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나는 동숭동 서울 문리대 교실에서 있었던 문학 교수들의 특강이나 연구 발표회에 참석하곤 했다.
조금 건방진 짓이었다.
그러나 수확은 없었다.
지금 생각나는 것은 황찬호 선생이다.
영문과 황선생의 ‘그레이엄 그린 연구’ 특강은 내 삶과 문학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띈 시간이 되었다.
그레이엄 그린 문학에 있어서의 ‘범죄와 구원’, ‘권력과 영광’, 그리고 그것을 해명하고 모색하는 예술가가 반드시 지녀야 할 선천적 또는 후천적인 성품으로서의 ‘마성(魔性)’과 ‘섬세성(纖細性)’의 상호모순에 관한 강조는 그 무렵, 그리고 그 이후 나의 문학적 사유의 한 핵심적 테마가 되었다.
왜냐하면 내 자신이 선천적으로 극단적 마성과 극단적 섬세성을 함께 갖고 태어난 것 같기 때문이다.
내 아내가 가끔 말한다.
‘당신은 극과 극을 같이 갖고 있어요. 예술가로 타고났지요. 그러나 그 때문에 잘못도 저지르고 죄를 짓고 괴로워하는 것이예요.’
문리대 대강의실의 어둑한 뒤편 좌석에서 황선생의 이 강의를 들으며, 수음과 사창가에서의 난폭한 성, 그리고 여자들에 관한 섬세하고 연약함, 또는 아름다움에 대한 거의 탐미적인 감성과 추한 것에 대한 병적일 정도의 깊은 관심. 이런 극단적 모순이 내안에 괴물처럼 버티고 있음을 느끼며 몸을 부르르 부르르 떨었다.
아아 기필코 삶은 지옥인가?
***졸업**
중학교를 졸업할 때 공로상으로 받은 김태오 ‘미학개론’은 미술에 대한 집념과 부모님의 희망인 생활안정 사이의 내 나름의 절충안을 생각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
미학교수가 되면 예술에 관한 공부를 하면서 생활도 안정될 수 있겠기에 미학과에 진학한 한 선배의 조언을 받아 미학과로 진로를 결정했다.
그 무렵 미학과는 서울대 미술대학에 있었고 내 실력으로는 충분히 들어갈 수 있었다.
이인순 선생님이 졸업기념으로 중국집에서 요리를 사주셨다. 그 자리에서 이선생님은 문학이 삶에 대해 가지는 역설적 가치에 관해 열정적인 말씀을 해주셨다.
비록 현실적 삶에 패배하더라도 문학을 통해서 삶을 근본에서 이해하고 삶을 이상 속에서 세워보려는 순수한 넋은 그 패배를 보상하고도 남는 것이다. 어차피 삶은 괴롭고 험난한 것이다. 그것 앞에 정해진 큰 길은 없다. 다만 내가 대학교수가 되더라도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겉보기가 아닌 깊은 내면의 해맑은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란 대강의 말씀이었다.
그 말씀이 내게 그 얼마나 큰 도움이 되고 큰 힘이 되었는지 이선생님 자신도 모르실 것이다. 그 후 대학시절 이선생님의 성북동 집에 놀러갔을 때 무척 연약해보이는 아버지 없는 딸 ‘나리’를 보았을 때 말로 전달되지 않는 선생님의 고통과 그 고통을 이겨내는 해맑은 문학열을 한꺼번에 느꼈던 일이 있었다.
지금은 돌아가시어 이 세상에는 안계신 이선생님의 명복과 살아있을 ‘나리’의 행복을 깊이깊이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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