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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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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95>

전곡

‘까사 비앙카’라는 이태리의 깐쪼네가 있다. 그 첫 구절이 ‘언덕위의 작은 집’인데 그런 집이 전곡의 한탄강가 언덕위에 두 채가 있었다.
한 채엔 문태숙부네가 살고 또 한 채엔 숙부가 목포에서 모시고 올라온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셨다.

숙부는 강에 나가 그물질로 물고기를 잡고 언덕위 채마밭에 채소를 심어 반찬을 했다. 가난이 역력했고 폐결핵이 깊었다. 그래도 술은 여전해서 나와 풍삼에게 연신 잔을 권하며 전라도에서 공비토벌하던 얘기를 길게길게 하는데 풍삼이 듣기 싫어하는 눈치였다. 풍삼도 집안에 좌익이 있었을까? 말은 안하지만 나는 냄새로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숙부는 그런 것 개의치 않고 그냥 내리 그 얘기였다.

나는 슬며시 일어나 할아버지께 갔다. 할아버지가 내내 묵묵하시더니 한참 지나서 여윈 얼굴에 경련하듯 미소를 지으며 하신 말씀이 이것이다.
‘영일아, 집안을 일으켜라!’

하기야 서울대학교까지 갔으니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겠지만 내겐 너무 벅찬 주문이었다. 왜냐하면 우리 집안을 일으키려면 증조부와 할아버지의 꿈이었던 후천개벽과 아버지의 꿈이었던 사회 혁명을 아울러 수행해야 되기 때문이다. 그 두가지가 아니라면 우리집안은 일어날 수가 없었다. 전라도 출신. 가난. 무학력. 무연고. 병.
무엇 하나 유리한 건 없었다.

술김에 풍삼과 나는 사촌 동생들과 함께 채마밭에 들어가 밭을 매며 지껄였다.
‘늬 집안과 어떤 차이가 있나?’
‘같다, 같어!’
‘같어?’
‘그래. 프롤레타리아야 프롤레타리아!’

풍삼이 프롤레타리아 얘기를 할 때면 눈이 빛나고 허리가 곧곧이 펴지는 것을 볼 때마다 나는 그에게 스산하면서도 깊은 우정을 느끼곤 했었다.

그와 함께 기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올 때 나는 그로부터 기절초풍할 한마디를 들었다.
‘느그 숙부는 프롤레타리아 공비토벌대다. 프롤레타리아 공비토벌대!’

프롤레타리아 공비토벌대? 그런것도 있는가? 어느 늦은 가을날이었다.

***암야의 집**

그해 겨울. 내가 처음으로 참가한 연극작품은 프랑스의 띠에리 모니에 작 ‘암야의 집’이었다. 수준높은 반공 작품이었는데 나는 이 연극에서 주인공 하겐을 잡으러 가는 보안관 요셉 람메르라는 작은 단역이었다.

주인공의 친구로써 강력한 공산주의자 청년을 짝사랑하는 미친 소녀의 착각에 의한 키스를 받는 중늙은이 경찰관이다.

연극의 핵심은 앙쌍블에 있다.
나는 조금의 사심이나 게으름도 없이 나의 역할과 전체 팀웍에 충실했다. 그러나 여러 사람들이 게으름을 부리거나 대사를 까먹고 제가 만들어서 지껄이거나 동작선을 지키지 못하는 것을 보고 몹시 화가 났다. 내가 만약 연출이라면 가만두지 않을 것 같았다.

훗날에 깨달은 것이지만
그것.
그 작은 실수를 못 참는 것.

그것이 사실은 연극에 반대되고 앙쌍블에 반대되는 기질이었던 것이다.
연극은 잘못하면 파씨스트를 만들어내기 쉽다. 특히 연출을 잘못하면 그리된다. 일호의 착오도 용납해선 안되지만 기왕에 저질러졌을 땐 또 너털웃음으로 그냥 넘어가야 하는 것이 연극의 본성이다.

나는 4.19 직후 ‘인촌 김성수’라는 연극에 참가해서 고하 송진우(古下 宋鎭禹) 역할을 한 적이 있다. 그때 연출을 맡았던 최창봉(崔彰鳳) 선생이 내게 조용히 말씀하신 것이 있다.
‘미스터 김은 연극과 안맞아! 개인예술을 해요. 집단예술에는 안 맞아!’

그때의 나로서는 놀라운 얘기였다.
그러나 두고두고 생각해봐도 역시 정확한 지적이요 절실한 충고였다. 그 뒤에도 나는 연극을 많이 했다. 그러나 전업으로 나가는 길이 아니라 청년학생 중심의 문화운동의 길을 트기위한 하나의 방편이라는 전제를 결코 잊지 않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연출을 할 때는 역시 지독한 파씨스트가 되곤 했으니 그것을 스스로 자각할 때마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몸을 떨었던 것이다.

연극엔 연극에 맞는 기질이 있다.
그것이 무엇이라고 딱히 규정할 수는 없으나 보면 안다. 나는 결코 연극이나 집단예술 기질이나 거기 맞는 체질은 아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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