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94>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94>

주변

대학 일학년 때 내가 좋아하던 몇 친구들이 있었다.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조명형(趙明衡)이다. 회화과 괴물인데 비쩍마른 친구가 말도 잘 안하고 술만 마시곤 했다. 그 무렵 유행하던 박서보 등의 추상파를 비판하는 나의 새로운 리얼리슴론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나와 친해졌다.

명형은 참으로 매력있는 친구였다. 무어라 정확히 꼬집을 수는 없으나 그의 우울 속에 감추어진 열정의 냄새가 사람을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내가 ‘호모’가 아닐까 스스로 의심할 정도로 나는 한 때 그에게 심취해 있었으니까. 또 그도 나를 잘 대해주었으니까. 훗날 나와 그는 매일밤 같은 술집에서 만나 유행가 내기를 했던 일도 있었다.

또 한사람이 김인영(金仁英)이다. 무뚝뚝하고 고집이 센 그는 서북출신인데 역시 지독한 리얼리스트로서 나의 그로끼를 보고 왜 그림을 하지 않느냐고 만나 술을 마시기만 하면 묻고 또 묻곤 했다.

어느 눈보라치는 날 그의 집이 있는 돈암동 산꼭대기까지 가서 바람 휘몰아치는 그의 방 창문에 담요를 씌워놓고 덜덜덜 떨면서 훌훌 냉면을 먹던 생각이 난다.

말을 잘 안하지만, 그는 세계에 대해 정확히, 그리고 진실로 자기 삶과 의식을 정위(定位)시키고 있는 이 세상에 얼마 안되는 건강한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에게는 한치라도 불안한 정신적 취약성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의 그러한 다부진 성격을 사랑했다. 오래 소식 모르던 그가 몇 년 전 미국에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참으로 감개무량해 했던 기억이 난다.

또 한 사람이 미학과의 김창기다.
그는 많이 수줍음을 타고 너무 섬세해서 건드리기가 겁나는 사람이었다. 함께 자주 말없이 술을 많이 마셨고, 영등포에 있던 그의 집에까지 가서 하룻밤 자고 온 일도 있었는데 그는 수줍음 잘타는 자기의 성격적 결함을 고치기 위해 명동에 있는 음악다방에를 자주 나가 젊은 여자들과 깊이 사귀곤 한다는 얘기를 내개 해주기도 했다.

그때 그를 통해 젊은이들이 ‘프리 쎅스’를 즐긴다는 말을 듣고 저윽히 놀라고 오래오래 가슴에 손을 얹은 적이 있다.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완전한 프리 쎅스가 파탄없이 가능할까?

***조풍삼(趙豊三)**

미술학교에 있던 1학년 일년동안 가장 가까웠던 사람은 회화과의 조풍삼이다.
풍삼은 사람도 크고 듬직하고 어질디어진 사람이었지만 그림도 박력있고 깊이있는 그야말로 타고난 예술가였다. 그의 그림은 죠르쥬 루오의 자취가 있었으나 이미 그것을 넘어서는, 도리어 우리나라 민화(民畵)의 꿈결같은 극채색과 역동적인 리얼리슴으로 빛이 났다.

그는 전주 출신으로 과수원에서 오래 살았다 한다. 하기야 내가 가끔 농담으로 그의 그림을 ‘과수원 그림’이라고 놀리기도 했는데 왜냐하면 그림안에 온갖 물상과 색채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과실이 만개한 듯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과시 ‘플레로마(물질의 충만)’였다. 데쌍이나 밑그림 그릴 때 연필에 너무 힘을 주어 종이가 그냥 찢어져 버릴 정도로 박력이 있어서 내가 또 농담으로 ‘삼손’이라고도 부르곤 했다.

그 ‘삼손의 과수원 그림’을 그리는 조풍삼은 술을 마시고는 가끔 자신을 일러 ‘프롤레타리아’라고 부르곤 했는데 대개 그런 때는 술값이 떨어져 없거나 담배가 떨어져 없을 때로서 그런 때는 반드시 구걸하기 위해 프롤레타리아의 노래를 불렀으니 그 유명한 슈벨트의 ‘거리의 악사’였다. 듬성듬성한 잇사이로 침을 튀기며 굵은 바리톤으로 웅장하게 불러대는 슈베르트는 가히 일품이었다.

나는 그에게 담배를 배웠다. 그가 하도 맛있게 피워서 배운 것인데 지금도 그것만은 후회한다. 술도 말술이요 아무리 취해도 실수라곤 아예 없는 그야말로 장사였다. 바로 그 풍삼과 함께 여행을 한 적이 있으니 문태숙부가 사는 경기도 연천군 전곡이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