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학교에서 그 무렵 가장 뛰어난 공부벌레가 한 반의 김창규(金昌奎)였다.
속초친구로서 서울 친척집에 얹혀있었는데 공부를 잘하고 인간미도 있어서 친구가 많이 따랐다.
나는 그의 집에도 자주 갔고 일요일엔 고궁에 함께 가 사진도 찍곤 했다. 시험 때엔 그의 집에 가 함께 공부하며 준비도 했었다. 그러나 그가 단짝친구는 아니었고, 그와 함께 공부하면서도 나는 주먹친구나 건달 친구들과 어울려 중동학교와 숙명여학교 사이의 골목길에 있는 ‘검은 텐트’라는 그들의 소굴, 구멍가게에 놀러다니곤 했다.
주먹들에게 끌리는 나의 마음은 조금은 이상한 것으로 대학시절에도 원주에서 원주의 유명한 건달들과 함께 밤낮으로 어울려다녀 아버지 주변의 여러 어른들을 실망도 시키고 걱정도 끼쳤다.
그러나 뭐라 할까?
공부벌레나 머리 좀 좋다하는 씨스터 보이들에게는 없는 툭터진 마음씨와 활기가 그들에겐 있었고 그 중 몇몇은 짙은 의리심까지 있어서 은연중에 끌리곤 하는 거였다.
몇가지 기억이 되살아온다.
성택이라는 주먹 왕초가 있었는데 선생들이 학생들을 너무 기합준다고 아이들과 함께 ‘검은 텐트’에서 모의 한 뒤 몽둥이, 책상다리 등을 들고 십수명이 교무실로 몰려가 교무실 집기들을 모조리 때려부신 사건이 있었다. 선생들은 다 도망가 버렸는데 그 뒤 성택이는 일주일 정학으로 사태를 마무리지었다. 역시 중동이요 ‘사자정신’이었다.
나는 이 사건이 내내 못마땅하면서도 일면 조폭(組暴)의 매혹에 이끌리듯이 중동의 이런 일면을 사랑하기조차 했었다. 싫어하면서도 이끌리는 것. 그것이 무엇일까?
조폭. 군대. 마약. 여자.
그리고 심하면 파씨슴도 이와 비슷한 것이겠다.
그러나 그것들이 대상이라면 내 의식 안에 일어나는 이 매혹의 정체는 무엇일까?
정신 병리의 한 측면인 것일까?
일종의 중독(中毒) 아닐까?
아니면 모종의 집중(執中)일까?
또 하나는 세검정(洗劍亭)이다.
한 친구의 집이 자하문(紫霞門) 밖 세검정 시냇가에 있었다.
초대를 받고 놀러갔는데, 아아! 때는 양춘가절(陽春佳節), 화사한 봄날이라 사방에 가득찬 살구꽃 복사꽃들은 눈부시게 피고 달을 불리기 위해 담가놓은 시냇물은 투명하다 못해 유리같았다. 친구의 집은 푸른버들 우거진 주막이었는데 그날 그 아름다운 봄날의 화원에서 맛있는 국수와 지지미로 배를 불리고 느릿느릿 히히거리며 돌아오던 생각이 난다. 술까지 조금 마셨으니 노을의 기려행(騎驢行)이 틀림없겠다.
나는 지금도 이 세검정 길을 사랑한다. 옛 자취가 조금이라도 남아 그때의 자하문 밖 정취를 추억할 수 있기 때문이고 지금도 험준한 산봉우리들과 흰 바위들, 그리고 검은 숲들에 신령한 목신(牧神)이 살아 내게 감촉되어 정신이 해맑아지기 때문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