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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자부 공무원이 쓴 '경제관료 비리' 폭로서 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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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산자부 공무원이 쓴 '경제관료 비리' 폭로서 화제

[화제의 책] ' 모피아 전횡 등…건교부 "법적대응"

30년 간 경제부처에서 근무해 온 공무원이 퇴직을 앞두고 정부의 어처구니 없는 정책 수립 과정을 고발하는 책을 펴냈다. 이 책에는 신도시 개발정보가 발표되기 전에 공무원들의 친인척, 개발업자, 투기세력 등에게 빠져나갔다는 등 민감한 내용도 다수 포함돼 있어 파장이 일고 있다.

이 책은 <과천블루스>라는 제목으로 지식더미 출판사에서 펴냈다. 29일 출간된 이 책의 저자는 1976년 구 경제기획원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해 재정경제부 등을 거친 뒤 오는 31일 산업자원부에서 퇴직하는 이경호(59) 서기관이다. 이 서기관은 이 책에서 30년 간 경제부처를 두루 거치면서 직접 보고 들은 정부의 정책실수와 부정부패 사례, 비합리적 관행 등을 근무일지 형식으로 고발하고 있다.

이 서기관은 이 책의 서문에서 "독자들로부터 찬사를 받기 위해 이 글을 쓴 것이 아니다"라며 "공무원사회의 무능, 불의, 부정, 부패, 비열 등에 대한 나 자신의 비판적 분노에 따른 것이다. 나는 내 주변에서 일어난 많은 사건들로 인해서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라고 집필동기를 밝혔다.

"신도시 개발 발표 5년 전에 건교부 공무원, 개발업자는 다 알아"

우선 눈에 띄는 대목은 신도시 개발을 둘러싼 공무원과 개발업자 간의 유착을 고발한 부분이다. 이경호 서기관은 올해 1, 2차로 분양된 판교 신도시 아파트와 관련된 일화를 통해 정부의 탁상행정과 도덕불감증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판교신도시 개발계획이 발표되기 5년 전에 건교부 공무원들은 이미 판교가 신도시 개발예정지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이런 개발정보를 자신들의 친인척에게 알려줘 땅을 사도록 함으로써 개발이익을 챙겼다는 것이다.

특히 이 서기관의 동료의 입에서 나오는 개발정보 유출 과정은 흥미롭다.

"건교부는 택지개발을 위해 평소 산하 연구기관에 신도시 개발 관련 용역을 줘요. … (용역기관은) 어느 지역이 택지개발지역이고 택지개발가능 지역인지를 결정하구요. 용역기관은 이런 결과를 담은 '신도시 개발 용역보고서'를 건교부에 제출해요. 그런 후 입소문을 통해 관련 개발정보가 좌악 퍼져 건교부 직원들은 다 알게 돼요. 그들은 이 정보를 자기 친인척에게 알려주고 땅을 구입하라 하지요."

"그런데 웃기는 것은 이런 '신도시 개발 용역보고서'가 5년 전부터 강남 중개업소를 돌아다녔다는 거에요. 중개업자나 기획부동산 놈들이 돈 주고 개발정보를 빼낸 거지요. 이들은 땅투기꾼이나 건설사에 보고서를 보여주면서 땅을 구입하라고 부추기지요. 그래서 정작 건교부가 신도시개발정책을 발표할 때는 그 지역은 이미 건교부 고위직의 친인척이나 복부인들이 땅 구입을 완료한 상태이지요. … 이제 건교부 장관이 판교 개발을 발표했으니 판교 땅값은 곧 폭등할거예요."('판교 신도시, 짜고 치는 고스톱' 중에서)


▲ <과천블루스>. ⓒ 지식더미

"건교부가 집값 상승 부추겼다"

이경호 서기관은 또한 건교부가 분양가 산정을 엉터리로 해 아파트 값이 빠르게 올랐다고도 주장했다. 새로 지어지는 아파트 분양가가 부풀려지면서 연쇄적으로 주변의 기존 아파트 값도 덩달아 올랐다는 것이다.

"과거 경제기획원은 분양가를 주변 아파트 시세보다 20% 낮게 책정(분양가 = 인근지역 아파트 평균가격×80%)했다. 그런데 지금 건교부는 판교 분양가를 오히려 주변 아파트 시세보다 10% 높게 책정(분양가=유사지역 아파트 평균가격×110%)했다. 이거는 뭔가 잘못됐다."

