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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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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87>

원주에서

일요일엔 대개 원주에 내려갔다가 월요일 새벽쯤에 돌아오곤 했다.
청량리 역에서 토요일 저녁 화물차를 타면 서울에 하숙하거나 통근하는 또래의 서울 유학생들을 만났다. 같은 칸에 함께 모여서 한참을 떠들고 나면 바로 원주였다.

방학 때도 어디 여행하지 않고 원주에서만 지냈는데, 몇 차례 무전여행을 시도했으나 겁 많은 어머니의 간청으로 매번 포기하고 말았다. 원주에서 고등학교 공부하는 친구들과 어울리거나 영화 연극을 보거나 하는 게 일이었다.

고2 때던가 어느 눈 많이 내리던 날이다.

친구 김재수가 이상스레 감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딴 집에 얻어둔 제 공부방에 가자고 해서 거기 들어갔더니 원주여고 여학생 둘이 미리 와 앉아 있었다.

한 학생이 말을 꺼냈는데 요지는 곁에 말없이 앉아있는 우리집 앞 가게집 딸인 정순이가 나하고 사귀고 싶어 한다는 거였다.

아랫배가 따뜻해지고 다리에 힘이 빠져나가며 이마 복판이 더워지는 기이한 느낌을 생전 처음 맛보았다. 남녀가 만나면 그것 자체로서 천둥번개가 친다더니 맞는 말 같았다. 이것이 연애의 시작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감미로왔다. 그러나 거기에 대한 내 대답은 그와 정반대였다.

‘대학 시험공부 시작할 때인데 사귈 틈이 어디있어!’

재수가 끼어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상하게 모질고 단호했다.
설왕설래했으나 나는 점점 더 딱딱해졌고 결국은 정순이가 눈물바람을 하며 방을 뛰쳐나가는 것으로 그날 일은 끝이 났다.

내 자존심이 그것으로 만족을 얻었을까? 정반대였다. 말할 수 없이 쓰라린 후회가 왔고 그 후 두고두고 뉘우쳤다.

사실에 있어 나는 여학생과 사귀기를 몹시 원하고 있었고 원주에서도 길거리에서 여학생들이 지나가면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게 됐고 서울에서도 학교 가는 길에 꼭 부딪히게 되는 진명여고의 한 뚱뚱한 여학생을 보면 마음이 희한하게도 수상쩍어지곤 하는 거였다. 그런데도 왜 정순이를 마다했을까?

검실검실하고 예쁘장한 정순이가 싫은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왜?
사랑의 테크닉이 전무했던 것이다. 그런 경우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전혀 모르니 꼭 옛날식 도덕군자모냥 멋대가리 없이 굴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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