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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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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93>

김윤수(金潤洙) 현상

나는 분명 미학교수가 되려고 미학과에 간 것이다.
그런데 입학 초기부터 내 눈에 들어온 교수란 사람들의 태도나 인품에서 도무지 학자는커녕 평균적인 지식인조차 될 수 없음이 자꾸 들어나 실망의 연속이었다. 내가 학교에 적을 두었던 길고 긴 7년 반동안 내내 이런 실상을 보았으니 결국은 내 마음 밑바닥으로부터 교수지망을 포기하기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무능과 아집, 독선과 타협, 부패와 파벌 등등 이루 헤일 수 없는 결함들이 아직 어리숙한 나의 눈에조차 확연히 드러나 보인 것이다. 미학과 역시 다른 과보다 나을 것이 없었다. 특히 나 2학년 때 터진 4월혁명 여파로 미술대학 장발학장 축출과 미학과의 문리대 이전을 위한 학생데모, 그리고 그 후 문리대에서 심리학과, 종교학과, 미학과를 어거지로 통폐합시키려는 문교당국에 항의하여 학문의 독자성을 수호하고자 했던 학생농성 과정에서 과교수들이 보여준 어처구니 없는 비겁과 배신은 도리어 당연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대학교수사회 전체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깊이 썩어있었으니까.

나는 대학원진학과 교수에의 꿈을 버리기로 단호히 결단을 내렸었다. 이런 나의 판단과 연계된 것이 김윤수 선배의 영향과 처신이다.

윤수 형님은 나보다 두 반 위였고, 나이는 한참 위였는데 1학년 입학하자마자 도서관 등에서 형님의 도움과 영향을 받게 되었다. 그 무렵으로서는 도무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사회주의 계통의 미학사상 등을 알게 되었으니 맑스, 엥겔스의 사회주의 리얼리슴과 루카치의 미학, 아르놀트 하우저나 에두아르드 푹스 등의 예술사학, 그리고 프랑스의 루이 아라공 같은 시인들을 형님으로부터 들어 알게 되었으니 나에겐 그야말로 ‘형님’이었다.

그러나 그런 지식적인 관점 이외에도 윤수 형님은 당시 교수의 독단에 비판적 태도를 취하여 심한 미움을 받고 있었으며 장발학장(당시 총리 장면씨의 동생) 축출이나 미학과의 문리대 이전 등의 학생데모에 주도적으로 가담한 일로해서 혹독한 대접을 받고 있었다.

당시 주임교수들은 이해할 수 없는 분들이었다.
미학과가 문리대로 이전하면 학문적 입장에서 득이 되는 것은 교수들인데도 장학장 측에 부촉되어 학생들을 구박했고, 구박했지만 결국은 문리대로 이전되었으니 그 이후엔 도무지 면목이 서질 않는 무능교수로 인상지워졌으며, 삼과폐합(三科廢合) 파동 때도 폐합하면 자기에겐 결정적으로 불리한데도 문교부와 대학 당국이 겁이 나서 역시 학생들만 구박하였으나 결국엔 훗날 미학의 독립성이 보장되는 쪽으로 지난 파동이 수습되었으니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일이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미학과 학생의 저항 자체가 곧 김윤수 형님이었다. 윤수형은 그렇다고 무슨 선동을 하거나 무슨 강제를 하거나 하는 분이 아니다. 조용조용히 사물과 사태의 진실을 따져나가며 되도록이면 상대방의 장점을 추켜세워 자존심을 갖게하는 분이다. 나는 그래서도 형님께 많은 것을 배웠다.

누군가의 표현으로 한다면 윤수형은 또 하나의 미학과였다. 또 하나의 미학과! 그것은 훗날 나의 운명이기도 하였으니 윤수형님 이후로 나를 비롯해서 수많은 거리의 미학자들이 생겨났던 것이다.

아마도 한국 민족미학의 생산지는 지금의 관학(官學)이 아니라 바로 이들 거리의 미학자들이 일으킬 민학(民學) 쪽일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내게 있으니 이 또한 김윤수 현상이 아니겠는가!

아아!
학문이 삶과 유리될 때 도무지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더욱이 미학이 생애의 아름다움을 등진 추한 것이라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것을 추구한단 말인가?

민족과 세계사가 마침내 쉴러의 말처럼 새로운 미적(美的) 혁명, 새로운 세계문화 대혁명을 갈구하고 있는데 그 원천이 되어야 할 동아시아에서의 미학행위 자체가 이 같은 갈구와는 하등 인연이 없는 불모요 무능일 뿐이라면 그런건 해서 무얼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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