강남 30평 아파트가 10억 원을 돌파했다는 신문기사를 읽고 놀라는 동료에게 이 서기관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건교부가 판교 분양가를 주변 아파트보다 10% 높게 책정해서 그래. 그러니 주변 아파트들이 그 가격에 맞춰 가격을 올렸고, 그 뒤를 이어 그 주변 아파트들도 이에 맞춰 가격을 또 올렸지. 판교→분당→용인→수지→강남으로 아파트 가격 상승이 도미노 게임처럼 이어진거야. 그러다가 강남 30평 아파트가 10억으로 껑충 뛴 거지."

그는 이런 일화를 소개한 뒤,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탁상행정. 이것은 공무원의 암적 습관이다. 만약 건교부 직원이 부동산 변천사를 공부한 후, 책상머리를 떠나 발로 뛰는 현장 행정을 했다면 고가 분양가 책정은 없었을 것이다."('건교부의 엉터리 분양가, 아파트가격 폭등 불러' 중에서)

"KDI에 돈을 삼태기로 갖다 줘"…국민연금기금 고갈시점, 20년 전 이미 알아

이 서기관은 국민연금을 둘러싼 정부의 어처구니 없는 행정을 고발하기도 했다. 이미 20년 전에 국민연금이 2050년께 고갈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적지 않은 돈을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줘가며 용역 연구를 시킨 뒤 유사한 결과를 발표했다는 일화를 소개하면서다.

지난해 2월 말 국민연금이 2042년이면 완전히 고갈된다는 KDI의 분석 결과를 보도한 신문기사를 보고 놀라는 동료들에게 이 서기관은 "별 것 아냐, 20년 전에 다 알고 있던 사실이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주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부연설명했다.

"1986년에 KDI는 2049년에 국민연금이 완전 고갈된다는 보고서를 작성해 청와대에 보고했다. 보건복지부는 이 보고서를 토대로 1988년부터 국민연금을 시행했다. 그러니 2040년 대 후반에 기금이 고갈된다는 것은 이미 20년 전에 다 알고 있던 내용이다."

"2003년에 보건복지부는 용역을 통해 2047년에 기금이 고갈된다고 발표했다. 올해(2005년)은 기획예산처가 용역을 통해 2042년에 기금이 고갈된다고 말했다. 이것은 20년 전에 KDI가 예측한 2049년보다 각각 2년, 7년 빨라진 것이다. 고갈 연도가 빨라진 것은 기금수익률 때문이다. 기금수익률을 9%→7.5%→4.5%로 낮춰 계산하니까 기금 고갈 연도도 빨라진 것이다"

"KDI 박사들은 '기금수입 모형'에 기금수익률의 변동치만 집어넣으면 5년 후, 10년 후, 30년 후의 기금수입 규모, 적자 규모를 간단히 추산해낼 수 있다. 그러니 보건복지부나 기획예산처가 2년마다 번갈아가며 KDI에 국민연금 관련 용역을 의뢰하는 것은 돈을 삼태기로 갖다 바치는 꼴이다. KDI에 돈벌이만 시켜준 셈이다."


이 서기관은 동료 직원들에게 이렇게 설명한 뒤, 정부가 이런 웃지못할 행정을 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통령 공약사업(국민연금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보건복지부의 한탕주의가 문제야. 부랴부랴 시간에 쫓겨 제도를 만들다보니 이런 일이 생긴거야. … 만일 KDI가 1986년도에 '100년짜리 국민연금제도'를 만들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면 이처럼 세상이 시끄럽지는 않았을 텐데…."('KDI, 땅 짚고 헤엄치기로 용역장사' 중에서)

"저…모피아입니다"…정부 감사도 막아내는 모피아의 힘

이밖에 이경호 서기관은 일반인들에게는 그 존재가 분명히 드러나지 않지만 금융, 산업, 정책 등 대부분 경제 관련 부문에서 막강 파워를 보이고 있는 모피아(재무부-재경부 퇴직자)가 정부의 감사도 무력화시키고 때로는 공무원 인사에도 개입했다고 고발했다.

이 서기관은 지난 1998년 9월 재정경제부에 재직하면서 현재는 없어진 한일은행에 대해 감사를 진행할 때 씨티은행을 감사 중이던 동료와 나눈 대화를 소개했다. 이 서기관의 동료가 이 서기관에게 충고한 말은 다음과 같았다.

