그 중 하루는 수원농대에서 공연했다.

수원농대! 농대 앞으로 한없이 긴 직선으로 뻗어 있는 그 가로수길!
휘영청 만월이 뜬 그 밤!
새벽 1시!

농대 학생회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밤새 떠들다가 문득 창밖으로 흩날리는 이상한 바람소리를 들었다. 낯선 예감이 내 가슴을 두들겼다. 누군가 밖에서 나를 불러내는 듯 슬며시 일어나 달빛 가득한 교정으로 나와 행길가에서 손짓하는 검은 가로수들 쪽으로 걸어갔다.

거기 양쪽 두개의 소실점(消失点) 밖으로 사라지는 길고 긴, 달빛 비치는 흰 신작로가 똑바로 누워 있었다. 가로수와 먼 곳 숲들은 모두 검고 길만이 새하얗다. 만월은 저 높은 하늘을 가로질러 운행하고 눈부신 구름들이 달 근처를 지나가고 있었다. 그 행길은 한없이 소실점 바깥으로 달려가 지평선 너머의 저 아득한 한밤의 흰 우주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거기에 왠지 내 운명이 걸려 있는 듯했다.
우주로 사라지는 흰 운명의 길!

걷기 시작했다.
끝이 없었다.

몇 시간을 그렇게 걸었을까.
검은 나무숲과 흰 하늘, 흰 길의 끝없는 현전! 꿈결 같았다.

결국 희뿌연 여명이 들기 시작해서야 나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그 뒤로 한번도 잊혀진 적이 없는 이 한밤의 흰 우주의 길은 몇번이고 상황을 바꾸면서 내게 현전했다.

그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내 운명에 무슨 뜻을 갖는 것일까.

민청학련사건 때, 그리고 그 뒤의 또 한번의 여러 해에 걸친 투옥과 감방에서의 백일참선때 뚜렷이 나타난 흰 우주의 한없는 길! 그것은 내 실존에 대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의미는 알 수 없으나 어떤 예감은 있다. 그것은 훗날 나타나기 시작한 정신병 및 우울한 환각과 관계가 있었다. 그리고 전문의는 그것을 단순한 '분열'이나 '착란'이 아닌 일종의 '종교적 환상'으로 분류했다.

<'월간중앙'과 동시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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