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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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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84>

선생님들

3년 동안 가르침을 받았던 여러 선생님들을 잊을 수 없다.

고문(古文)의 김영배 선생님.
나의 이름도 얼굴도 비슷하다고 애들이 ‘너희 형’ 어쩌구 했던 분인데 어느날 나를 교단으로 나오라고 해놓고 당시 유행이던 ‘실존주의’에 대해 말하라고 했다.

뭘 말했는지 알 수 없다.
까뮈가 어떻고 사르트르가 어떻고 한참을 떠들었는데 내용은 모르겠다.

다만 한가지 낱말이 뇌리에 남아있는데 그것은 ‘운전수 의식’이란 말이었다. 한 차안에서 모든 사람들이 승객으로 잠을 잘 때에도 운전수는 책임감을 가지고 잠을 자지 않을 뿐 아니라 앞길에 대해 걱정하고 살피는데 이 의식이 실존주의라는 것이었다.

“물론 실존이 무엇인지는 해명하지 못했지만 그만하면 비슷하다.”
이것은 김영배 선생님의 논평이었다. 선생님은 나의 문학적 진로에 대해서 관심이 많으셨다. 건강하신지?

또 한분 연세 많으신 고문선생님.

기억이 하나 있다.
‘하느님이 사람을 만들 때 구워 만들었는데 백인종은 설익고 흑인종은 너무 많이 구웠고 적당히 노릿노릿 잘 구운게 바로 우리같은 황인종이라! 그러니 미국놈, 구라파 놈들에게 열등감 갖지 말라구, 알았어?’

그 밖에도 여러 선생님들의 여러 가지 강의가 빠짐없이 그대로 나의 살이되고 피가 되었으니, 배재학교 낙방과 늑막염, 그리고 가난과 타향살이가 나를 지독한 공부벌레로 만들었던 셈이다. 그래서 그나마 선생님들 고마운 것을 조금치나마 알게 된 것 아니겠는가!

한 젊은 분이 떠오른다.
정식 교사가 아니라 교원 실습 나온 연세대 국문과 학생이었는데 방과 후 날더러 내 하숙에 한번 가보고 싶다고 했다. 내가 낸 국어 숙제를 보았던가 보다.

서대문에 살고 있을 때인데 노을 무렵에 하숙방에 앉아 문학에 관해, 특히 그 무렵 대 유행이었던 손창섭(孫昌涉)의 단편에 관해 여러 얘기를 나눴다.

한마디가 생각난다.
‘손창섭의 해결책 없는 절망은 앞으로 가식 없는 젊은이들의 순수한 희망을 일으키는 거름이 될거야. 전제도 조건도 없고 이념적 강제가 없는, 구원없는 절망은 그만큼 근본적이고 꽁수가 통하지 않는 큰 물결을 예감시키고 있어. 나, 그리고 자네 세대야. 중요한 세대야. 지금 겨울이라 웅크리고 있지만 봄은 오는 것이고 봄이 오면 싹은 솟아나게 돼있거든’

내가 동의했는지, 비판했는지는 기억에 없다. 다만 내 의식의 한편에 그때 내가 그분을 향해 속으로 ‘퍽 순진하구먼!’ 했던 것 같다. ‘이념도 사상도 없이 무슨 큰 물결이 온단 말인가?’ 했던 것 같다. ‘같다’가 아닌 것 같다. 틀림없이 그랬다. 왜냐하면 내가 대학에 가서까지도 초기엔 그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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