"거긴 모피아 없어? 있으면 말 조심해. 그 친구들은 나중에 우리 얘기를 많이 한대. … YB(후배)가 OB(선배)를 봐주니 안 봐주니 하면서 떠들고 있어. 두 달 전 보증기금 감사에서 내가 최 이사라는 사람에게 보증업무가 개판이라고 말했거든. 재무구조도, 매출액도 형편없는 회사에 20억, 30억 짜리 보증서를 막 남발하는 법이 어디 있냐구 말이야. 그랬더니 다음날 금융정책실 김 과장에게 전화가 왔어. 최 이사 잘봐주라고 말이야. 기분이 아주 더러웠어. 알고 보니 최 이사는 모피아였어 그러니 야박하게 할 수가 없더라구. 하여간 모피아 때문에 금융기관 감사가 제대로 안 돼. 골치 아파. 이 형도 참고해."

이 서기관도 한일은행 감사과정에서 모피아를 직접 대면하기도 했다.

"김 모 이사는 감사 첫날부터 줄곧 내 옆에 붙어 살았다. 그런데 임원 되는 사람이 하루종일 내 옆에 붙어 있다는 건 인력낭비였다. 임원은 은행의 중요한 일을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감사장에는 은행 감사와 직원들이 대기하고 있기 때문에 임원이 없어도 상관 없었다. 나는 김 이사에게 신경 쓰지 말고 가서 일 보라고 말했다."

"김 이사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그 대신 '반장님(이경호 서기관을 기리킴), 감사기간 동안 제가 할 일은 반장님을 수발하는 겁니다. 그리고 사실은 저 …모피아입니다. 오늘이고 내일이고 저녁에 시간 좀 내주십시오'라고 김 이사는 말했다. 이처럼 어딜 가나 모피아가 깔려 있었다."

"다음 날에도 김 이사는 내 옆에서 빌빌댔다. 그는 감사기간 내내 내 옆에 있느라 전혀 일을 하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기에 금융기관 임원들은 적당히 놀고 먹어도 월급이 나오는 것 같았다. 또 김 이사가 모피아라는 사실을 알아서인지 내 마음은 찜찜했다. 금융기관 감사는 모피아 때문에 감사하기가 힘들었다."('모피아 때문에 감사가 문제야' 중에서)


이경호 서기관은 또 모피아가 정부 부처의 인사에도 개입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동료 직원이 분명치 않은 이유로 인사조치를 당한 뒤 이 서기관과 나눈 대화를 소개하면서다. 대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경호 : 무슨 이유로 갑자기 행정관리담당관실로 발령이 난 거야? 그것도 감사기간 중에 말이야.

동료 : 나도 총무과장에게 따졌지. 감사 열심히 하고 있는 나를 왜 발령냈느냐고 말이야. 그랬더니 대답을 안 하더군.

이경호 : 도대체 이해가 안 가. 감사 잘 하고 있는 사람을 갑자기 왜 발령을 내느냐 말이야!

동료 : 내 생각에는…, 재무부 OB(모피아를 가리킴)가 위에다 손을 써서 나를 날려보낸 것 같아. 내가 더 이상 A종금사의 불법자금을 쑤시지 말라고 말이야.

이경호 : 아니, 그게 정말이야?

동료 : 그게 아니면 내가 움직일 이유가 없어.

이경호 : 말도 안 돼! 조사를 못하게 인사명령을 내다니…

동료 : 모피아가 존재하는 한 금융기관 감사는 제대로 안 될 거야.

이경호 : 그럼 800억 불법인출 사건은 어떻게 되는 거지?

동료 : 흐지부지되겠지, 뭐….

정부 경제부처 당황…"법적 소송 불사하겠다"

한편 이 책 출간에 관한 소식이 언론보도 등을 통해 퍼지자 이경호 서기관이 이 책에서 비판을 가한 정부부처들이 재빠르게 해명을 하고 나섰다. 특히 판교신도시 개발정보를 사전에 유출해 해당 공무원들이나 투기업자에게 많은 수익을 가져다 줬다고 이 서기관이 지목한 건설교통부는 이 서기관에 대한 법적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건교부는 29일 "건교부 직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면서 "손해배상 청구소송 등 민·형사상 법적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건교부에 따르면, 개발용역 발주는 지방자치단체가 하는 것으로 건교부가 용역을 발주한 것으로 전제한 이 서기관의 글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또 건교부 공무원이 사전에 취득한 정보를 통해 판교 신도시 개발예정지에 투기를 했다는 이 서기관의 지적에 대해서도 "명확하고 구체적인 사실 적시 없이 건교부 직원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반박했다.

이처럼 자신이 쓴 책에 대한 파문이 확산되자 이경호 서기관은 현재 재직 중인 산업자원부를 통해 "나는 공무원 사회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비빔밥 식으로 섞어서 썼다. 그러나 보도된 내용은 부정 일색이었다. 내가 의도한 것과는 정반대의 내용이었다"면서 유감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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